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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Oct 21. 2024

흑백요리사를 통해 본 셰프의 조건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3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택시비 5천 원이 아까워 미터기를 노려보지만, 5만 원짜리 초밥에는 주저 없이 카드를 내미는 방구석 미식가입장에서도 지난 3주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지만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80인의 요리사가 흑수저로 분류되었고,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요리사 20인이 백수저로 참가했다. 총 100인의 참가자는 대형 요리스튜디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계급 대결이라는 것을 몰랐다. 매 라운드마다 다양한 방식의 요리 대결이 펼쳐졌고 최종우승자에게는 3억 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심사위원은 한국 요식업계의 대부 백종원과 한국 최초 미슐랭 3 스타에 빛나는 안성재 세프가 맡았다.

 기획 자체가 흥미로웠다. 나만 아는 동네 맛집 요리사와 나는 모르지만 업계에서 최고라고 평가받는 미슐랭 스타 요리사가 대결을 펼친다니! 거기다 심사위원들은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오직 맛으로 심사를 한다면? 다윗인 동네 요리사가 어쩌면 골리앗 스타 셰프를 이기는 장면은 상상만으로 충격적이며 짜릿하다.

 ‘네가 그리 잘 났냐? 배경 빼고 오직 실력만으로 붙어보자!

 마치 눈에 보이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화가 이루어진 현대 사회를 투영한 듯 한 대결구도는 억눌린 현대인들의 감정을 건드렸고, 프로그램은 여러 요인이 합쳐져 대성공을 거두었다.

 흑백요리사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넘어 3주 연속 비영어권 시리즈물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흥행을 이끌었다. 한국 예능이 3주 연속 글로벌 1위를 차지한 것은 당연히 처음이다.

 미식의 나라 홍콩의 유명 칼럼니스트 위안미창은 현지 기고를 통해 "프랑스, 이태리,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이 세계 5대 요리 강국이 되었고, 흑백요리사 방영 후 적어도 40개 이상의 레스토랑이 세계 유명레스토랑 명단에 추가됐으며, 한국을 여행해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추가됐다고 극찬했다. 반면 발전 없이 외국의 스타 셰프만 모셔오는 홍콩 요식업계는 밀크티 대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는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요리사들의 식당 예약전쟁이 일어났음은 물론이고, 나라도 어쩌지 못한 요식업계와 자영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여성 요리사에 대한 재인식, 탕수육 말고 동파육도 있으며 아저씨들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중식의 재발견, 한국 어머니의 손맛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고퀄리티로 미슐랭 스타의 입맛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계기가 되었다. 날로 치솟는 물가가 반영되지 않는 유일한 월급봉투에 때문에 가성비만 찾는 시대에 파인다이닝의 네이버 검색량이 흑백요리사 방영 전과 비교해 738% 증가하기도 했다. 

 흑백요리사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단순한 서바이벌 게임이었다면 이 정도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아내와 함께 시청하는 동안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물론 오십에 이른 나이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 때문일지도 있지만 분명히 다른 프로그램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마지막 회 참가자들의 짧은 인터뷰가 있었다. 질문은 단순하다 못해 식상했다.

 "당신에게 요리란?" 

 이 질문에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요리사들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이 왜 울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 들의 요리에는 고스란히 바친 자신들의 청춘과 인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상적이었던 요리사들>

 명성이나 요리와 상관없이 다채로운 이유로 눈에 띄는 요리사들이 있었다. 흑수저 만찢남은 만화책을 통해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평소 예술을 학원에서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기발한 발상과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에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게 되었다. 그의 요리를 맛본 백종원은 정말로 만화를 보고 혼자 배운 것이 맞냐고 감탄하였다.    

 흑수저 요리하는 돌아이는 시종일관 잔뜩 찡그린 얼굴과 다소 산만한 동작과 비속어로 악플과 다양한 밈의 대상이 되었지만, 요리를 하는 순간에는 누구보다 진지했고, 결과물은 기발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아래서 자라며 공부에 딱히 관심이 없는 차에 어린 나이에 요리에 뛰어들었다는 그는 최종 8인에 합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자신도 인정한 지나치게 강한 인상과 달리 다리가 불편하신 엄마가 티브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너무 좋아한다며 눈물을 보였고, 방송이 나간 후 길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본 아이의 욕 좀 그만하라는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반전의 모습도 보였다.

 임태훈 요리사는 철가방이란 명찰을 달고 대회에 출전하였는데, 그가 철가방을 들고 배달하는 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학교는 물론이고 유명한 스승으로 사사를 받지도 못했다. 그는 한국 중식의 대가이자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존경받는 여경래 셰프의 책을 통해 요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요리 맞대결을 펼쳤는데, 인터뷰마다 여경례 세프에게 존경심을 표하던 철가방 요리사는 승리가 확정되자 자신의 마음속 스승에게 큰 절을 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방송이라 결과가 나온 것뿐이며 그게 어떻게 제가 이긴 것이라 할 수 있나. 요리에 이기고 지는 건 없으며 단 한 번도 자신이 여 세프를 '이겼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 진정한 존중의 의미를 보였다. 

 여경례 세프 또한 자신도 철가방 출신임을 밝히며 패배에도 불구하고 후배의 승리에 미소로 화답하는 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종 라운드에 먼저 진출한 나폴리 맛피아는 나이가 훨씬 많은 에드워드 리 세프에게 "잘근잘근 밟아 드리겠다.'는 다소 과격한 발언으로 유교 네티즌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솔직히 서바이벌 프로에서 그 정도 발언은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나?)

 그는 촬영이 끝나고 7개월이 지나 최종 결과가 공개되자 SNS를 통해 자신의 다소 과격한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또한 우승 소감에서 에드워드 리 세프에 대한 존경과 자신의 운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그가 이 프로를 통해 인격적으로도 성장했음을 증명한다. 

 ”결승전에서 저는 평생의 운을 다 끌어 모아 우연히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앞으로 다시는 이길 수 없겠죠. 감사하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셰프“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 세프의 소감은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흙수저 신화인 배달의 민족 김봉민 전 대표도 5천억 원을 기부하며 운을 말한 바 있다.

 “제가 쌓은 부가 단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넘어선 신의 축복과 사회적 운, 그리고 수많은 분들의 도움에 의한 것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리는 위스키를 마시고 이균은 막걸리를 마십니다.>

 미국 요리 경연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4번이나 수상한 -필자의 마음속 우승자- 에드워드 리. 

 그는 경연 내내 한 번도 비슷한 요리를 내놓지 않으며 젊은 요리사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였고, 그런 모습은 삶의 현장을 누비는 대한민국 중년들이 눈물을 훔치게 하였다.

  “저는 30년 동안 요리를 해왔습니다. 지금 제 나이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속도를 늦춰가는 나이지만 전 계속 나아가고 싶어요. 난 여전히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균으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에드워드 리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늘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가 서툰 한국어로 시작하는 스피치와 함께 내놓은 마지막 요리는 그 어떤 예술작품 보다 큰 울림을 주었다. 필자의 부족한 글 솜씨와 격양된 감정으로 인해 그 감동을 왜곡할 수 있기에 방송을 보기를 권한다. 필자는 감동의 익힘 정도를 중요시하며 글이 이븐 하게 나오길 바라는 선의에 의한 것임을 양해 바란다


<흑백요리사들은 요리를 좋아한다.>

 여경래, 최현석, 에드워드 리 등의 스타 셰프는 굳이 경연에 나와 흑수저의 희생양이 될 필요가 없었다. 3억 원의 상금은 어떤 이에게는 충분히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리스크가 더 큰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참가를 하게 된 이유는 이들이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이는 불행한 한국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업을 고려할 때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취향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 다수가 가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다다른 후에야 땅을 치며 후회하거나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았다며 자위한다.

 흑백 요리사들이 매 라운드 요리를 마치고 자주 한 멘트가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으니 후회는 없다'이다. 흑백 요리사들은 계급 구분 없이 요리를 좋아한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오늘날의 위상과 크게 달랐다. 흑백요리사들은 짧게는 십 년에서 길게는 삼십 년 이상 요리를 해온 이들이다. 이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가는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요리를 하는 동안 그들의 눈빛에는 광기가 넘쳤고, 나이와 상관없이 요리가 즐거워 죽겠다는 소년미와 소녀미가 보였다.

 좋아하는 일도 반복하다 보면 지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싫어하는 일을 할 때 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고, 운이 더해져 부와 명예를 얻은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요리는 인생과 닮았다.

스스로 고른 씨앗을 뿌려 혼자 힘으로 수확한 식자재를 짊어진 채 고갯길을 넘어본 이만이 자신의 주방을 가질 수 있다. 부모가 열어준 호화로운 식당에서 남이 가져온 과실주를 마시는 이를 셰프라고 하지 않는다. 한 번뿐인 각자의 만찬을 위해 고유한 레시피를 가지고 지난한 조리의 과정을 반복한 자만이 자기 인생의 셰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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