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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9. 2021

에필로그 : 오늘도 나는 도시락을 싼다.

따지고 보면 품이 드는 만큼 얻은 것이 많지 않다.


돈을 모으는 것도, 요리 실력이 엄청 향상한 것도 아니다.

절대 미각을 찾지도 못했으며,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서 맛 좋은 음식을 대접할 정도도 당연히 아니다.

투자 대비 소득이 거의 없다고 봐야 맞다.


함께 시작했던 동료들은 어느새 하나둘씩 사라졌다.

가끔은 직장에서 혼자 먹을 때,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뜨뜻한 국물이 당길 때면 다시 구내식당을 이용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오늘 먹은 도시락을 부시고

내일 먹을 도시락에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담으며

냉장고에 숨 쉬고 있는 내 손맛 가득한 반찬을 양껏 넣으며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도시락,

녀석이 주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넉 달.

120일, 2880시간 동안


덕분에 조금은 행복해지고,

조금은 더 요리에 자신감이 생겼으며,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엄마와 나눌 수 있는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

또 비록 아주 '조금'일지라도 유의미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죽어가던 냉장고가 이제 제 자리를 찾았고

엄마 된장국이 맛 좋아요, 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딸과

말없이 두 공기째 밥을 먹는 남편을 매일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도시락을, 싸는 이유다.




오늘도 나는, 도시락을 싼다.

그 안에 나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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