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자들이 특별했다. 졸업 후에도 종종 연락하며 만나고 싶었다.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뜨겁게 가르쳤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고 싶어 욕심을 냈다. 졸업을 앞두고 제안했다. 매년 8월 15일에 만나자고. 순수한 나의 제자들은 어리둥절, 당황하는 듯 보였다. 굳이 8월 15일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답했다.
여름 방학이 언제 끝나더라도 8월 15일은 무조건 쉬니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더 잘 기억나니까. 그럼,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사실 쌤도 중3 담임 쌤이 매년 8월 15일에 만나게 되면 짜장면 한 그릇씩 먹고 헤어지자는 제안을 했었다고.
그 모임이 여전히 이어지냐고 묻는 아이에겐 솔직히 말했다.
사실, 쌤도 딱 한 번 나가고 안나갔다고. 그런데 그런 모임이 있으니 매년 8월 15일이 되면 문득문득 중3 시절이 생각난다고. 중학교 3년 중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기도 했고, 우리 담임쌤의 마지막 ‘담임 반‘이기도 했고, 나는 반장이기도 했다고. 그러니 나의 첫 제자인 너희들을 매년 떠올릴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감수성 넘치는 아이들은 좋다고, 벌써 신난다고들 했던 것 같다. 셈이 빠른 아이들은 만나면 뭘 사주실 거냐고 했고, 짜장면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거나, 짬뽕이나 탕수육 되느냐고 대답했던 것도 같다. 그때 나는 단번에
“떡볶이. 우리 자주 가는 즉석 떡볶이로 통일”이라고 일축했고.
무튼 98년생, 나의 첫 제자자들과의 거대한 약속이 성사 됐다. 저마다의 희망을 지니고, 저마다의 설렘을 지녔던 그날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처럼 뜨거운 여름 어느 날, 교실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2년 차 열정 교사였고.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으니까. 매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매년 그날에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모른 채 일단 진행하기로 했다.
공부는 꼴등. 단합은 1등. 체육대회는 그냥저냥 보내며 1년을 마무리했다. 2월이 되었고, 나는 아이들에게 선물 하나씩을 만들어 주었고, 졸업식에 우리는 많이 울었다. 다시없을 졸업식을 마무리했고. 한참 녀석들을 그리워하며 한 학기를 보냈다. 그리고, 2014년 8월 15일이 되었다.
추억의 교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이들은 소름 돋게도, 자기가 마지막에 앉았던 자리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인 인원은 총 11명. 32명 중에 11명. 그만큼의 아이들이 3학년 1반을 추억해 주었다는 게 왠지 뭉클했다.
늘 가던 떡볶이집에 방문했다. 담임을 하며 상담을 할 때, 가끔 떡볶이를 먹이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곳이다. 학교에서 거리가 꽤 멀었고, 날도 더웠지만 투덜대지 않았다.
- 너 뭐 하고 지내?
- 학교 다닐 만해?
- 너네 학교 어때? 교복 예쁘던데.
- 아. 중3 때가 그리워요.
갖가지 이야기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졸업한 제자들과의 대화는 한결 편했다. 너희들 담임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너희 진짜 말도 드럽게 안 들었다, 대꾸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떡볶이 가게 앞. 당시엔 예약 같은 것 하지 않아도 12명 정도는 흔쾌히 받아주던 분위기. 게다가 난 개인적으로 단골이었으므로. ^^
떡볶이가 익는 동안 우리들의 이야기도 무르익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학교 때의 추억을 나누다가, 그렇게 서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뜨거운 음식을 먹었으니 열기를 식혀야 했다. 당시엔 설빙이 유행이었다. 몇 만 원쯤은 쓸 생각으로 데리고 가 갖가지 빙수를 시켰다. 빙수가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떠들기에 바빴다.
- 쌤 지금 반 애들은 어때여?
- 저희가 더 예쁘죠?
- 걔들 말 안 듣죠?
하며 지금 아이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는 수만 가지의 질문을 건네고 이미 마음속에 정해진 답을 얼른 내놓으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늬들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고 대답은 했지만, 실제론 애들이 많이 그리웠다. 중2, 중3을 연이어 가르치고 담임을 맡았던 게 컸다. 그 해 처음 담임한 99년생 아이들은 어쩐지 설게 느껴졌다. 많이 그리웠다. 척하면 척 알아서 센스 있게 행동해 주는 애들이었다. 내가 표정이 안 좋으면 눈치채고 조용히 했고, 종례 시간에 떠들다가도 조용히 하라면 조용히 했다. 기 세고 말 많은 아이들이 날 좋아해 주었다. 평범하고 얌전한 아이들은 날 잘 따라주었다. 도움반 아이들이 2명이나 있었지만 작년에 가르친 아이들이어서 수월했다. 1년 동안 단합대회만 7번 정도 했던 것 같다. 졸업 후 많이 그리워했던 걸, 티 내긴 부끄러웠다.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기엔 쑥스러운 나였다.
다음엔 저희가 사드릴게요, 우리 내년에도 또 만나요, 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한참을 행복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지치고 힘들어서 많이 주저앉고 싶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시간들이 쌓여 사실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뭉클했다. 아이들 덕분에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어느 늦은 오후. 8월 15일이었다.
이듬해, 2015년 8월 15일에도 아이들이 와 주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하지만 11명에서 5명 정도로 인원이 줄었다. 나는 자취방 근처에서 아이들을 만나 떡볶이 대신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사주었다. 고2가 된 아이들은 훨씬 성숙해 보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흐른 만큼 공유하는 경험이 적어 이야깃거리가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녀석들은 꾸준히 2013년을 추억하며 힘을 주었다. 아이들과 있으면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 모임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느냐고 묻는다면, 아쉽게도 아니다.
2016년부터는 연락이 뜸해졌다. 8월 15일 즈음만 되면 바삐 울리던 단톡방은 잠잠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날 수가 없었다.
17년엔 학교를 옮겼고, 18년엔 엄마가 되었고, 19년엔 휴직을 했다. 20년에 코로나가 찾아와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엄마가 된 후엔 삶이 바빠 먼저 연락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2024년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카톡방을 찾아보니, 아직도 있다. 무려 “00 쌤과 301” ^ㅡ^
나 포함 33명이었던 이곳은 이제 6명으로 줄었다. 괜찮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잘 살면 됐다.
어디에 있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주아주 힘들고 지친 순간에도 문득 3학년 1반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옛날 어떤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왜 이렇게 뭘 많이 하시느냐고.
그때 말했다. 나와 지내는 이 순간들이 너희들 인생에 아주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이 되길 바란다고.
매년 지킨 것은 아니지만 3학년 1반에게는 아낌없이 퍼주었다. 그러니, 나의 첫 제자들. 나의 사랑했던, 소중한 3학년 1반은 모두가 그렇게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8월 15일이 다가온다.
나도 그날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