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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Oct 05. 2023

곤약밥은 죄가 없습니다

#8

2023.10.3
제목: 곤약밥은 죄가 없습니다

보통 즉석밥은 흑미를 먹습니다만 이번에 곤약밥을
골라온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청포묵보다 좀 질기고 당면보다는 부드럽고
도토리묵 같은 향은 없어도 무쳐지는 양념에 따라

그 무색무취함으로 인해 늘 무난하게 어우러지는
곤약을 나는 꽤 괜찮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그걸 맛본 것은 이처럼 곤약이 수만 가지 모양새를
갖추며 유행을 하기 전이었기에 마트에서 오랜만에

만나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즉석밥으로 둔갑을 하고 있더군요

저녁에 곤약밥에 반찬 몇 가지를 먹고 산책을 다녀오자
이상하게도 설레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지금 편의점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요 평소 밤에 거길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문을 열자 딸랑 소리와 함께 심장이 기분 좋게 뛰는 걸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크림빵과 두유, 부숴먹기에

딱 좋은 매운 라면 이것저것 한 아름 들고 나와 한 번씩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신이 난 어린이의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먹거리를 곁들여 밀린
드라마를 보며 어릴 적 친구네서 과자를 집어먹으며

tv 만화를 보던 추억이 떠오르며 송골송골 콧망울
땀이 맺혔습니다 맵지만 멈출 수 없는 라면스프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옵니다 동생 먹을
분유가 맛있어서 찍어 먹었던 그 손가락으로

아 나는 이제 어른이구나 하며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저녁에 먹은 곤약밥이었음을 먹을 땐 그런 낌새를  

알지 못했으나 금세 소화기관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결론적으로 제2의 저녁을 먹게 된 것임을

아 그냥 흑미밥 먹을 걸, 아니 잘 먹었으면 된 것이죠
잉여의 칼로리와 함께 즐거운 추억이 남았으니

밑진 장사는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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