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특별한 너의 장점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누구지? 여기서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나?
순간 당황해 고개를 드니, 우리 학교 남학생이었다.
"어!!!!!!!!! 헐!!!!! 00아! 안녕!"
"안녕하세요!"
쭈뼛쭈뼛하며 인사를 건네는데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았다. 놀라긴 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안녕, 한 마디 해주니 내 옆을 바라본다. 작고 야무진 손이 힘을 주어 나를 잡고 제 쪽으로 이끈다. 앞에선 나의 제자는 누구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응~ 쌤 딸이야. ^^ "
놀라 입을 가리며 일행을 향해 가던 녀석을 배웅하고 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 엄마 누구야?
- 응, 엄마가 작년에 가르친 제자야. 지금은 열다섯이 됐지.
- 우와. 신기하다.
- 그러게 진짜 신기하네...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도대체 무엇일까 정리하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오늘의 이야기는 무더운 햇빛이 쏟아질 준비를 마치고 이글거리는 7월의 어느 토요일, 집 근처 지하철 역 앞에서, 제자 준서를 만난 날에 대한 이야기다.
장염, 감기, 수족구, 중이염, 복통이 번갈아 가며 찾아와 2~3일에 한 번 꼴로 병원을 다녀오던 날이었다. 날은 덥고 아이는 힘들어하고, 나 역시 얼른 집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던 그 순간. 눈앞에 준서가 나타났다. 돌이켜 보니 우리가 걸어갈 때 녀석은 지하철에서 나왔던 듯하다. 토요일 아침 10시에 부지런도 하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제자였던 것이다.
처음엔 너무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학교와는 다른 추레한 모습에 부끄럽기도 하고, 내 가족을 제자에게 보인다는 게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도 그럴게 나에게는 조금 특이한 철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생활의 근거지와 직장은 절대 같은 공간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고등학교 졸업 후 운 좋게 서울로 대학을 다녔다. 연애 한 번을 해도 장거리였다.
직장 역시 고향을 떠나 먼 곳에 얻었다. 금요일 퇴근길에 출발해 본가에 도착하면 편도로 2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자연히 생활의 근거지에서 제자를 만날 가능성은 0%.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 전보다는 가까워진 곳에서 살고 있지만 한 번도 삶의 반경이 겹친 적이 없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교 근처에 터를 잡고 산다지만 나는 멀수록 마음이 편했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단 사적인 공간을 절대 사수하고 싶은 성격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삶의 터전에선 조금 더 망가진 모습을 자주 보이는 편이었다. (지금은 매일 그렇게 다니지만) 뿔테 안경과 질끈 동여 묶은 머리와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복은 필수였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부스스한 머리로 모자 하나 푹 눌러쓴 채 동네를 휘저었다. 그렇게 근 10년 가까이 지냈다.
가족이 생기면서부터는 더욱 철저히 사생활 보안을 유지했다. 누군가에게 내 가족을 들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제자들 뿐 아니라 동료 선생님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꺼렸다. 가족 모임은커녕 우연히 만나는 것도 어쩐지 불편했다. 그래서 직장 근처로는 아예 가지도 않았다. 아무리 맛집이어도, 좋은 곳이어도 일단 거르고 봤다. 코로나 때에는 마스크 덕을 톡톡히 봤다. 길을 가다 아는 사람 같으면 돌아갔다. 피하고 피하고 피하며 지내다 보니 한 번도 동료를 밖에서 만난 적, 없다. 제자는 물론이다. 100% 나의 성격과 기질 탓이다.
그러다 보니 그날과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이 너무나 당황스러울 수밖에.
당연히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찜찜하고, 괴롭고, 계속 곱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처음의 당황스러움은 오히려 차차 옅어졌다. 10년 동안 피해 다닌 사람치고는 꽤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워 경계하던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지고, 그날 준서와 만난 장면을 돌이켜 볼 때면 괜스레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감정이 들 수 있지? 그토록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감정들은 사라지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다. 이젠 누굴 만나도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난 깨닫게 된다.
내가 이런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의 8할은 바로, 나를 보자마자 피하지 않고, 몰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와 인사를 해주던 준서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제 집과도 꽤 거리가 있는 곳까지 와서 우연히 만난, 그것도 작년에 가르친 국어 선생님, 아니 담임도 아니었던 그 교과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그 마음을.
그 마음이 부끄러움을 앞섰다.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 덕분에 10여 년 동안 꽁꽁 닫힌 문에 틈이 생긴 것이다.
준서는 작년부터 그런 면이 있었다.
분량 조절 실패로 준서의 이야기는 2편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