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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Oct 25. 2024

파리올림픽에서 발견한 인류애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한 2024 파리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선수촌 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가 참가 선수들에게 혹평을 받았으며, 무려 2조 원을 넘게 투자한 센강의 수질은 끝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환경의 파괴는 백 년 안에 하계 올림픽의 형태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UC버클리대 연구진이 의학저널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84년도에 하계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기후를 가진 북반구의 도시는 8곳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기온의 상승으로 육상을 비롯한 야외경기의 진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북미의 경우 샌프란시코와 1988년과 2010년도에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캘거리와 밴쿠버만이 포함되었으며, 종국에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라트비아의 리가,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 몽골의 울란바토르 등의 도시만이 하계 올림픽 개최가 가능한 지역들이 될 것이고 경고했다. 


 백세 시대의 반환점을 막 돈 필자는 실외에서 펼쳐지는 하계 올림픽의 마지막 시청세대가 되고 싶지 않다. 인류의 유일한 적은 인류이지만 2024 파리올림픽에서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도 인류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적인 순간이 담긴 지극히 주관적인 명장면 TOP3을 꼽아보았다. 


<첫 번째 장면>

파리올림픽 여자탁구 단체 16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브라질이 만났다. 경기 시작 전 한국 언론의 관심은 신유빈선수의 활약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끈 선수는 브라질의 브루나 알렌산드로였다.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현장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선수는 한 팔이 없는 아니 한 팔로도 멋진 드라이브를 날린 브라질의 탁구 선수 브로나였다. 

 그녀는 생후 6개월 만에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혈전증으로 팔을 절단해야 했다. 그러나 팔 하나가 없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고, 이어지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무언가를 찾던 중 탁구를 만났다. 열 살 때부터 탁구를 시작한 그녀는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며 승승장구하였고, 2024 파리올림픽에도 출전하며, 역대 두 번째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탁구 선수가 되었다.

 탁구는 서브로 시작된다. 오른손이 없는 그녀는 왼팔로 탁구채를 쥐고, 채 위에 공을 올려놓고 서브를 넣는다. 경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보여준 그의 모든 움직임이 경외 그 자체였다. 세계 최강 중 하나인 한국 선수와 긴 랠리 끝에 점수를 따냈을 때는 경기장의 모든 관중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사실 탁구 약체국인 브라질과 한국의 16강전은 한국과 브라질과의 축구경기보다 결과가 예상되는 경기였다. 그러나 브로나 선수가 등장함으로써 이 경기의 승패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박빙의 경기보다 많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왜 육체적 핸티캡이 있는 탁구 선수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을까? 모두가 다양한 핸디캡이 있지만 그것을 감춘 채 살아간다. 그러나 감출 수조차 없는 핸디캡을 안고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통해 인생이라는 경기를 치르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두 번째 장면>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중국의 허빙자오는 시상대에서 작은 배지를 하나 꺼내 들었다. 허빙자오는 세 명의 메달리스트가 셀카를 찍는 순간을 비롯해 시상식 내내 자신의 모습보다 손에 들고 있는 배지가 카메라에 잘 보이는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은 중국이 아닌 스페인 대표 팀 배지였다. 

 허빙자오는 준결승에서 리오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스페인의 카롤리나 마린에게 세트 스코어 0대 1로 지고 있었다. 허빙자오는 2세트 마저 리드를 내주고 있었고, 그녀가 회심의 공격을 날린 순간 수비를 하던 상대 선수 카롤리나가 무릎을 감싸 쥐고 코트에 쓰러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스페인 선수는 4년간 흘린 땀만큼의 눈물을 흘리며 게임을 포기했다. 허빙자오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일'이라고 상대 선수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더니, 스페인 대표팀을 찾아가 배지를 직접 받아 온 것이다. 

 혐오는 타 인종에 국한되어있지 않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 간의 갈등은 대부분의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이지만, 증오의 대상이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나 선량한 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권력을 손에 쥔 각국 정치인들의 그릇된 생각이지 찌는듯한 더위에도 청춘드라마 같은 청량함을 선물하고 있는 타국의 선수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세 번째 장면>

 에펠탑을 배경으로 야외에 만들어진 비치발리볼 경기장은 개막전부터 화제였다. 캐나다와 브라질의 결승전은 여타 종목처럼 팽팽한 긴장감속에 열렸다. 올림픽 금메달이 걸린 만큼 양 팀의 신경전도 상당했는데, 급기야 네트를 사이에 두고 양 팀의 선수들이 격렬한 언쟁을 시작했다. 몸싸움이 없는 비치발리볼 경기에서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올림픽 금메달이 주는 압박감이 대단했던 것이다. 주심이 선수들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선수들은 악수를 하면서도 상대를 노려보며 거친 말을 이어갔다. 경기가 과열되자 관중들까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비치발리볼 경기는 해변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경기 도중에도 DJ가 음악을 틀었고, 흥겨운 음악이 위주였다. 그런데 캐나다 선수가 서브를 넣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새로운 음악의 전주가 나오자 격양되었던 캐나다 선수의 표정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은 상대팀인 브라질 선수들에게 전염되었고, 느린 노래의 볼륨을 높이자 관중들은 급기야 떼창을 하기 시작했다. 

 전사가 되어버린 선수들에게 인류애를 상기시킨 노래는 반전 가요의 상징이며, 올림픽 개폐막식의 단골 레퍼토리인 존 레넌의 '이매진'이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4년의 시간을 걸고 펼쳐진 단두대매치가 갑자기 콘서트장으로 변한 것이다. 어쩌면 천재 공연기획자 탁현민도 그 짧은 순간에는 떠올리지 못했을 풍경이 에펠탑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사력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는 청춘과 결승전의 품격에 걸맞은 낭만 넘치는 관중, 그리고 위대한 음악이 있었다. 

 기후변화로 하계올림픽이 춘계나 추계 올림픽으로 대체될 수 있으나, 전쟁은 올림픽 자체를 태워 버릴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상업화된 스포츠 대회인 올림픽의 소멸은 불행히도 인류의 멸종을 의미할 것이다.

 한 정치인의 탐욕과 그 권력에 기생하는 극우 정치세력에 의해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청년들은 개인중립선수(AIN)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경기에는 참가했으나 올림픽 개막식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전쟁은 비단 우크라이나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지구상에는 1억 명에 가까운 난민과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IOC는 파리 올림픽에 12개 종목 36명의 선수단으로 '난민 대표팀'을 꾸렸다. 난민 대표팀의 규모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제발 정치를 좀 크게 보고 했으면 한다.

 선수들과 비슷한 나이 때 보았던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종합세트였지만, 선수들의 부모 나이에 이르러 본 올림픽은 탐욕스러운 어른들이 망친 세상을 되돌리려는 무해한 청춘들의 몸짓처럼 보인다. 올림픽 정신이란 것이 실제 한다면 그것을 훼손하는 이들은 더 이상 땀과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고, 그것을 더 빛나게 만드는 이들은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정당당하게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흔히들 스포츠 경기를 인생과 비유한다. 메달을 따면 더 좋겠지만 올림픽은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덧붙이는 음악>

 올림픽을 일주일 앞두고 어른들의 어른이자, 무대 위 청춘을 빛나게 하는 뒷것을 자처한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어른 김민기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이들을 위해 만든 노래 '봉우리'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MQc76Gf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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