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봄이 오는 남산
오늘도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향한다. 집 밖을 나서자 바람이 어느새 순해지니 봄이 오는구나 단박에 느꼈다. 쌀쌀맞기 그지없는 겨울이 이제 물러나는가 싶어 갑자기 설렘이 버드나무 물 오르듯 한다. 황금 같은 방학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며칠 후면 낯선 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낯설다는 건 두려움이 설렘보다 앞선다.
생각보다 밖은 언제 추웠나 싶게 훈훈함을 넘어 나른하다. 도서관에 도착해 세계 철학자들의 어록을 쉽게 풀이한 교양서를 뽑아들었다. 소크라테스부터 미셀 푸코까지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한 책을 한 시간 가량 읽은 후 해가 좋을 때 산책하기 위해 남산공원으로 향했다.
전에 갔던 코스가 아닌 시청 건너편 공영주차장 위로 산책로가 있기에 그곳으로 발을 옮긴다. 나무 데크로 만든 계단을 오르자 상주 시내 일부가 정겹게 다가온다. 이렇게 따사로운 햇살이 부서지는 날은 스레이트로 덮인 흙집에 살아도 서글프지 않을 것 같아 오래되고 흐름한 주택으로 눈길을 준다. 초라하지만 작고 아담해서 정겹다. 나 스스로가 화려하지 않으니 집이든 물건이든 고급스럽고 화려한 것보다 소박하고 저렴한 걸 선호한다. 어쩌면 나 스스로 내 형편에 맞게 소비를 최적화시켰는지도 모르지만.
서울에만 남산이 있는 게 아니다. 상주에도 시민들이 애용하는 '남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산 중턱으로 길을 내어 산책로를 만들었는데 둥근 원 형태의 산을 한 바퀴 돌면 상주 시내를 다 관람하게 된다. 작은 농업도시인 상주는 남산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쉬엄쉬엄 걸으면 한 시간 정도로 걷기 운동에도 안성맞춤이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도 않고 완만하기에 어르신들도 많이 이용한다.
붉은 빛만 돌던 남천도 이제 초록으로 생기가 넘치고 철쭉잎도 꽃을 피워올릴 준비를 하는지 잎에 윤기가 돈다. 사람들이 추위에 웅크리고 있는 동안 산과 나무는 봄 맞을 차비를 마쳤나 보다.
가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자 삼 일 남은 연휴가 아까워진다. 시간이라는 것에 끈을 묶어서 멈추든지 바짝 잡아당겨 못 가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5년 2월의 마지막 오후에
※ 자주 가자고 다짐했던 남산공원을 거의 몇 년 만에 찾았다. 아래는 5년 전 혼자 남산공원을 산책하고 남긴 글이다.
<남산의 봄>
전날 봄비가 종일 내리고 난 후 당근마켓을 통해 헌 책을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산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가랑비가 긋더니 언제인가 싶게 말갛게 구름이 걷힌다. 주차를 하고 앞을 바라보니 앞산에는 벌써 푸르스름하게 옷을 입고 중간에는 연한 분홍빛의 벚꽃 무리들이 데코레이션되어 있다. 언덕으로는 물기 잔뜩 머금은 나무에서 새순이 활짝 날개를 펼치고 그에 맞춰 깍깍깍 짹짹짹짹 새들이 재잘거린다.
오전이라 아직은 바람이 살짝 맵긴 하지만 역시 봄은 봄이다. 전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가 생글거리는 것을 보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가지 않을 것 같은 긴긴 겨울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혼자 보기 아까울 만치 눈부신 정취에 잠시 넋을 빼앗겨 본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게다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니 그것을 감상하고 품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리라.
혼자서 슬슬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는데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다듬어놓은 배드민턴장에서 연신 "아이고, 그렇지요."를 연발하며 운동에 여념이 없다. 이 또한 삶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아우성이다.
나무계단을 몇 개 오르니 널따란 데크 위에 탑이 세워져 있는데 한자로 '항일독립의거기념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하늘을 향해 양손을 뻗은 독립의사가 무언가를 가열하게 외치는 형상이다. 오른쪽에 소개 글을 대리석에 새겼는데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상주에도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투사들이 있다는 걸 몰랐는데 활약이 드러나지 않은 민중들의 염원이 시내를 이루고 물결이 어우러져 독립이라는 큰 바다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계단을 내려와 다시 산책길을 걷는다. 봄비 머금은 싸리꽃이 휙휙 늘어진 것이 나를 반기는 것만 같다. 어린 시절 수없이 봐왔던 싸리꽃이 저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아이가 방글거리며 웃는 모양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 예쁘다는 걸 알게 되어 어린아이 닮은 꽃처럼 나도 덩달아 아이가 되어본다.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아 처음 본 마을이 가까이 다가온다. 갖가지 모양새의 수많은 집과 언덕 위 벚꽃길이 정겹기만 해 나도 저 언덕길을 오르고 반겨줄 리 없겠건만 어느 집에서는 누군가 마중 나와 따끈한 차 한잔하고 가랄지도 모르는 일. 야트막한 산 밑에 오밀조밀 들어앉은 집들이 평화롭기만 하다. 나도 저 언저리 어디쯤 한 뼘 땅이라도 있다면 오막살이일지언정 이리저리 설계도 해 보고 꿈도 꾸어볼 텐데.
산 아래 밭 언저리에는 봄비 머금은 두릅이 총총히 새순을 뽐내듯 밀어 올리고 있다. 저놈을 똑따서 데쳐 초장에 찍어 먹으면 봄 향이 입안으로 내 안으로 흠뻑 젖을 것만 같아 공연히 입맛만 다셔본다. 봄에 피어나는 모든 새싹은 설렘의 새싹이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은 우연히 마주친 옛 지인을 만나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며 안부를 주고받는다. 아직 몽우리를 머금은 연산홍처럼 덜 여문 사람들도 언젠가는 연산홍처럼 활짝 피어나지 않을까. 꽃이 봉우리마다 일찍 열기도 하고 나중 여는 것이 있듯, 사람도 먼저 피어나기도 하고 나중 피어나기도 할 것이다. 언제 피어나든 피어나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리라.
상주가 고향이고 상주에 살면서도 여태 ‘남산공원’을 모르고 지냈다. 이토록 아기자기하고 예쁜 공원이 있으니 이젠 자주 발자국을 찍어야겠다.
-2020년 4월 초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