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리의 외로움

by 글마루

내 친구 OO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동그랗고 눈썹이 짙었다. 얼굴이 달걀형에 자그마해서인지 어릴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붙여진 별명이 '마부리'였다. '마부리'는 당시 아이들이 사탕만 한 유리로 만든 구슬을 가지고 맞히며 따먹는 놀이를 했는데 '구슬'의 방언이다. 원래 이름보다 별명이 더 많이 불린 그녀와 나는 초등 5학년 무렵부터 친했다. 면 소재지 식육식당에서 일하는 그녀의 어머니가 내게 우리 OO이와 친하게 지내라며 당부를 하고부터였다.


말수가 적은 편인 마부리는 나 이외에는 달리 친한 친구가 없었다. 네 개의 작은 마을로 갈라진 '황골'이라는 데는 남자아이들은 많았는데 여자아이는 마부리 혼자였다.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위로 언니 하나와 오빠 둘은 중학교만 마치고 객지생활을 했기에 집에는 마부리와 엄마 단둘이 살았다. 그런데 면소재지 식당에 출퇴근하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고 식당에서 잔다고 했다. 딸아이 혼자 있을 것이 염려된 그녀의 엄마가 방학이 되면서 내게 집에 와서 함께 자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마부리와 함께 지냈다.


우린 건넌방 아궁이에서 나란히 앉아 불을 지피며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하고 집안 얘기도 하면서 친해졌다. 마부리는 어릴 때부터 혼자 음식을 해 먹는 게 익숙해서인지 김치를 잘게 썰어 아궁이에 불 때고 남은 숯불에 볶아 김치볶음밥을 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조그만 초가집. 아무도 없는 오막살이 집에서 소녀 둘은 저녁마다 만나서 밥을 해 먹었고 잠을 잤다.


나는 그녀의 엄마가 다니러 온 날에는 우리 집에서 잤지만 방학 대부분 그녀의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딸에게 약간의 용돈을 쥐어주고는 했다. 나는 많은 남매들과 복닥이면서 생활했는지라 조용한 그녀의 집이 좋았다. 집에 있으면 엄마가 이것저것 심부름을 많이 시켰는지라 친구 집에서 자면 그런 번거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기에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설렘이 있었다. 어른이 없으니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건넌방에는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눈썹이 짙고 강한 인상이어서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방에는 그녀의 엄마가 가끔 오고 갈 뿐 겨울방학 내내 나와 마부리는 우리 집에 나를 데리러 오고 나는 그녀의 집에 달려가고는 했는데, 너무 오래 반복되자 아버지가 걱정을 하셨다. 어떻게 어린 딸을 혼자 두고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올 수 있느냐면서. 친구 집이지만 어린 딸 둘이만 자는 게 위험하다며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는데, 잘 때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자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으셨다.


그녀는 언니와 오빠 둘의 이름과 성격에 대해서도 내게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언니는 그녀와 같은 '숙'자 돌림이었고, 그녀의 오빠 둘은 이름도 정겨운 O동, O동이었다. 그녀의 피부가 까무잡잡하듯 오빠 둘도 피부가 까만데 누가 더 까만지 그녀가 얘기해 주었고, 나는 그녀가 오빠들에 대한 얘기를 해줄 때면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며 웃고는 했다. 그녀는 언니, 오빠와 우애가 깊어 보였고 언니, 오빠의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한 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건넌방에서 우린 군불을 때 뜨끈뜨근한 방바닥에 누워 수없이 많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도 지겨우면 둘이 화투놀이와 윷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 이마에 딱밤을 놓는 거였다. 화투놀이를 할 줄 모르던 나는 거의 매번 지기만 해 그녀에게 딱밤을 맞기 일쑤였다. 우리는 특별히 다투는 일도 없이 마음이 잘 맞았다. 어려서부터 혼자 집을 지키는 그녀나 엄마에게 따뜻함을 받지 못하는 나나 서로 비슷한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서로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겨울이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무섭다며 문고리를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고 잠들었다. 나는 당시 자다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는데 잠버릇이 고약해서 나와 같이 잠을 자면 아침에 애먼 소리를 들어야 했다. 밤새도록 온 방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자는 바람에 옆에 자던 사람이 잠을 자기 불편했다는 말이었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아무리 조심을 하려고 해도 자고 일어나면 늘 똑같이 온 방바닥을 헤매며 자느라 잠을 설쳤다는 말이 반복되었다. "너랑 같이 못 자겠다."라고 아침이면 말하던 그녀는 저녁만 되면 나를 찾았다. 잠버릇이 험해도 그녀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든든했던 것일까.


우린 방학이면 자주 서로의 집을 오고 갔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수학여행 때도 그녀의 어머니는 내게 그녀와 같이 앉아가라며 신신당부했고 나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 여행 내내 함께 했다. 특별히 나와 나눠먹으라고 간식을 챙겨주셨고 그녀와 나는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그녀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서 사진을 찍었고 돌아와서 사진을 인화해 내게 건네줬다. 사진값 문제로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으나 중학교 2학년까지 그녀와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가끔 고향에 다니러 오는 언니와 오빠가 그녀에게 용돈을 쥐어주면 그녀는 과자를 사서 나와 나눠먹고는 했다. 나는 그녀가 어린 나이에 혼자 집을 지키며 불안에 떨었을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고 용돈을 받아서 과자를 사 먹는 것만 부러웠다. 게다가 당시 유행하던 동그랗고 작은 '디스코핀'으로 알록달록하게 머리에 꽂고 양갈래로 머리를 땋았는데 인형처럼 앙증맞고 귀여웠다. 그 모든 게 직장 생활하는 언니, 오빠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그것 또한 부러웠다.


훗날 그녀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밤에 혼자 잘 때 많이 무서웠으며 어느 날은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오려고 한 적이 있어서 밤새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다. 누군가 여자아이 혼자 집에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나쁜 목적으로 그녀의 집에 침입한 게 아닌가 하여 나는 나쁜 사람이라고 함께 분노한 적이 있다. 그땐 문단속만 잘하면 무슨 일이야 일어날까 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서가 아닌 누군가 집에 침입한 것 같으면 두려움에 얼마나 시달렸을지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아직 여린 가슴인 그녀는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


그녀의 어머니가 집을 자주 비우자 근동에는 남자가 생겨서 딸까지 안 거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말씨가 사근사근했는데 나는 내게 친절하니 친구의 어머니가 친절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라 여겼는데 어른들 사이로 소문은 이 마을 저 마을로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자 그녀가 중학교 3학년일 때 두 모녀는 면소재지에 따로 방을 얻어 나갔다. 나는 엄마의 잦은 부재로 인한 그녀의 내면의 불안은 모른 채 면소재지에 살게 된 그녀가 부럽기조차 했다.


그토록 붙어 다니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동네를 떠나자 처음에 섭섭했던 마음과는 달리 서서히 그녀와는 멀어졌다. 면소재지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옷차림이 점점 세련되는 그녀가 어쩐지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녀는 좀 논다는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옷차림은 점점 요란해지고 심지어 화장까지 하기도 해 나는 그녀가 불량소녀라도 된 듯해 거리감이 생겼다. 어쩌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면 예전 친했던 정이 떠오르는지 그녀가 내게 안부를 묻기도 했지만 내게는 그녀가 다른 세계 사람처럼 인식되었다.


성인이 되어서 만난 친구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화장을 스모키 하게 하고 옷차림도 눈에 틔게 입었다. 단정함보다 소위 '날라리'처럼 차림새를 보며 나는 원래 예뻤던 그녀의 미모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를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오직 관심이 바깥 세계로 향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염려되었지만 그녀는 탈선하기 전의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었기에 어떤 충고도 건네기 어려웠다.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이질감에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잠시 경북 구미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했고 그 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십 년 후쯤 우연히 부산에서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다. 한 살짜리 아들 하나를 두고 부산에 놀러 왔다던 그녀가 의아하긴 했으나 자세히 묻지 않았다. 예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여전히 표정이 밝지 않아서 마음에 걸렸었다. 뭔가 사연이나 고민을 감추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지만 그것 역시 내 짐작일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우린 헤어졌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친정에 다니러 간 내게 친정어머니가 그녀의 소식을 전해줬다. 그녀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너무나 놀라운 소식에 깜짝 놀라 물어보니 스스로 삶을 다했다는 소식만 들었고 다른 뒷말만 무성하게 남길뿐 진실은 그녀만이 알 뿐이었다. 미인박명이라더니 그녀를 두고 이름이던가. 꽃다운 삼십 초반에 스스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그녀는 '외로움'이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가끔 그녀의 유난히 까맣고 동그랗던 눈동자가 떠오를 때가 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갈걸,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걸, 아쉬움이 남는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외로움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안은 채 그녀를 그린다. 저 하늘이 있다면 그녀도 나와 놀던 유년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구슬처럼 동그랗던 그녀의 눈동자가 시간이 흐를수록 어쩐지 더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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