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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ty noodle Jan 05. 2023

하루키

목도리를 눈 밑까지 돌돌 감은 네가 물었다.  "하루키 좋아해?" 


뜬금없이 하루키를 좋아하냐니? 그보다 나는 네 입에서 느릿하게 떠내려온 "... 좋아해?"라는 단어에 놀라서 "어? 어?"하고 허둥대며 되물었다. 그랬더니 너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얘 눈이 원래 이렇게 컸었나? 눈동자는 또 왜 이리 까맣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이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게 영 어색하고 쑥쓰러워서 나는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냐구" 파묻은 목도리 속에서 네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한 번 더 물었다. 

"어어, 나는..."  뭐라도 대답하려고 입을 떼는데 우리 둘 옆으로 차 한 대가 "빵-"하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허,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무라카미 하루키 안 좋아하는데. 아니, 실은 좋아하고 말고도 없이 그냥 잘 모른다. 그의 글을 이해하기엔 한참 어릴 때 단지 "하루키 책 읽어봤는데, 별로야."라고 말하고 싶은 겉멋에 책 읽는 시늉만 했었으니까. 


그렇다고 "나 하루키 책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데?"라고 사실대로 순순히 말하기는 싫다. "하루키 안 읽어 봤다고?" 일그러진 표정을 한 네가 조용하고 느릿한 말투로 되물을 테니까. 하루키를 좋아하는 네 앞에서 "난 하루키 별로 안 좋아하는데?"라고 말하는 건 더 싫다. 나는 우리의 취향이 얼마나 다른지 보다는 얼마나 비슷한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으, 이럴 땐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그래서 아까 뭐라고?" 너는 전에 없이 내 대답을 재촉했다. 아직 하지도 않은 내 말에 과도한 흥미를 보이는 네 모습이 낯설어서 가만히 쳐다보다가, 금세 부끄러워져 눈을 피했다. 그리고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자 예전에 어디선가 주워 들었던, "I love you"를 "오늘 달이 참 밝네요."라고 번역했다는 그의 일화가 번뜩 생각이 났다. 그래, 이거다!


"어? 어? 좋아해. 무라카미 하루키, 완전 좋아하지. 그나저나 오늘 달이 참 밝지 않냐?" 멋쩍게 웃으면서 얼버무리듯 대답하니, 여전히 너는 얼굴의 반을 가린 목도리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도 없는 두 눈만 꿈뻑꿈뻑하다가






"그거, 






나츠메 소세키거든?" 



나지막이 톡 쏘는 말을 한다.


으으, 최악이다.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저 눈빛. 어설픈 지식도 탄로 나고 어설픈 고백도 실패한 내가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로 애꿎은 관자놀이만 긁적이고 있는데,


네가 내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오더니 목도리를 손으로 스윽 내리고는






"그나저나, 

달은 확실히 밝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오늘 밤 달이 너무 밝아서 눈이 다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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