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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1. 2021

갓 지은 밥 한 공기

  이상했다.


  그날따라 도시락이 맛이 없었다. 그럭저럭, 혹은 꽤나 맛있는 밥을 먹으며 보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유난히 맛이 없었던 것이다. 억지로 다 먹고 난 후 빈 도시락통을 보니 왠지 모를 헛헛함이 밀려왔다. 뭐가 문제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곤 가끔은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싸가며 '그날'의 밥을 잊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 후, 저녁을 준비하는데 왠지 그날은 밥을 새로 짓고 싶었다. 해 놓은 밥이 이미 많았지만, 왠지 모르게 당기지 않았다. "엄마~!" 하며 달려오는 딸을 한 번 꼭 안아주고, 앞치마를 둘렀다. 쌀 씻는 볼에 두어 컵의 쌀을 담아 씻기 시작했다. 촤르르, 하며 쏟아지는 쌀을 물에 세 번 정도 가볍게 씻은 후 밥솥에 붓고 '백미 취사' 버튼을 눌렀다.


  "쿠쿠가 맛있는 백미밥을 완성했습니다."


  20분 지났을까, 밥솥이 밥을 완성했다고 내게 말했다. 반찬을 준비하다 말고, 젖은 손을 앞치마에 슥슥 닦은 후, 밥주걱을 꺼내 밥솥의 뚜껑을 연 순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갓 지은 밥의 새하얀 증기가 눈앞을 막았기 때문이다.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코 깊숙이 들어오는 갓 지은 밥의 향기. 고소하면서,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찰진 그 밥의 향기가 느껴진 것이다.


  평소 현미만 먹는 남편도 그날은 백미밥을 먹겠다고, 놀던 녀석이 "엄마 이게 무슨 냄새예요?" 하며 달려올 정도로, 냄새가 좋았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은 느낌에 취해 밥을 휘휘 저어 주고, 밥상을 차렸다. 밥공기의 모양에 맞게 수북이 담은 밥,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온전히 하얀 쌀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감칠맛이 있는 밥. 내일 먹을 만큼의 밥을 도시락통에 담아두고, 열심히 준비한 반찬과 함께 갓 지은 밥을 내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은 밥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날 나와 남편은 과식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어김없이 싸 온 도시락을 해동한 후 한 입 먹는데, 이런!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어제 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하루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밥알이 살아 있었다. 탱글하고 찰진 밥알은 입안에 들어와 반찬과 어우러지며 나를 즐겁게 했다. 그때 깨달았다. 바로 그날의 범인은 '밥'이 었다는 걸.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의 밥알은 유난히 거칠었고, 딱딱하고, 까끌거렸다. 그래서 반찬과 어우러지지 않아 먹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밥알이 말썽이었던 이유는 바로, 그 밥이 아주 오래된 '냉동밥'이었기 때문이다.




  신혼 때부터 늘 밥을 3~4인분씩 잔뜩 지어 놨다. 맞벌이인 데다 신혼집을 기준으로 둘 다 편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저녁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중 하나가 밥을 많이 지어 놓고 소분한 뒤, 얼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밥때마다 그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만 하면 되니 간편하고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요리도 더 싫어하고, 못하고, 식습관도 더 좋지 않은 때라 남편의 제안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몇 년을 미리 지어놓은 밥을 데워 먹는 삶을 살았다.


  아기를 낳고서는 밥을 짓고 소분하고 냉동실에 넣을 정신도 없어 한동안은 외식을 주로 했다. 자연히 밥솥은 찬밥신세가 되어버렸다. 몇 달 전에 산 쌀이 묵고 묵어 냄새가 날 때까지 밥을 안 지어먹은 적도 있다. 그러다 가끔 한 번 밥을 지으면 3인 가정 (그것도 아직 밥을 먹지 못하는 아기가 있는)이 먹을 수 없는 양을 만들어 잔뜩 넣어 놓고 먹었다. 그러다 보니, 밥맛이 뚝, 떨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말로,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6년 동안 냉동실에는 갖가지 용기도 각각 다른, 언제 담아 놓았는지도 모를, 안에 성에가 잔뜩 낀, 냉동밥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사라지고, 다시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락을 싸면서도 변하는 건 없었다. 반찬에는 잔뜩 신경을 썼지만, 정작 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밥이 그냥 밥이지 뭐, 하는 마음 반, 반찬 준비하면서 밥까지 새로 짓긴 버거우니 밥은 대충 해동해 먹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도시락을 싸 온 것이다.


  그러니 밥이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맛이 없는 게 당연했다.

생각해보시라. 이미 냉동실에서 꽁꽁 언 밥 두 그릇을 해동하고, 도시락에 담은 후 냉장고에 넣었다가, 그다음 날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었으니 이 모든 과정에서 밥의 수분은 다 날아가 메마르고 딱딱해질 수밖에.


  그렇구나.

  뭐든지 밥 맛이 좋아야 하는구나. 그래야 다른 것도 다 맛있구나! 아주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비밀을 알아채자, 문득 엄마가 생각이 났다. "왜 찬밥을 먹니, 따뜻한 밥을 먹어야지!" 하며 앞치마를 두르던, 친정 엄마가.

  



  잔병치레가 많았던 난,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태생이 튼튼하고 야무진 언니와 다르게 늘 약한 나는 엄마에겐 걱정거리였다. 그런 내가 집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직장에 취업을 하고 급기야 자취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엄마의 걱정과 근심은 배가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첫 자취방을 고시원으로 얻은 날, 엄마는 고시원 주방에 있는 전기밥솥, 그리고 그 안에 눌어붙은 밥을 한 번 열어보곤 깊은 한숨을 뱉어내고 말았다.


  엄마는 아주 어릴 적부터 언제고 밥을 먹을 때면, 늘 밥을 새로 안치곤 했다. 분명 아침에 지어 놓은 찬 밥이 잔뜩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 쌀을 씻고, 불리고, 밥솥에 안쳤다. 밥이 완성되는 그 짧은 시간도 기다리기 싫었던 내가 찬밥에 손을 대면 금방 되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며, 아예 찬밥을 치워버리곤 했다. 그만큼 '밥'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엄마였다.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따뜻하게. 엄마에겐 중요한 원칙이었다.


  그런 엄마 덕분에 난, 어려서도 커서도, 취업을 해도, 결혼을 해도 언제나 따뜻한 밥을 먹으며 자라왔다. 자취방에서 라면과 떡볶이, 김밥 따위로 연명하다가 주말에 본가라도 가면, 엄마가 나를 반기는 마음을 냄새로 이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치직치직- 밥솥이 열 일하는 소리, 그 소리 끝에 풍기는 맛있는 밥 냄새는 없던 힘도 생겨났다. 엄마의 손맛이 가득 담긴 김치찌개, 계란말이, 그리고 좋아하는 진미 오징어채와 김에, 밥솥에서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주걱으로 휘휘 저어 한 그릇 푸짐하게 담아낸, 갓 지은 흰쌀밥만 있으면 입 짧던 나도 두 그릇, 아니 세 그릇까지도 뚝딱할 정도였으니.


  그랬다. 갓 지은 밥. 그 밥이 다른 어떤 반찬보다도 가장 소중한, 밥상의 '기본'이라는 것을 난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온몸으로 느낀 '기본'의 중요성을 정작 나 스스로는 실천하지 못했다. 일 하느라 바쁘단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다 같은 밥이지 무슨 차이가 있냐는 이유로, 이게 훨씬 효율적이란 이유로, 가장 중요한 '기본'을 가장 나중으로 미뤄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도시락'이 맛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




  대학시절 보았던  <식객 1:맛의 시작>의 다섯 번째 '밥상의 주인'이라는 에피소드를 잊지 못한다.


외국에서 손님이 와 접대를 해야 하는 진수가 애를 먹자, 성찬은 평범한 듯 보이는 한정식집으로 일행을 초대한다. '한국에 오면 한정식집만 오는 것이 불만'이었던 외국 손님들은 약간 실망하게 되는데, 그때 성찬은 '갓 지은 밥'과 소박한 반찬을 내놓으며 말한다. 우리 밥상의 진짜 주인은 바로 '밥'이라고. 수많은 반찬에 가려, 빠르게 내놓아야 한다는 목표에 묻혀, 밥이 천대를 받았다고.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 한 공기면, 반찬이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밥상이 된다고. 그 말에 모두가 감동받는다.


그리고 그 만화를 학교 구내식당에서 잔뜩 눌린 맛없는 밥을 먹으며 본 나도,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또, 최근에 읽은 <뚝배기,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라는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뚝배기에 금방 지은 흰쌀밥은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나는 흰쌀밥만큼은 뚝배기에 짓는다. 내 입맛에 가장 맞기 때문이다. 압력밥솥에 지은 밥은 너무 차지고, 반대로 냄비에 지은 밥은 너무 찰기가 없다. [... 중략... ]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으면 나도 모르게 "허어-"하는 소리가 나온다. 방정맞게 입을 움직이는 동안 밥알들은 정신없이 입속을 굴러다닌다. 매끄러운 표면과 탱글탱글하면서도 찰진 식감, 씹을수록 더해가는 달큼한 향. 밥통에 보관한 밥은 무슨 수를 써도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이 부분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밥통에 보관한 밥도 그럴진대, 하물며 아무리 성능 좋은 밀폐용기여도 냉동실에 장기간 보관한 밥이 갓 지은 밥의 맛을 살릴 수 있겠느냔 말이다. 냉동되며 수분까지 얼어버린 밥, 해동하며 수분이 날아가버린 밥은 이미 본연의 '찰기'를 잃어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내 도시락은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주변에만 온 갖가지 신경을 쓴 꼴이다. 도시락의 중심인 '밥'이 흐트러진 순간, 모든 맛이 흔들렸던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도시락통도 사라진 밥맛을 되살리진 못할 것이고, 제아무리 맛 좋은 반찬도 밥과 어우러져야 빛을 발할 테다.


그렇다. 성찬의 말을 빌려서 다시 쓴다. 밥상의 주인도 도시락의 기본도 '밥'이다.




  이토록 사소한 비밀을 오랫동안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몸소 깨달은 어리석은 주부인 나에게 최근 들어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밥을 지을 때, 두 컵 이상 담지 않는 것. 즉, 2~3인분 이상의 밥을 짓지 않는 것이다. 혹여나 많이 남았을 때에는 적어도 2일 안에 그 밥을 다 먹고 지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밥을 짓게 되고, 매일 같이 갓 지은 밥을 우리 가족에게 대접하게 된다. 화려한 찬에 가려 잊고 있던 밥에게 중심을 두자 다시금 밥상이, 그리고 도시락이 맛있어지고 있다.


  '기본'을 지키는 밥상을 차리려는 노력. 아직은 서툴고 부족하지만, 이 노력을 천천히, 오래고 유지하고 싶다. 그래서 언제고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내게 대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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