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Feb 02. 2023

ADHD와 불면의 상관관계

2. 당신이 유별나게 ‘올빼미족’이라면

 

오후 11시.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루를 어떻게 지나보냈는지 모르겠다.



오전 12시.

 잠이 안 온다. 아 생각하기 싫다. 머릿속이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정말 정말 피곤한데 잠에 들지를 않는다. 양은 벌써 오백 마리쯤 셌다. 지겹기만 하고 잠은 안 온다.



 새벽 2시.

 이런저런 일들이 떠오른다. 오늘 내가 했던 말들, 마주쳤던 사람들, 그때 보인 행동들, 뭐 실수한 건 없나? 아까 전에 분위기가 좀 그랬지? 그때 그 말은 하지 말 걸.



 새벽 4시.

 가끔은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OO야 늦은 시간에 미안해… 아까 우리 만났을 때 있잖아… 내가 조금 실수했던 것 같아 마음에 걸려서… 미안해… 타닥타닥.


 대개 날이 밝은 후에 답장을 보내오는 상대방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응? 뭐가? 네가 무슨 실수를 했는데? 어 그래? 아니야.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그렇게 싱겁게 끝날 일을 새벽이 꼴딱 넘어가고 동이 터오도록 붙잡고 있다.



 나는 매일 밤마다 무슨 우주라도 한 바퀴씩 돌고 오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머릿속을 하얀 페인트로 덮어버리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도록. 그것도 아니면, 뇌에서 생각을 만들어내는 부분만 똑 떼어내 깨끗하게 박박 씻어내고 싶었다. 매일 밤마다 그날 하루 아니 일생 전체를 돌아보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누가 내 뒷목 쳐서 기절이라도 시켜줬음 좋겠다는 생각 없이 잠들고 싶었다.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잠든다는 사람들이 세상 제일 부러웠다.





구글에 ‘불면’을 검색하면 이런 이미지가 나온다. 미친 듯이 내 얘기(였)다!


- 6-7시간을 자는데도 불면증이라구요?

- 오후 2-3시쯤 잠이 많이 몰려오신다고 하셨는데, 주무시는 내내 얕은 잠을 주무시면 그럴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불면증이 있는 거구나 하고 알게 된 건 ADHD 진단을 받은 다음이었다. 잠을 잘 못 잔다고 말해서 분명 수면제를 함께 처방받아 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밤에 잠들기 힘든 건 해결됐지만, 오후 2-3시 그리고 저녁 7-8시쯤만 되면 졸음이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이나 병원 오시기 전에도 잠을 잘 못 주무시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드셨나요? 중간중간 잠에서 자주 깨어나세요? 선생님의 물음에 아무래도 그렇죠, 했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전에 한 번 말씀드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 좀 더 자세히 여쭤볼 걸 그랬네요. 불면증도 ADHD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거든요.


 우선 이 부분도 약을 써보기로 했다. 오후 2-3시는 한창 시험을 치르는 중이어서 가능한 한 집중력을 쏟고 있어야 할 시간이기 때문에(다시 언급하는 거지만 글쓴이는 현재 고시생이다!). 물론 약을 먹는 것이 집중력을 올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약을 먹는 이유는 일상 속에서의 긴장을 풀고 좀 더 편안하고 원만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지, 짧은 순간 반짝 집중력을 올리자!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병원에 갔던 것도 ‘지속 가능한 편안한 일상’을 찾기 위해서니까. 원할 때 간편하게 주의력만 올릴 수 있는 약이라니, 애초에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할까? (그렇다면 나한테 제일 먼저 팔아줬음 좋겠다.)





 먼저 이 부분을 언급하고 마저 이어가야겠다. ADHD는 ‘집중을 못하는 병’이 아니다. 그저 원하는 때, 원하는 장소에서 적절하게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이다. 과잉집중도 ADHD의 증상 중 하나라는 걸 아시는지. 내가 그랬다. 학창시절, 쉬는 시간에 책을 읽다 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얼른 수업을 끝내고 책을 마저 읽고 싶어 혼났다(표면적으로는 집중하긴 했다. 그런 척을 했지). 뭔갈 하다 재미있다 싶으면 중간에 잘 멈추질 못했다. 질릴 때까지. (별개로 나는 별 흥미가 없는 일은 꼭 해야 하는 것임에도 착수해서 끝내기까지가 상당히 오래 걸리는데, 아마 이에 대해서도 곧 쓰게 될 것이다.)



 수능을 제외하고 중고등학생 때 시험기간에는 이른 저녁에 잠깐 자고 새벽녘에 일어나서 밤을 꼴딱 새며 공부하는 패턴을 유지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없고 그냥 그 편이 집중이 제일 잘 돼서였다. 나는 대표적인 올빼미족, 그러니까 야행성 인간이었다. 수능 때는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다간 성적이 박살이 날 것 같아서 한 달 전부터 잠자는 연습을 했다. 고사장이 어디로 배정될지 모르니 이동시간을 대비해 꼬박꼬박 10시에 잠들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뭐… 그때는 그게 됐다. 알다시피 K-고3의 머릿속에는 대입과 수능밖에 없으니까. 생기부에 한 줄 써준다고 하면 절벽에서라도 뛰어내릴 수 있으니까! (농담이다.)



 이제 와서는 그런 장면도 떠오른다. 고등학교 1학년 시험기간이었을 때의 일이다. 넓은 테이블에서 네 명 정도 모여 앉아 자습하는 교실이 있었는데, 나는 야자시간 내내 거기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꾸벅꾸벅 수준이 아니라 그냥 무슨 락음악 연주하듯 미친듯이 헤드뱅잉을 하며 졸았다. 맞은편에 앉았던 친구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조는 줄도 몰랐다. 그 정도로 심했다고?



 야자를 끝내고 독서실에 가서 아까 보던 노트를 펼쳤다. 아니 이런. 여기 쓰여있는 게 글씨인지 지렁이인지 벌레인지, 도통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야자시간에 풀었던 문제들을 싹 다 다시 풀었다. 평소라면 절대 틀리지 않았을 문제들도 하도 많이 틀려놓아서, 그걸 박박 지우면서는 어지간히도 많이 졸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면증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기면증은 일시적인 게 아니란다. 그냥 내 멋대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험기간이라 잠을 못 자기도 했으니까.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대학에 와서는 며칠 내내 나를 혹사시켜가며 공부할 일이 많지 않았다(…변명을 하자면 시험이 보통 레포트나 글쓰기로 대체되는 학과에 다녔다). 그런데 바로 그 증상이 휴학 후 고시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전날 분명 충분히 잤는데도 공부만 시작하면 하루종일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 들어 ADHD를 진단받는 성인의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성인 ADHD는 확실히 그 양상이 아동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당신이 만약 성인 여성이라면, K-장녀라면, 그리고 부모님께는 나무랄 데 없이 얌전하고 차분한 예쁘고 자랑스러운 딸이었다면 ADHD를 발견하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자꾸 꾸벅꾸벅 조는 거, 그냥 쟤가 피곤한가보다 생각하지 누가 ADHD를 의심하겠는가.


 나는 ADHD를 갖고 살아가시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내 경험이 보편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 전문가이신 의사 선생님께 들었거나, 내가 논문이나 믿을 만한 참고자료에서 읽은 글이 아니면 함부로 가져다 일반화하지 말자고.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는 유독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 누군가가 존재할 수 있겠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짬을 내서 하루하루 글을 남겨둔다. 충분히 노력하셨다고, 고생하셨다고, 병원에 가서 정확히 진단받으시고 남모를 외로움에서 얼른 벗어나셨으면 좋겠다고. 걱정 없이 푹 잠에 드셨으면 좋겠다고.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도 이제는 잠을 자러 가야겠다. 푹 좋은 잠을 자야겠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 아니면 1, 모 아니면 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