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되로 주고 말로 받은 행복
※ 2017년 3월호 월간샘터 '행복일기' 수록 작품. 잡지부의 양해를 구하고 싣습니다.
- 아래는 원본인데 지면상 잡지사의 편집이 있었습니다.
원제목: 가죽장갑
겨울은 공도교*에 부는 바람만큼이나 세차고 메말랐다. 종일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만 듣다가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였다. 사무실 밖에서 노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무슨 얘긴가를 주고받으면서 망설이는 듯한 분위기였다. 60세는 넘어 보이는 분들이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퇴근 정리를 하고 나가려니 노부인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기, 해도 지려고 하고 종일 걸었더니 너무 지쳐서 한발도 떼기 힘든데, 미안하지만 퇴근길에 좀 태워주시면 차비 드릴게요.”
어차피 퇴근길이었기에 그러시라고 하고는 두 분을 태워드렸다. 부부는 걸어서 국토종주를 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칠곡보에서 35km를 걸어오시느라 무척 힘들다고 하셨다. 하긴 젊은 사람들도 두어 시간만 걸으면 지치는데, 그 연세에 그 거리를 걷는 것이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오는 길에 가죽장갑 비싼 거를 화장실에 놔두고 오셨다면서 내일 그 자리에 있으면 가지라고 하셨다. 내일 장갑이 있으면 보관해 놓겠다고 말씀드리고 버스정류장에 내려드리니 돈을 주시기에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받을 의사도 없었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기에 조심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화장실이 아니고 무인부스에 가죽장갑이 놓여있었다. 보관해서 다음에 오시게 되면 드려야지 생각했는데 어제 그 부인이 오셨다. 인사를 하고 피곤하실 텐데 일찍 오셨다고 여쭤보니, 오늘은 혼자서 조금만 걷다 돌아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배낭에서 삶은 달걀이랑 몇 가지 간식을 주시더니 가죽장갑을 한 켤레를 꺼내셨다.
“어제는 다리가 너무 아픈데 태워줘서 고마워서 꼭 주고 싶어서 그러니 받아요.”
처음에는 그런 것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으나, 너무나 간곡히 권해서 받지 않는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망설이다가 감사히 잘 쓰겠다고 하면서 받았다. 서로 훈훈한 인사를 나눴고 그분은 곧 가셨다. 난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별 친절도 아닌 것으로 그분들이 그렇게 고마워하시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웠고, 그 작은 수고로움을 꼭 보답하시려는 마음이 더 감사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껏 남을 위해서 그렇게 베풀고 산 기억이 많지 않았다. 나의 작은 배려가 상대방에게는 큰 도움으로 느껴질 수가 있다니, 앞으로는 좀 더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난 그분들께 세상의 인정을 배운 셈이었다. 그 일은 며칠 동안 내 안에서 난로처럼 훈훈하게 내 메마른 가슴을 데워주었다.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난 그 가죽장갑을 끼면서 노부부의 따뜻한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댐, 보 위에 길을 놓아 강의 이쪽저쪽을 연결하는 방식의 도로로 주로 유지보수의 기능과 인도, 자전거 도로의 기능을 하는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