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고리
여동생 기숙사에서 자고 온다던 언니가 아침 일찍 집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잠을 못 자 피곤하다며 남동생 방에서 잔다고 했다. 언니 걱정으로 잠을 설친 나는 더 자라는 언니의 권유에 조용히 방문을 닫고 잠이 들었다. 잠시 자고 일어나 아침을 하려고 나왔는데 순간적으로 뭔가 싸한 느낌이 확 들었다. 적막한 기운에 남동생 방에는 방문이 열린 채였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잔다는 사람이 방에 있겠거니 하며 방문이 열린 것에 의아해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방은 텅 비어 있고 이불까지 개켜져 있었다. 화장실에 갔는지 봐도 없었다. 기척도 없이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설마 말도 없이 갔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다가 문득 책상을 보니 남동생의 공납금을 놓아둔 봉투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덜컥 심장이 잠시 땅에 떨어진 듯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놀라 공납금이 놓였던 자리에 있는 쪽지를 집어 들었다. 쪽지에는 급히 쓸 데가 있어 남동생의 공납금을 가져간다며 꼭 갚겠다는 메모가 있었다.
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절망감이 나를 휩쌌고 설마설마한 불안함이 현실로 닥치자 또다시 절망감에 휩싸였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에 나는 울부짖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나이가 서른 가까이 된 남도 아닌 언니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데 눈물이 났다. 그 공납금은 가뜩이나 빚 많은 친정에서 동네사람에게 빌린 돈이었다. 있는 돈을 보내왔으면 덜할 텐데 그땐 친정이나 나나 돈이 씨가 마를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모처럼 나타난 언니에게 도움까지는 안 바라도 최소한 도리만 지키기를 바란 마음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자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에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어야 했다.
공납금을 미리 납부했더라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후회는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비밀이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만약 남편이 그 사실을 알았다가는 가뜩이나 처남 데리고 있는다고 온갖 트집을 잡던 사람이 무슨 막말을 할지 모를 일이었다. 약점 잡힐 일이 생겼으니 나는 어떻게든 숨길 수밖에 없었다. 자칫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도 남을 일이었기에 나는 그 일을 꽁꽁 숨겼다. 친정에는 하는 수 없이 전화로 알렸고 엄마는 공납금을 왜 책상 위에 올려두었느냐고 나를 책망했다.
아버지는 오죽 힘들면 동생의 공납금을 가져갔겠냐며 돈을 구해 주신다고 했다. 내가 대신 낼 수도 없는 상황에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달라지겠거니 믿은 내가 바보였다. 그 일은 부모님과 나만 알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모님께 이제 다시는 언니를 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런 일을 벌이고 간 언니가 연락을 안 할 것은 불 보듯 훤했다. 엄마는 언니가 한 행동을 탓하지 않고 여동생과 내가 언니를 도와주지 않는 걸 원망했다. 언니가 부모 맞잡이이고 동기간끼리 돕고 살아야지 어찌 그토록 인정이 없느냐는 말만 되풀이하고 사라지고 오지 않을 언니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언니는 또다시 집과 단절했다. 언니가 나타나 친정에 대한 짐을 좀 덜 수 있을까 하던 내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시댁 식구들이 언니에 대해 물어보면 대구에서 지낸다는 거짓말을 둘러대야 했다. 나는 그때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 배웠고 응용했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던 내가 내 체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얼버무려야 했던 거짓말 때문에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응어리가 가슴에 걸린 듯 생각할수록 속상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현실에 답답했다. 내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소위 누워서 침 뱉기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 엄마야 걱정하든 말든 차라리 이제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
언니가 사라지고 몇 달이 지나자 엄마는 속병이 났다. 엄마는 여동생이 언니에게 모진 말을 해서 사라진 거라고 여동생이 독하다며 원망만 쏟아냈다. 언니가 사라지기 전 여동생이 언니에게 집에서 나가라는 모진 말에 충격받아 언니가 속상해 눈물을 펑펑 흘리더라며 혼자 있으면서 간염이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그래서 돈이 필요했노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언니에게 냉정하게 말한 여동생이 참 독하고 못된다며 그런 말을 듣고 언니가 충격받아서 사라진 거라고 했다. 엄마에게는 착실하게 집을 돕는 우리보다 언니를 훨씬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여동생에게 모르는 여인에게서 언니의 빚을 갚으라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여동생이 돈이 없다고 하자 그 여인은 언니를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더랬다. 며칠 후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도 집으로 전화가 왔다. 그 여인은 언니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내게 갚아줄 것을 요구했다. 목소리가 평범하지 않은 그 여인과 몇 번 통화하다가 나중에는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그 여인은 동생이라며 언니를 그냥 둘 거냐며 언니가 진 빚을 내게 갚으라며 설득 반, 협박 반했으나 나는 휘둘리지 않고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하고는 다시 연락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잘랐다. 도무지 언니로 인한 내 난처함의 끝은 어디인지 언니가 돌아온대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언니가 어릴 때부터 하도 덜렁거리고 밖으로만 나돌아 아버지가 '털피'라며 야단을 얼마나 쳤는지 모른다. 어지간해서 꾸중을 하기보다 자식들과 잘 놀아주고 웃음이 많던 아버지는 언니로 인해 한숨 쉬는 날이 많았다. 그토록 혼을 낸 자식이건만 늙어가는 아버지는 당신 자식이니 어쩌겠느냐, 그 모든 게 다 부모인 당신 책임이라며 아버지를 원망하라고 했다. 내게 그 말씀을 하는 아버지의 표정에서 절망과 자책을 읽었기에 내게 미안해하는 아버지가 가여웠다. 피붙이라는 건 어쩌면 내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거늘 단절하기 위해서는 내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고통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 그 결단조차도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감정의 줄다리기에 나는 멀미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