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을, 한강은 문학으로 기적을 이루었다.
세계적인 명성과 공신력을 가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한민국을 한 바탕 신명 나는 굿판으로 만들었다. 특히 침제 일로를 겪던 출판업계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쇄소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명절날 방앗간처럼 책을 찍어내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소식은 한강 작가의 책뿐만 아니라 독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 분야의 개척자는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그 분야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위대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불온세력이 있어 노벨상과 심사과정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로데 노벨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01년에 처음 개최되었다. 1969년에 추가된 경제학상과 함께 평화,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과 문학 분야에 대해 매년 12월 10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시상식에서 소개 사는 수상자의 모국어로 추천사는 스웨덴어로 진행되는데 올해는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는 이유가 추가되었다.
매년 10월이 되면 노벨 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아카데미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당해연도의 수상자 발표와 함께 내년 노벨문학상 선정자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분주하다.
위원회는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작가를 비롯한 200명에 이르는 전문가에게 후보 추천을 위한 서신을 보낸다. 노벨문학상 추천을 해달라는 서신을 받은 이들 중에 자신을 추천하는 나르시시스트도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심사에서 탈락이다.
이듬해 2월 1일까지 후보추천을 받으면 수 천명의 인원이 투입되어 후보자들의 작품을 검토한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추가로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며 철저한 검증을 통한 심사가 이루어진다. 만약 일부 불온세력의 주장대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없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에게 가해진 폭력이 명백히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증표이기도 하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의 원작 소설가 한승원 작가와 그의 부인 임강오 씨는 여자아이를 조산하고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임신을 하였으나, 임신초기에 장티푸스에 걸려 다량의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두 사람은 한때 태아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아기는 반세기 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한강은 자라며 먼저 떠나간 언니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얼굴도 보지 못한 언니의 삶을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소설 “흰”을 집필할 정도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아버지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집에 책은 넘쳐났지만 늘 가난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1980년 서울로 이사를 하며 그 사건의 현장에서 떠나게 된다. 한강과 그의 가족이 역사의 물리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암흑한 시대 1980년 광주의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가슴에 품어야만 하는 한이었다. 당시 현장을 담은 영상과 사진은 사람과 사람의 손에 의해 전해지다 한승원 작가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되었다. 십 대의 한강은 그 사진첩을 보고 여러 가지 감정이 연쇄적으로 폭발하였다.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출판사에 취직하여 생활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점심시간을 줄이고 퇴근 후 집에 뛰어 들어가고,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한 일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였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로 국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종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기어이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책의 탈고를 마치고 택시에서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를 듣고 눈물을 흘린 그는 싱어송 라이터이기도 하다. 필자는 한강의 자작곡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를 들으며 루시드 폴이 떠올랐는데, 혹시 가창력이 부족한 천재들의 치밀한 전략이 아닐까 라는 망령된 생각도 해보았다. 확실히 낯설지만 신선하고 기묘하다.
<번역가의 양성이 시급하다.>
한강작가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한국소설에 대한 관심으로 런던대학교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운명처럼 ‘채식주의자’를 만나게 된다. 당시 그녀는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운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을 통해 확인하며 번역 작업에 돌입했고, 불과 28세의 나이에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분에서 한강작가와 함께 공동수상자로 서게 된다. 번역초기 실수가 있었음에도 한강 작가는 자신의 문체를 잘 표현해 준다며 지지하여 주었다. 두 사람은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까지 번역을 하며 함께 성장해 나갔다. 스미스는 다른 번역가들과 달리 코리안 보드카, 코리안 망가 대신 소주, 만화 등으로 우리 고유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한국인의 문화와 역사 정서를 꿰뚫어야만 하는 단어는 정, 덤 등의 영어를 비롯한 다른 외국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국내 출판계는 이미 노벨문학 수장 이전부터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예상했었다. 우리의 문학이나 책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번역본이 없다면 이를 알릴 방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팔아먹을 수도 없다.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온 손님이 문 앞에 도열해 있는데, 정작 식당에는 밥이 없는 꼴이다. 한국인의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하며 외국어에 능통한 번역가의 양성이 시급하다. 우리 정부는 어떤 대책이 있을까?
<서울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는 국내 문학·출판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의 해외 활동을 국가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이에 따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을 비롯해 김혜순 등 소설·시·아동문학 세 분야에서 3년간 총 10억 원 규모의 예산요구서를 지난 4월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한 차례 반려 끝에 문체부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해당 요구서를 기재부에 넘겼으나 최근 확정된 내년도 문체부 예산안에 관련 예산은 단 1원도 반영되지 않았다. 고 한다.>
우리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이 떠오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K팝, K드라마와 영화의 성공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김구 선생이 그렇게나 바라던 문화강국에 이른 최고의 시절이자, 노벨문학상의 수상을 자국민이 거부하고, 그 작품을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정하는 최악의 시대이기도 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는다. 조금 더디지만 칼보다 펜이 강함이 입증되었으며, 무지가 뻔뻔함이 아닌 수치로 여겨지고, 진지함이 희화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 쾌거이다.
평산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어느 다독가의 독서노트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절대 잊혀서는 안 되는 어떤 죽음들과 장례는 계속 진행 중이고, 어떤 역사 왜곡으로도 묻어버릴 수 없는 죽음의 의미는 우리 역사와 민주주의 발전의 근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큰 화두인 광주 5.18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한 소년의 눈을 통해 아프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읽어내는 것만으로 개인과 집단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되새기고, ’ 삶이 되어버린 장례식‘에 함께 참여하여 억울한 죽음들은 진혼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