옆집 아재의 죽음

사라진 자들

by 글마루

옆집의 언니 둘은 차례로 결혼하고 막내인 아재는 군대 가기 전 서울에서 돈벌이를 시작했다. 나이라고 해야 이십 대 초반인 그가 할 수 있는 건 막노동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시대. 친척의 주선으로 돈벌이하러 떠났고 할머니 혼자 집을 지켰다. 키가 그리 크지도 않고 갸름한 얼굴의 아재는 말수가 적었다.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조차 느끼기 어려울 만큼 조용했던 아재가 조용히 집을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당시에는 전화가 교환을 통해야 하고 버튼이나 다이얼이 아닌 손잡이를 돌리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마을에 한 대밖에 없었기에 전화 걸기도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급한 일이 있을 때면 전보를 이용하는데 간단하게 문자처럼 보내는 거였다. 물론 직접 전보를 쳐본 적은 없지만 대충 어른들의 말씀으로 기능만 알고 있었다. 그 전보가 어느 날 옆집에 날아든 것이다. 옆집 아재의 사고 소식을.


아들이라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던 때 옆집 할머니에게 아재의 사고는 까무러칠만한 충격이었다. 아버지와 의형제처럼 지내는 타성받이인 H아재와 옆집 아재는 이종사촌지간이었다. 할머니가 실신하자 H아재가 상경했고 아재는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 일로 마을은 발칵 뒤집히고 옆집 할머니는 한동안 눈물로 시간을 보내야 할 만큼 질곡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출가한 딸 둘도 친정에 자주 다니러 오고 그러다가 옆집 아재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졌다. 죽은 자의 말로는 잊힘 그 자체였다.


귀한 외아들, 그것도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이건만 건질 것이라고는 지푸라기밖에 남지 않은 살림에서는 아들을 대처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 그땐 배우던, 배우지 못했던 죄다 상경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대였다. '서울'이라는 꼭짓점을 향해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비가 되었던 시절. 더 나은 삶이 보장되지도 않았건만 상경만 하면 노다지라도 주울 것만 같은 그릇된 환상과 헛된 꿈이 젊은이들을 더 큰 혼란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들에게 상경은 필연처럼 상징되었고 백에 여남은만 녹아들었을 뿐 나머지는 도시민의 반열에 끼이지도 못한 채 그 변경에 서성거려야 했다. 그들에게 귀향은 실패로 인식되었기에 그들에게는 차선책이라고는 없이 거센 물살에 떠밀리듯 표류했다. 그러다가 어떤 이들은 한없이 깊은 해구로 침잠했다.


결혼은커녕 아직 청소년의 티도 벗지 못한 아재가 딱하다고 마을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으나 그뿐. 옆집 할머니의 울음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흐르는 시간 속에 시나브로 사라진 자가 된 아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늘 기가 죽은 듯 조용했던 아재의 하얀 얼굴과 짧은 머리칼만 기억에 남긴 채 죽은 아들을 따라갈 듯하던 할머니도 서서히 시간 속에 스며들었다. 얼마간의 보상금으로 집수리를 하고 빚을 가리고 할머니는 생존이라는 철로 위에서 품팔이로 연명하며 늙어갔다. 그러다가도 주위가 적막해지면 서럽게 서럽게 곡지통을 쏟아내면서 뒷골에는 계절이 수없이 바뀌었다.


옆집 아재가 죽었을 때 나는 너무 어려 귀동냥으로 듣기만 했을 뿐 자세한 사망 경위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종사촌지간인 H아재가 아버지를 친형처럼 따랐는데 술을 좋아하는 아재는 술만 취하면 아버지께 찾아왔다. 사촌의 시신을 닦아서 몸소 염하고 보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던지 아재는 그 염할 때 고인이 된 동생의 모습을 레퍼토리처럼 쏟아내고는 했다. 똑같은 장면을 하도 반복하는지라 어느 시점이 되면 그 말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사촌동생을 염했을 때의 일을 되새김질하고는 했다.


"형님, OO이가 어땠는지 아슈? 그냥 아파서 죽는 거는 호강이라요. 맨 정신으로는 염을 할 수 없어 막걸리를 몇 사발 들이켜고 했는데도 눈물이 얼마나 흐르던지요. 다리 한 짝이 거짓말 안 보태서 전봇대만 했다니까요. 그것뿐인 줄 아슈? 불알은 거짓말 안 보태서 두 되짜리 주전자만 하게 부었더라고요. 멀쩡하게 살아있던 그 피도 안 마른 애가 뻣뻣하게 누워있으니 내가 그 생각하면 술을 안 먹고는 못 살겠어요. 난 세상에 그렇게 퉁퉁 부은 시신은 처음이라요. 형님!"


아재는 술만 취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염하던 때 죽은 아재의 모습을 재방송하듯 했고 이제 그만하라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나중에는 꺼이꺼이 울면서 서러워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시신을 바라보듯 처절했다. H아재는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염을 도맡아 했는데 그땐 장례식 문화가 없을 때인지라 이웃에서 염을 해줬다. 죽은 자에게 염을 깨끗하게 해 줘야 좋은 곳으로 간다는 말처럼 아직 젊은 H아재는 염하는 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파생되는 충격과 트라우마를 술을 빌려 잊으려 했고 술이 과하면 애먼 아주머니를 두들겨 패고는 했다. 마을 사람들과 여간해서 얼굴 붉히는 일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에게 친절했던 H아재가 화 풀 곳은 아주머니였을 것이다.


애먼 아주머니만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으니 마을 사람 모두가 좋은 사람으로 인정해도 아주머니에겐 세상 나쁜 남편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H아재의 모친은 마을에서 부지런하고 별스럽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아들 내외의 싸움을 말리는 척했지만 교묘하게 아들이 며느리를 때리도록 유도하고는 했기에 고약한 할머니라고 동네 사람들은 진저리를 쳤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주머니가 성격이 털털해 동네가 요란하도록 부부싸움을 하고 얻어맞고도 툴툴 털고 일어났고 싸우지 않을 때는 같이 면소재지에도 나가고 오토바이도 뒤에 타는 등 어린아이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부사이였다.


나는 H아재가 술만 취하면 아버지를 찾아와서 그 염할 때의 일을 무용담처럼 또는 한처럼 읊는 아재의 레퍼토리에 죽은 장면을 다 외울 정도로 상상되었다. 외상으로 인한 충격으로 다리가 전봇대만 할 정도라면 과연 관에 들어가기나 했을지 의문이었고 그 일을 말할 때는 신들린 듯하면서도 눈물을 펑펑 쏟는 아재가 그만하고 가주기를 바랐으나 아재의 넋두리는 저녁 내내 그칠 줄을 몰랐다. 아버지는 애들 듣는다며 그만하라고 만류해도 이미 술이 취할 대로 취한 아재는 십수 년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했다.


이후로도 마을에 초상을 치르면 아재가 나서서 염을 하고는 했는데 마치고 나면 아버지께 찾아와 염할 때 망자의 모습과 염하던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나열했기에 아버지는 좋은 목소리로 "그만해, 그만해."라고만 할 뿐 아재를 꾸짖지 않았다. 얼굴이 길쭉하고 술 마시면 붉게 물들던 아재는 아버지와 핏줄 하나 섞이지 않았는데도 아버지와 같은 암으로 비슷한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의 아재들은 왜 하나같이 단명해야만 했는지 이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남지도 않은 마을은 상실의 늪에 빠진 듯 쇠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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