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우애
아버지가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한마을 동생들이 있었다.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우애는 친형제보다 도타운 사이. 한 분은 같은 성씨지만, 한 분은 타성이다. 그런데도 셋은 자주 뭉쳤다. 아버지, 큰 아재, 작은 아재는 어린 내 눈에는 친형제로 보였다. 매일 서로의 집을 오갔으며 셋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처럼 의리가 굳건해 보였다.
아버지만 빼면 두 분은 거의 술고래에 가까웠다. 아버지도 약주를 했지만 과하지는 않았다. 대신 아버지는 골초였다. 상품 가치가 떨어져 전매청에 바치지 않은 담뱃잎을 담배 농가에서 얻어 종이에 말아 피웠다. 소죽솥에 불을 지필 때도 누군가 찾아왔을 때도 늘 그 독한 담배를 피우느라 입과 코에서는 잿빛 연기가 굴뚝처럼 뿜어져 나왔다. 어쩌다 선물용으로 ‘청자’라도 한 갑 들어오는 날에는 가끔 맛보기는 했지만 싱겁다며 고이 모셔두거나 아버지 의동생들에게 나눠줬다.
세 분은 각각 개성이 다르다. 나름대로 성깔도 있고 한 번 강짜를 부리면 누구도 말리지 못할 만큼 완고한 면도 있다. 그렇지만 세 분은 서로 한 번도 얼굴을 붉히거나 언성이 높아진 일이 없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우리 기저귀까지 손수 갈아줬다는데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총각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또한 닭을 잡아 끓일 솥이 없자 우리 목욕시키는 세숫대야에 닭을 삶았다고 하니 보통은 더럽다고 꺼리기 어려울 일을 애들 사용하던 게 뭐가 더럽냐며 썼다는 것이다. 아재들은 우리에게 친삼촌 이상으로 살갑게 대해줬고 우린 친삼촌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대체로 아재들이 아버지께 “형님, 계십니까?” 하며 찾아올 때가 많았다. 술을 좋아하는지라 안줏거리라도 있으면 4홉들이 소주병을 들고 오기도 하고, 농사일로 단내가 나는 목을 막걸리로 축이기도 여반장이었다. 우리는 두 분을 각각 ‘아재’라고 불렀다. 성실하기는 해도 일머리가 빠르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동생들의 신임은 두터운 편이었다. 모이면 소작농으로서의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하며 술자리는 무르익었다.
세 분의 공통점은 너무나 많다. 바로 서른 넘어 늦장가를 든 것이다. 게다가 한 분은 아예 장가도 못 갔다. 안 간 것인지 못 간 것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환갑을 못 넘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통점은 너무나 많아서 바로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것과 모두 단명한 것이다. 먼저 보낸 작은 아재를 그리워하며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너무나 빨리 세상을 등졌다. 그 짧은 생 속에서 굳이 여유를 찾자면 아버지는 담배, 두 아재는 술을 위안 삼았으나, 한편 그로 인해 암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개개인의 인생사로 보면 너무나 불행하고 복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이미 지난 일에 행, 불행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적어도 어린 내 관점에서는 그랬다. 게다가 그들은 ‘의리’라는 것으로 똘똘 뭉쳤으니 남들이 함부로 침범할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그들만의 성(城)이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가장 연장자이지만 가장 나이가 어린 아재가 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떴다. 갓 마흔이나 될까 한 나이였다. 문제는 술이었다. 술이 과해 간경화가 왔고 급기야 간암으로 번져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얼굴이 박속같이 하얗고 늘 우울해 보이는 아재는 조용했고 차분했다. 너무 일찍 술에 찌들어 세상에 미련이 별로 없었음인지 농사일을 하긴 했지만 억척같지는 않았다.
농사짓는 모습조차도 차분해 보이는 아재는 어쩌면 아버지를 친형님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부모의 정을 느낄 겨를도 없이 생모는 개가하고 말았으니 늘 무슨 생각에 잠긴 듯한 아재는 활기가 없었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은 마을을 에워싼 산과 그악스럽게 자라는 풀이었으니 그 골짜기에 갇혀 사느라 젊은 아재가 재미를 느낄 만한 거리도 없었을 것이고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아서인지 아버지는 무조건 이해해 주고 감싸주기만 했다. 가끔은 만취해 찾아와서 아버지를 붙잡고 술주정을 하기도 하고 끝내는 신세 한탄을 하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달래도 보고 나무라도 보고 아버지 입장이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둥 말짱했다. 막내 아재가 먼저 세상을 뜨니 그 상여를 아버지가 맬 줄이야. 또 그걸 매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 말없이 혀만 끌끌하고 찼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하다.
큰 아재는 늦장가를 들더니 연거푸 아이 셋을 낳자마자 앞세웠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출산했기에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아주머니 얘기를 듣자면 출산은 수월하게 한 편인데도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아주머니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남 말하듯 했지만 자식을 낳자마자 셋이나 잃은 심정은 당사자만 알 터. 그래서일까 아재의 술주정은 갈수록 심해졌고 툭하면 아주머니를 두들겨 패서 아버지가 말리러 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후로 딸 하나 아들 둘 낳고 잘 사는 듯했다. 평소에는 죽을 둥 살 둥 일했기에 젊은 큰 아재가 곧 부자가 되지 않을까 했으나 살림은 크게 진척이 없었다. 진척은커녕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점점 늘어갔다. 봄에 농사 밑천이 없으니 빚을 내고 가을에 추수하면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되었고 점점 빚은 늘어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농사는 돈이 되지 않았기에 최신 농기계를 사서 농사를 지어도 수지가 맞지 않았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공부는 시켜야 하고 그러니 울화만 깊어졌는지 모른다.
술이 항상 문제였다. 한 번 술을 마시면 그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았고 눈동자도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가끔 부인을 운신 못할 정도로 때리는 것이 부인이 무엇을 잘못하고 미워서가 아니라 화풀이할 데가 없으니 화풀이로 삼는 듯했다. 평소에 아재는 난폭하지 않았다. 남들하고는 시비 붙는 일도 없었으나 웬일인지 부부싸움은 온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였다. 그게 반복되자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도 그러려니 했다. 남의 가정사에 누가 끼어들기도 애매한 당시 분위기였다.
아버지가 위암에 걸려 돌아가시기 전, 일가친척보다 자주 찾은 사람은 큰 아재였다. 모심기로 바쁜 와중에도 매일 '형님, 형님'하며 친정에 드나들었다. 아버지의 병세를 살피며 자신의 일인 양 한숨을 짓고는 애타는 심정을 담배 연기에 날려 보냈다.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우린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임종을 타성인 아재가 볼 정도였다면 의형제의 우정이란 피보다 진한지도 모른다. 일주일 동안 물 한 모금 못 넘기던 아버지는 마침 친정집에 들른 아재에게 물 한 대접을 떠다 달라 부탁했고, 물 한 대접을 달게 다 마신 아버지는 큰 아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거푸 하고는 잠시 후 운명했다는 것이다.
큰 아재는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에 목마르지 않게 물 대접을 한 고마운 분이다. 아버지 임종 후 목을 놓아 울었다. "우리 형님 불쌍해서 어떡햐!"라며 큰 아재는 절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혼자 남겨진 엄마에게 농사일에 큰 도움을 준 것도 아재였다. 경운기로 논밭을 갈고 로타리를 쳐주는 일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아버지 살아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리를 지켰다. 엄마도 한마을에 사는 사촌오빠보다 아재를 더 의지했으니, 의리라는 것은 때로는 피붙이를 능가할 때도 있다.
내가 아버지를 마음에서 쉽게 떠나보내지 않았듯 큰 아재 또한 아버지를 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일을 도와주다가도 말 끝에는 늘 '형님'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으니 큰 아재에게도 아버지의 존재는 친형제 이상이었을 것이다. 고마운 분이건만 젊은 우리는 그런 큰 아재에게 가벼운 선물이나 공치사 한 번 한 적이 없다. 큰 아재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는 내 감정에 젖기 바빴다. 엄마에게 시동생 이상으로 위안과 힘이 되었던 큰 아재. 하지만 그 아재도 몇 년 후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그마저도 닮은 꼴이었을까.
삼 형제 모두 환갑을 못 넘겼으니 애석하기 그지없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짧은 인생을 살다간 그들. 그나마 속내를 나눌 친구가 있었다는 것으로 위안 삼아야 할지. 가난과 빚에 찌들다 술과 담배를 친구 삼아 일찍 가버린 그들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안됐다며 혀를 끌끌 찼다. 남 보기엔 죽도록 일만 하다가 너무 일찍 허망하게 삶을 저버린 그들의 모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술과 더 친해진 큰 아재의 소식을 듣고도 귓등으로 흘려보냈던 나. 어릴 때 편하고 만만하게 대하던 아재에게 인사 한 마디, 말 한마디 건넬 주변머리가 없었던 조카 같은 우리를 보며 아재가 섭섭하지는 않았는지.
아마 저세상이 있다면 그들은 다시 만나지 않았을까. 그곳에서도 소주잔을 기울이며 옛일을 안주 삼아 도란거릴 것이다. 아재들은 지금도 가까이에 있는 것만 같다. 아직도 낯설지 않은 모습들. 부모 정에 대한 결핍의 허전함을 술로 의지하려고 했던 작은 아재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본인 살아갈 방편으로 술에 의지한 아재.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재는 스스로 지탱할 힘조차 없었을지도모른다.
새삼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경제적, 환경적 요건을 다 갖춘 가정에서 태어나면 좋겠지만 그런 이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보완해 가며 삶을 살아내야 하는 건 인간의 숙제일지도 모르는 일.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어딘지도 모를 곳에 툭 던져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