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엮는 소녀

by 글마루

한마을에는 작은 네 개의 부락으로 나뉘어 있었다. 용바우재를 넘어서 내려오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송암'이라는 마을이, 오른쪽으로 100M 넘게 들어가면 '황골'이라는 마을이, 사거리에서 100M 직진하면 '솔밭마'라는 마을이 그 옆에는 '넘마'라는 마을이 있다. 그 네 개의 부락이 모여 하나의 '리'가 되었다. 또 화현리 옆에 '쇠실'이라는 부락이 우리가 사는 '리'가 행정구역상 같았는데 생활권은 달라서 그 부락의 주민은 잘 모른다.


네 개의 부락이지만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로 작은 마을에 서 씨와 김 씨의 일가붙이가 많은 마을이기에 사람들은 이웃들과 무시로 드나들기 일쑤였다. 내 또래는 한마을을 통틀어 6명이라면 남학생은 13명으로 많았다. 그중에서 둘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둘은 중학교 일 학년 때 자퇴하고 전학 가서 실제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여학생은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Y는 고등학교까지 함께 졸업한 친구인데 우리 집과 반대로 오빠 셋에 남동생 하나를 둔 외동딸이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는데 딸의 친구가 놀러 왔다고 친구의 어머니는 먹을 걸 챙겨주시곤 했다. Y와는 초등 고학년부터 어울렸다. 저학년 때는 아들 형제만 많은 집에서 자란 그녀는 남자아이들과 총싸움을 하고 놀았기에 그녀를 같은 동성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그런 성향을 걱정한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함께 놀 것을 요청했고 우린 이방인 같은 그녀와 처음에는 서먹했으나 곧 등하교를 함께 하며 자주 어울렸다.


그녀에게 오빠가 셋이나 있다 보니 그녀의 집 건넌방에는 늘 오빠들이 빌려다 놓은 만화책이 그득했는데 나는 중이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 많다는 말처럼 그녀보다 만화책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더 뻔질나게 그녀에게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내가 5학년 때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 그녀는 아버지 오빠들과 담배를 엮고 있었다. 왼손에는 담배다발이 오른손에는 담배 잎을 집어서는 담배 엮는 타래에 기계처럼 갖다 끼우고 왼손으로는 노끈으로 담배를 엮었다. 그 동작은 매우 민첩하고도 자연스러웠는데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매우 신기해 따라 해 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녀의 집이 담배농사를 지었고 담배 농사는 이른 봄부터 밭에 비닐을 씌우고 모종을 심고 자라났다. 가운데 줄기를 두고 엇갈리게 담뱃잎에 자랐는데 50cm가량 자라면 담배가지를 따서 집으로 가져와 다발로 엮는 작업을 했다. 댕기머리처럼 차분하게 땋은 담배다발은 건조실로 옮겨져 찌는 작업을 하는데 불을 피워 연기로 말리는 작업이었다. 건조실은 흙벽돌로 일반 집보다 높게 지어졌는데 굴뚝도 2층 높이로 높았다. 마을에서 담배 농사를 짓는 집에는 그렇듯 건조실이 하나씩 있었다.


한때 담배 농사는 마을에 부를 가져다주는 특수작물이었다. 누에고치가 침체기에 들어갈 무렵 담배가 특수작물로 농촌에 목돈을 안겨줬기에 담배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았다. 담배 농사는 현재 KT&G의 전신인 '전매청'에서 수매를 했는데 잘 지으면 높은 등급을 받았기에 온 식구들이 동원되었다. 일손 하나가 간절한 농가에서는 외동딸인 그녀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동딸이니 온 가족의 사랑만 받을 줄 알았던 그녀가 나보다 먼저 농사일에 투입된 것이다.


놀러 나가자는 내게 그녀는 담배를 엮어야 한다며 안 된다고 했다. 친구를 따라 나도 담배 엮기에 도전했지만 내가 엮은 담배 묶음은 술술 풀렸다. 담배 엮는 친구 곁을 맴돌기만 하자 친구의 오빠는 내게 만화책 읽을 것을 권했고 나는 친구가 담배를 엮을 동안 건넌방에서 혼자 만화책을 읽었다. 알지도 못하는 야구가 나왔지만 만화 속 인물들의 표정이 신기했고 실제 살아있는 듯한 표정과 대화를 보며 나는 만화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나중에는 만화책 보러 친구네 놀러 갈 정도로 매일 내 눈앞에서 만화책이 아른거렸다.


어느 날은 엮을 담배가 없자 친구가 놀자고 했으나 나는 읽고 있는 만화책을 중간에 끊지 못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친구가 정색하며 말했다. "너는 만화책 보러 온 거야? 나와 놀려고 온 거야?"라고 말하며 섭섭해했다. 성격이 유순한 친구는 그때뿐 늘 싱글거렸다. 이따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함께 통학하며 졸업했다. 어쩌면 가장 단짝처럼 지냈던 친구였다.


친구가 담배 엮는 모습을 보고 나는 부모님이 시키지도 않는 일을 거들겠다고 나선 적이 있다. 밭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부모님이 하고 있었는데 나도 거들겠다며 나서자 아버지는 못하게 말렸다. 아직은 어리니 마음껏 뛰놀아야 한다며 농사일은 힘들고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렸지만 얼마 못 가 나도 농사일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농사일에 동지가 되었는데 일을 먼저 시작한 친구보다 늦게 시작한 내가 더 질기고도 호되게 농사일을 하게 될 줄 알기나 했을까.


엮은 담배 묶음이 산처럼 쌓이면 건조실에 걸어서 말렸는데 나도 따라 건조실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뭐든 궁금한 걸 못 참는 내 성격도 한몫했는지라 호기심을 일으키자 친구의 아버지가 구경을 시켜줬다. 어린 내 눈에는 천장 높은 건조실이 성곽처럼 거대해하게 다가왔다. 남들은 독하다는 담배 찌는 냄새가 내 코에는 왜 그리도 구수하게 여겨지든지. 몸에 해로운 담배인지라 아버지는 잎담배를 말아 피우면서도 내게는 건조실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다. 아이에게는 해롭다는 이유를 대면서.


친구네는 오랫동안 담배를 농사를 지었고 그 수입으로 큰오빠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대학을 다니는 큰 오빠 외에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는 둘째 오빠와 아직 중학생인 셋째 오빠, 바로 밑의 남동생까지 모두 둘러앉아 담배를 엮었는데 기계처럼 손이 빠른 그들이 나는 부럽기만 했다. 또한 담배 농사를 짓는 친구네가 우리보다는 잘 살았기에 아버지께 담배 농사를 지으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중학교 때부터 함께 통학하며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저녁에는 함께 걸어오며 우린 정이 들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고 둘은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다른 한 친구는 따로 자취를 했는지라 둘은 단짝처럼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오빠들이 주는 용돈이 있어 군것질을 자주 하는 그녀는 아무것도 사 먹지 못하는 내게 건네주기도 할 정도로 인정이 있었다. 선머슴 같던 그녀가 고등학교 진학하고는 예전의 남성미는 사라지고 어느덧 소녀가 되어 남자 친구를 사귀는 눈치도 보였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각자 어울리는 친구가 다른 우리는 등교만 같이 하고 하교는 버스 타고 올 때만 만날 정도로 전보다는 붙어 다니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정도 멀어지긴 했다. 털어놓고 하던 속 얘기도 하지 않고 왠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그녀에게 거리감이 느껴지고 그녀 또한 자기보다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 내게 섭섭하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그녀가 나보다 다른 친구들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것을. 같이 다니는 자기보다 다른 친구들 더 좋아하는 낌새를 보였던 내게 서운한 마음에 그녀도 내게서 마음이 떠났던 것은 아닌지.


성인이 되어 한참 연락을 하지 않던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일찍 결혼해 아이가 있는 나보다 아직 미혼인 친구는 승용차를 일찍 끌고 다녔다. 나는 살림과 육아에 지쳐있었기에 그런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이따금 고향에 들르고는 했다. 서른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은 그녀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의 걱정은 대단했다. 대부분 친구들 모두 결혼해 학부모가 되어 있는데 외동딸이 미혼인 채로 있으니 예전 어머니들의 정서로는 걱정이 아니 되지는 않았을 터.


결혼하지 않을 줄 알았던 그녀가 결혼 소식을 알린 것은 그녀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너무 멀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결혼 후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한 모습으로 프사에 비치고는 했다. 그 옛날의 선머슴은 온 데 간 데 없이 푸근한 아줌마가 된 그녀가 왠지 편안해 보였다. 연중행사처럼 통화를 하다가 완전히 끊긴 지도 꽤 되었는데 가끔 담배를 엮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녀도 가끔은 단짝인 나를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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