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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Dec 28. 2020

재활, 그 망망대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3단계 : 혼란과 자책

"네, 교수님 진료 가장 가까운 날짜가 두 달 후인데요. 그 주에 예약 잡아 드릴까요?"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답 없는 질문 따위는 넣어 두고, 당장에 필요하다는 아이의 재활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 하자. 일단 시작하자. 굳게 마음먹고 내가 다시는 안 들어가겠다고 성질 냈던 그 인터넷 카페(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모인 카페)에 다시 들어가 진지하게 검색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어디로 재활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나...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그런데 이 재활치료라는 것,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다. 내가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당장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저기 맨 위에 적어 놓은 저 말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 전화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서울의 굵직굵직한 병원도 아닌데, 진료 한 번 보려면 두 달 기다리는 건 기본이었다. 그 몇 달 사이 아이 발달의 골든타임이 지나가는 건 아닌지 애가 탔다.


  '재활치료' 서비스의 제공 기관은 대학병원부터 재활전문병원, (장애인) 복지관, 사설(아동발달) 센터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각 기관에서 치료를 시작하려면 그전에 거쳐야 할 모종의 절차가 있다.

  병원은 우선, 재활의학과 교수님 진료 예약부터 잡아야 하며, 진료를 보고 나서는 '발달평가'라는 것을 받아야 한다. 평가는 교수님이 하는 게 아니라 보통 치료사들이 한다. 따라서 진료 후 따로 예약을 잡아 평가를 받으러 다시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평가 결과를 듣기 위해 또 다른 날 방문을 또 해야 하며, 평가 결과에 따라 필요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대기를 걸고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잘한다고 소문난 곳, 인기 있는 곳은 교수님 진료 예약부터 기다림의 연속이며, 첫 진료를 시작하고도 평가를 거쳐야 하기에 대기를 걸기까지만 적어도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대기는 뭐, 빨라야 한 달? 언제 내 차례가 됐다고 전화가 올진 아무도 모른다.

  복지관도 마찬가지다. 교수님 진료만 없을 뿐이지, 일단 전화해서 상담 예약 후 대기를 걸게 되는데, 1회 치료 비용이 1만 원 미만으로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적어도 1~2년은 기다려야 순번이 돌아온다. (실제로 2년 전에 대기 걸어 놓은 복지관 치료, 올 11월에 전화받았는데 한 달 다니고 연말 코로나 대유행으로 쉬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보태어 적는다.)

  자, 이제 남는 것은 사설센터다. '사설'이라는 말은 의료 보험도, 국가 지원도 없다는 말이다. 즉, 비싸다. 국가에서 아동발달재활 바우처라고 해서 일부 치료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기는 한데, 재활을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런 바우처가 당장 있을 리 없다. 평가비만 십만 원이 넘고 치료비는 회당 5만 원 꼴이지만 당장 필요한 사람들은 사설센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보다 더 비싼 걸로는 '홈티'가 있다. 치료사가 집으로 방문해서 치료를 해 주는 건데, 아무래도 기관에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집에서 치료가 이루어지기에 보호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편하다. 대신 비용이 회당 6~7만 원 선이고 유명한 선생님은 더 비싼 걸로 알고 있다. 사설센터나 홈티나 시작의 문턱은 낮되 비용은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은 선택지를 앞에 두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지금이야 재활치료라는 서비스의 기관별 특성에 대해서 위와 같이 줄줄줄 설명을 늘어놓을 만큼 경험이 쌓였다지만, 당시에 나는 치료 기관의 종류만 간신히 파악한 재활 라이딩(riding) 계의 햇병아리, 아니 달걀이었다. 게다가 17개월이 되도록 이제 겨우 뒤집기밖에는   아는  없는, 바람만 불어도 기관지염에 걸리는 병약한 아이를 자기 엄마에게 맡기고 일하는 매정한 엄마였고,  때문에 아이의 재활 라이딩조차 늙으신 엄마에게 부탁해야 하는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이고 모자란 엄마였다.

  그렇다. 선택의 혼란은 내 손으로 직접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데서 시작되었고, 이는 곧 나의 무지와 무능력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바보같이 여태 왜 나는 몰랐을까. 이렇게나 다른 게 눈에 확 띄는데...
진작 알았으면 벌써 시작했을 것을... 그랬다면 지금 적어도 배밀이는 했을지도 몰라.
재활은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다는데, 내가 멍청해서 우리 아이는 아직 시작도 못해 봤네.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어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인 거잖아... 내가 못나서 골든타임 다 놓치면 어쩌지.
남들은 아이 재활에만 올인한다는데... 나는 왜... 일 그까짓 게 뭐라고 왜 못 놓고 고민하는 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아이 재활 다니는 거 부탁하려고? 어떻게 그래? 너 진짜 못 됐다.
네 엄마는 무슨 죄니? 너 낳아서 공부시킨 죄로 네 장애 아이까지 다 떠안고 사셔야 하니?


  아이의 장애를 늦게 안 것, 그래서 재활을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더 빨랐을 수 있는 아이의 발달을 이제껏 그대로 방치해 둔 것......

  그리고 이제라도 아이의 재활에 올인하지 못하고 머뭇머뭇 내 일을 붙들고 있는 것, 내 아이로 인해... 아니 나로 인해 내 엄마의 젊음이 스러져 가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 그러면서도 엄마에게 아이의 재활 라이딩을 맡기려고 눈치 보고 있는 것......

  나라는 인간은 정말 최악이었다. 멍청한 것도 모자라 이기적이기까지 했다. 이런 내가 너무 미웠고 싫었고 모두에게 미안했다. (아, 남편만 빼고. 그때 남편에 대한 분노는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왜 나만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지 억울했는데, 남편이 워낙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기에 그 분노를 겨우겨우 참을 수 있었다.)


  그래. 그만두자. 그만두고 장애아이의 엄마로 살자. 결심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곧바로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대학은 학기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학기 중간에 교수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선 한 학기만 잘 버티자고 다짐했다. 한 학기만 엄마 도움을 받고 그 이후엔 또 방법을 찾아보자. 정 방법이 없으면 그때 가서 그만두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일하는 엄마로서, 장애아이의 재활치료라는 망망대해 앞에서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남들은 있는 병원 없는 병원 다 전화를 걸어 대기를 건다는데, 나는 내가 아닌, 나의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셔야 했기에 멀리까지 힘들게 다니시게 할 수 없었다. 가까운 대학병원 한 곳에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잡고 대기하는 동안은 우선 홈티를 시작하기로 했다. 워낙 아이가 약하고 'fragile' 했기에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따뜻한 집에서 안정적으로 치료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에게 부탁하기에도 그게 덜 미안했다. 내가 수업이 없는 날에는 병원에 치료를 데리고 가고, 내가 자리를 비운 날은 엄마가 집에서 홈티로 치료하도록 봐주시는 것이다. 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당장은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급한 대로, 이렇게 치료를 일단 시작했지만 나는 계속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했고,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필요한 치료를 집중적으로 해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나같이 못난 엄마를 만나 제대로 발달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이가 가엾고 내가 미웠다.

  대학병원이나 재활병원에는 일정 기간 입원해서 집중적으로 재활치료를 받거나 '낮병동'이라고, 말하자면 9to6로 매일 입퇴원을 반복하며 오전 오후로 몇 타임씩 치료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다. 치료의 밀도가 높은 만큼 집중적인 치료로 효과를 보는 아이들도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을 아이의 치료에만 매달려야 하는 일이기에 보호자에게는 시간적, 체력적으로 굉장한 부담이 된다. 욕심은 나지만 입원 치료나 낮병동을 나의 엄마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일을 당장은 못 그만두는 내가 할 수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남편이 할 수도 없었다.

  아직도 이 생각을 하면 속에서 울컥 미련이 올라오지만, 그때의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내가 밉고 다 내 책임인 것 같아서 자책하고 무덤 파기를 반복했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하나씩 아이의 재활 스케줄을 채워 나갔고, 이 아이와 함께 앞으로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는 정말로 why가 아닌, how에 집중할 차례다. 내가 자책하며 울고 있는 사이에도 삶은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까. 우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 물론 계속 괴롭지만 그것이 현실이었으니까 현실 먼저 챙기는 것이 그때는 필요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단계에서 계속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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