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 좋을 순 없지요
우리 집은 마당이 작아 김장용 배추를 심지 못했지만, 이웃들 텃밭에는 배추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가을이 더 깊어져 배추속이 꽉 차면 김장철이 될 것입니다.
배추를 보니 작년 김장철에 있었던 일이 떠 오릅니다. 어느 일요일, 옆집이 김장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나와 아내는 김장을 도와주고, 김치를 한 통 얻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옆집 아들과 며느리가 사정이 생겨 토요일 오는 바람에 일요일 하려던 김장을 토요일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다른 일정이 있던 우리는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옆집이 한창 김장을 하던 그 날, 해가 지고 어두컴컴해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우리는 아직 밖에 있습니다. 그때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김장은 얼추 끝나 가는 중이고, 겉절이에 돼지고기를 삶아 먹을 예정이니 저녁을 먹지 말고 들어오라는 전화였습니다.
서둘러 동네로 돌아온 뒤 옆집으로 갔습니다. 겉절이에 돼지고기, 생굴, 막걸리까지 한 상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얻어먹었습니다. 집으로 갈 때는 김치도 한 통 주셨습니다. 도와주지도 못했는데 김치는 안 주셔도 된다고 했지만, 옆집 아주머니는 자기네가 날짜를 바꿨으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동네는 이웃끼리 오순도순 참 재미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우리 앞집에 이사 온 아저씨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 아저씨, 특이한 데가 많았습니다. 집을 나서다가 문 앞에서 만나 인사라도 하면 다짜고짜 자기 뒷집 사람 흉을 보았습니다. 내가 별 반응을 안 보이면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 욕을 또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시원찮은 표정을 지으면 이번에는 밑도 끝도 없이 자기 자랑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이 아저씨를 만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집 앞에서 마주쳐도 인사는 하지만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피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아저씨를 만나도 반갑게 인사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곧잘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사람 목소리가 들려 창으로 내다보니 아내가 앞집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금방 끝내고 들어올 줄 알았던 아내는 10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야 집에 들어온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앞집 아저씨와 무슨 이야기기를 그렇게 오래 했어요?”
“동네 누구네 흉보다가 자기 자랑만 실컷 하셨어. 호호”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들어 줬어요?”
“중간에서 말을 끊을 틈을 안 주더라고요. 호호호”
아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도 앞집 아저씨 만나면 잘 해 드려요”
“뭘 잘해드려요? 맨날 자기 자랑 아니면 동네 사람 흉만 보는데요.”
그러자 아내가 턱에 복숭아씨를 만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 좋을 수만 있어요?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어요. 60%만 좋으면 좋은 사람이에요. 앞집 아저씨가 좀 얄미운 데도 있지만, 전번에 참외 한 바구니 가져다 줬죠. 또 우리가 마당에서 일할 때 일부러 편의점까지 차 타고 가서 커피 사다 줬잖아요.”
아내는 그렇게 앞집 아저씨의 몇 안 되는 좋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아내가 한 말 중에 ‘60%만 좋으면 좋은 사람이다’는 말이 참 와 닿았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60%이상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좀 얄미운 사람을 만나면 마치 주문처럼 이 말을 욉니다.
‘그래, 60%만 좋으면 좋은 사람이다.’
그러면 얄밉던 사람도 조금은 덜 얄밉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