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2)

힐링노트 한 페이지

by 안녕

보통 학급의 아이들은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 공부를 압도적으로 잘하여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는 아이. 보통 반장을 하거나 반 1등을 한다.

둘, 활발! 쾌활! 웃음 그 자체. 늘 재미난 이야기, 애드리브로 학급 분위기를 흥미 있게 이끄는 아이. 선생님과 관계가 좋으면 한 편이 되고, 반대면 적이 된다.

셋,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아이. 보통 대부분의 아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열네 살 용솟음치는 반항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아이. 한 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힘들게 한다.



애석하게도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며 꽤 묵직한 어퍼컷을 날려 내 마음을 녹인 '준서'는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동안 아이가 잠든 깊은 밤을 틈타 과거로 시간여행을 했다. 2023년, 그러니까 작년 준서는 어떤 아이였는지 그리고 내 국어 수업 시간에 어떤 모습을 보였고 나와 어떻게 소통했는지. 지금부터의 글은 '장준서 관찰 보고서'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준서는 조용한 아이였다. 수업이 시작되면 제 자리에 앉아 열심히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1년 간의 길고 긴 수업 시간 중에 녀석이 졸음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인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처음엔 1번 유형에 속하나 했는데 아쉽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열정 자체는 1등.



준서는 열정적인 아이이기도 했다. 퀴즈 활동, 모둠 활동을 많이 하던 국어 수업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손을 들어 가위바위보를 할 때면 이길 때마다 환호했고, 질 때마다 좌절했다. 나는 교탁 앞에서 그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고 때론 웃기기도 하고, 때론 애절하기도 하여 그가 꼭 최후의 승자가 되길 바랐다. "다음엔 꼭 준서가 1등하길 바라며 가위바위보!"를 가장 많이 외친 반이다. 1학년 5반은.



준서는 늘 반응이 컸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깊이 공감하고 크게 반응했다. 한 번은 내 경험담을 쓴 글을 읽혔는데 그 글을 참고해 자신의 경험이 생생하게 실린 에세이를 뚝딱 완성했다. 또 한 번은 영상 제작 수업을 하는데 주연 배우를 맡아 '감독'의 지시에 충실히 연기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복수하는 내용의 결말 장면을 아주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표현해 박수를 받았다.



그 무엇보다도 준서는, 인사를 잘하는 아이였다. 기억이 난다. 생생하다. 수업 시작 전, 교탁 앞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 동안 어수선할 때면 준서는 꼭 먼저 인사를 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러면 난 그 말에 늘, 고마워 준서야,라고 답해주려고 노력했다. 설령 답을 못 받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거나 스스로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쪽지 시험 성적이 높지 않으면 꼭 끝까지 찾아와 "죄송해요."라고 대신 말해 주었다. 도대체 뭐가 죄송하냐, 넌 배우는 중이라 괜찮다고 다독여도 그렇게 죄송해요, 다음엔 더 열심히 공부할게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떠들면 마치 제 잘못인양 죄송하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가던 아이였다. 준서는.



2학년으로 진급하고서도 변함이 없었다. 후관 3층, 그리고 본관 2층.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멀어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복도에서 만나거나 급식실에서 만나면 변함없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국어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정말이에요."



처음엔 그저 '사회생활'을 잘하는 아이가 아닐까 싶었다. 간혹 가다가 예쁨 받는 방법을 너무 일찍 알아차려서 아부성 발언을 볼 때마다 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준서도 그런 아이인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준서는 인사에 진심이었다. 기억 속에서 한 번도 인사를 못 받았던 적은 없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고 말하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준서의 인사엔 가식이 없었다. 억지도 없었다. 그저 정말 제가 원해서 스스로 우러나서 하는 행동이었다. 따뜻했고 다정했다.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마음 깊이 녀석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쌤!! 국어쌤!!!

선생님!!



그렇게 1년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녀석의 인사는 누군가에게 내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이 마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꽁꽁 닫힌 나의 마음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준서의 인사에 담긴 진심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친구들과 놀러 나온 주말, 굳이 부득불 가던 길을 멈춰 인사를 하는 그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 따습고 다정한 마음에 비해 그저 '사생활 공개가 싫다'는 내 마음은 얼마나 옹졸한가.



모두, '인사'의 힘이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먼저 알아보고 피하지 않는다. 누굴 만날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고, 정말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못할 정도로 돌봄이 급할 때에는 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나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은 '신상이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모두, 녀석의 인사 덕분이다.






1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머리에 남는 아이들이 있고, 마음에 남는 아이들이 있다.



머리에 남는 아이들은 보통 '똑똑한' 아이들이다. 특목고에 갔거나, 공부를 잘했거나, 그래서 1등을 했던 아이들은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다. 똘똘하고 명석한 두뇌 회전으로 나를 감동시킨 경우가 그렇다. 혹은 자기 관리를 너무나 잘해서 어쩌면 나보다도 더 철저히 계획적으로 살던 아이들이 그렇다.



반대로 '마음'에 남는 아이들은 대게 예의가 바르고 인사성이 밝은 아이들이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늘 밝게 인사를 건네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깊이 남는다. 그 아이와 나누던 재밌는 이야기, 우리를 둘러싸던 교실의 분위기 등이 마음에 그려진다. 마음속 수많은 방에 녀석들을 고이고이 넣어두고 힘이 들 때마다 꺼내어 그 순간을 읽는다. 내 힐링 노트인 셈이다.



준서는 아마도 내 마음 힐링 노트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것 같다. 내게 따뜻하게 인사해 준 그날의 습기, 햇살, 그리고 우리 주변을 둘러싸던 녀석의 친구들과, 수줍게 내 뒤에 숨은 내 딸의 작은 몸짓까지.




사진: UnsplashChristopher Sardeg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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