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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03. 2021

번거로워도, 무조건 샌드위치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양상추의 아삭 거림과 슬라이스 햄의 짭짤함, 그리고 토마토의 새콤 달콤함 때문이다.


  샌드위치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워커홀릭인 나는 일을 하다가 밥을 먹으러 나가는 것조차 너무 귀찮았다. 옷을 챙겨 입고, 걸어 나가서 밥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고, 다시 돌아오고... 못해도 최소 1시간이 걸리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던 내게 샌드위치는 최고의 식사였다. 먹기에 편하고, 그 자리에서 뚝딱 해치울 수 있으며, 쓰레기도 나오지 않는! 최고의 메뉴!


   때문에 간편한 샌드위치가 좋았다. 빵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는 샌드위치가 먹음직스러워 늘 기웃거리게 하는 존재, 야근이 죽도록 싫지만 부장님이 샌드위치를 사줄게 먹을래?라고 하면, 갑자기 메뉴판을 뒤적이며 고르게 되는 존재, 하지만 값이 만만치 않게 올라 막상 내 돈 주고 사 먹기엔 망설여지는 존재. 그런 존재다. 샌드위치란.


  이렇게 좋아하면서도 샌드위치를 해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이, 계란, 양파, 토마토, 치즈, 슬라이스 햄, 소스, 식빵 등 벌써 챙겨야 할 재료의 값만 따져봐도 사 먹는 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을 준비할 생각을 하니 현기증이 밀려왔다. 출출하면 라면을 끓여 먹지, 누가 샌드위치를 집에서 만들어 먹겠는가. 또, 요리책 속의 샌드위치는 얼마나 예쁜가. 차마 한 입 베어 물 수도 없게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샌드위치를 보면 위축되기만 했다.




  그런데 변화는 아주 '갑자기' 시작되었다.


  하필이면 즐겨보는 유튜브 영상 속의 그녀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남편의 점심 도시락을 싸는 그녀는 식빵 위에 잼을 바르고, 햄, 치즈, 양파, 오이, 그리고 슬라이스 토마토를 순서대로 얹었다. 소스를 적당히 뿌린 후에 양상추 5~6장을 얹고는 식빵으로 다시 덮어 주었다. 그리곤 글래드 랩을 쭉쭉 당기고 당기며 야무지게 포장했다. 칼로 절반을 잘라 단면을 보여주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순간, 나도 그녀의 남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런 샌드위치를 내게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텐데.


  그날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은 계속 샌드위치를 권유했다.

   “만들어 봐, 쉬워, 너도 할 수 있어, 생각보다 간단하다니까?”! 라며.


  그러면 나는, 영상을 수차례 돌려 보고, 또 보면서, 우리 딸이 "또 요리하는 아줌마 보는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반복해서 보면서도 굳이 거부했다.

  “귀찮아, 어려울 것 같은데,  요리 잘하는 사람이나 예쁘게 하는 거지, 재료도 없어!”라고.


.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솔직히 말해. 만들어 보고 싶지?"


  이상하게 마음이 동했던 걸까? 대답 대신, 끙차, 하고 몸을 일으켰다. 도시락을 싸면서 생긴 약간의 자신감을 양념 삼아, 한 번 해볼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미 만드는 영상은 수십 번 봤으니 그대로만 따라 한다면 크게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할 수 있어, 까짓 거, 해 보자, 망치면 내가 먹으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냉장고 속에 있던 갖가지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상미종 식빵이 맛이 좋다. 버터를 바른 팬에 식빵을 살짝 구우면 감칠맛이 배가 된다. 식빵 4장 옆에 슬라이스 치즈 2장을 펼쳐 놓고, 삶은 계란 2개는 계란 커터기로 예쁘게 잘라둔다. 아참, 오이는 길쭉하게 잘라 소금에 절여 놓아야 한다. 소금에 절인 오이는 꼬득꼬득 해서 식감이 좋다. 집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6개 정도 반으로 자르고, 양상추는 먹기 좋게 썰고, 양파는 채 썰어 준다. 슬라이스 햄을 더 좋아하나 지금 당장은 베이컨뿐이 없다. 베이컨에 후추를 살짝 뿌려 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마지막으로 소스는 사랑해 마지않는 허니 머스터드로 결정하면 준비 끝!


  꼬박 1시간이 걸렸다.

  마지막에 랩으로 포장하는 부분이 좀 힘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영상 속 그녀의 샌드위치만큼 야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아직은 낯설고, 서툴러 품이 더 든 것이라며, 이 정도면 꽤나 그럴싸한 모양을 만들어냈다며 스스로 칭찬해 주었다.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뽑아 세팅하면 정말 끝이 난다. 예쁜 그릇에 세모 낳게 자른 샌드위치를 올리고, 유리컵에 얼음을 가득 넣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만들어 옆에 두니 영락없는 '브런치'다.

 

‘제발 먹을 수 있는 맛이길…’


  간절한 기도와 함께 먹어본 샌드위치는 기대 이상이었다. 각각의 재료들은 신선해 입 안에서 살아 숨쉬었으며 베이컨과 계란, 토마토가 양상추의 보호 아래 마음껏 뛰어노는 듯한 느낌! 거기에 달콤한 허니머스터드가 더해져 썩 괜찮은 정도를 넘어 아주 맛이 있었다.


"이 정도면 굳이 파리바게트에서 사 먹지 않아도 되겠는데?"


  남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도 좋아하는데 비싸서 먹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정말 맛있다고, 어떻게 했느냐고, 혹시 힘들지 않으면 자주 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힘이 솟았다. 이런 반응이라면 1시간 동안 재료 손질하고 만든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고, 당장에라도 더 만들어 줄 수 있고, 매일매일 먹을 수도 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남편을 꼭 안아 주었다.


  우리 부부는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재료를 잔뜩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어느새 손에 익숙해진 난 도시락에도 한두 번 샌드위치를 싸 가곤 했다. 샌드위치 두 개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싸간 날은 왠지 나 혼자 카페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가끔은 재료 수급의 불안정으로 맛이 살짝 부족하긴 했지만 (가령, 베이컨이 없다든가, 양파가 없다든가, 오이가 없다든가 하는) 전체적으로는 80점 이상의 메뉴였다.

 

내가 싸간 샌드위치 도시락. 랩핑을 잘 못해서 보기엔 엉망이지만 맛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샌드위치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바뀌었다.

  좋아하지만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에서,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해 볼 만한 것으로.

  어쩐지 어려운 존재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존재로.

  삭막한 직장을 '브런치 카페'로 바꿀 수 있는 존재로.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비싸게 파는 것이 당연한 존재로.




  흔히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꽤 많이 있다. 이것은 이래서 못할 거야, 저것은 저래서 못할 거야 하는 마음은 어쩌면 실제로 그런 환경에 처해있다기보다는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임에도 하기 전에 지레 겁먹고 망설이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패가 두려운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나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평생을 실패가 두려워 위축되어 살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먹는 것만 먹었으며, 입는 것만 입었고, 하던 것만 해 왔다. 그래야 남들 사이에서 튀지 않았으며 1등은 안 되어도 적당히 평균을 맞추며 살 수 있었다. 내 옷장엔 무채색 톤의 옷들이 넘쳐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조용히, 무난히, 그리고 평범히. 인생의 모토였다. 그렇게만 하면 중간은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도시락을 싸는 일은 자꾸만 '안 하던 짓을 하게' 한다. 생전 해보지 않던 요리들을 도전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또 시도해보게 한다. 이상한 일이다. 고작 도시락 하나를 싸 가는 것뿐인데 난 그 안에서 평생 해보지 않았던 요리를 시작하고, 평생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을 생각 하지 않았던 샌드위치를 싸고 앉아 있다. 누가 봐도 맛없어 보이는 재료만 잔뜩 들어갔는데도, 사실 구내식당에서 5,000원 내고 먹으면 훨씬 편리하고 이득인데도, 나는 내 도시락이 참 좋다고 웃으면서 벌써 3달째,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활력이 돌았다.

  나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한 번 해 볼까?' 하는 자신감도 덤으로 얻었다.

  실수를 해도, 설령 오늘 싼 샌드위치가 맛이 없어도, 다시 또 만들면 된다는,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샌드위치’가 내게 , 선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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