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부모님과 아기 키웁니다만 #4
결국 나는 임신 12주 차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미안함보다, 솔직히 당장 하루하루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했다. 한국에 대한 향수병 때문에 입덧이 더 심했던 것 같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한식 폭식 투어를 시작했다. 김치찌개, 아구찜, 파전, 순대국밥… 마치 ‘입덧 타파 프로젝트’의 현장답사처럼. 그때의 나는 한 손엔 숟가락, 다른 손엔 휴지였다. 매운 국물을 먹으며 눈물 닦느라.
<한국에 오자마자 먹었던 아구찜>
인도에선 재택근무였지만, 한국에서는 출근을 해야 했다. 서울엔 가족도, 친척도 없었다.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신세 지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고른 건, 회사 근처의 여성 셰어하우스였다. 그러다 절친 친구가 본가로 내려가면서 자기 오피스텔을 몇 개월간 내줬다. 그때만큼 “사람이 복이다”라는 말을 실감한 적이 없다.
회사 위치는 경복궁, 숙소는 청량리. 매일 아침 7시 40분, 인왕산 자락의 연구소로 가는 통근차를 타기 위해 3호선-1호선을 환승하며 서울을 종단했다. 내 하루는 그렇게 ‘출근+태동+피곤’의 삼중주였다.
출퇴근길엔 늘 분홍색 ‘임산부 전용 좌석’이 나의 안식처였다. 다행히 내 배는 존재감을 과하게 뽐내는 편이라, 대부분 양보를 받았다. 쌍둥이냐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았다. (정답은 ‘아니요, 그냥 오래된 똥배입니다.’)
가끔 누가 임산부석에 앉아 있으면, 나는 암행어사처럼 배지를 슬쩍 내밀었다. 서울 지하철엔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들이 많았다.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고 임산부 좌석에 앉아 있는 이를 보면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묘한 동지애를 느끼곤 했다.
낯선 도시의 불빛 사이에서, 점점 내가 ‘엄마’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KTX를 타고 경산으로 향했다. 엄마의 찌개 냄새, 할머니의 된장 냄새, 그리고 이불 냄새까지 — 그 모든 게 나의 진통제였다.
월요일 새벽이면 다시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임신 후기에는 몸이 무거워져서, 이번엔 엄마와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 셋은 시장에 가고, 장을 보고, 저녁상을 차리며 웃었다.
뱃속의 딸까지 합치면, 그건 ‘4대 모녀’의 시간이었다. 아기의 태명은 체리(Cherry). 남편과 내가 서울에서 지낼 때 함께 좋아하던 벚꽃, 그리고 4월의 따뜻한 공기에서 따왔다.
남편은 인도에서 매일 아기에게 들려줄 동화와 이야기를 녹음해 보내왔다. 나는 밤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속삭였다. “이게 아빠 목소리야, 잘 기억해.”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출산 막달까지 매일 사무실 출근을 하다가 출간휴가를 시작했다. 그때쯤 남편도 인도에서 한국으로 왔다. 나는 만석이어서 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정면으로 안지 못하고 옆으로 비스듬하게 앉았다. 멀리 돌아왔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우리 셋의 시작이었다.
<임신이라는 신세계에서 새로 배운 것들>
- 임산부는 코레일이 운행하는 모든 열차의 일반실 40% 할인받을 수 있으며, KTX 특실도 일반실 가격으로 이용 가능하다. 신청일로부터 출산예정일로부터 1년까지 이용할 수 있다.
- 임신 5개월경부터 태아는 뱃속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임신 8개월경부터는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차분한 음악을 듣거나 아빠가 아기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 태아의 청각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