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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Sep 15. 2022

달달함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디저트

엄마 (68년생)

/달콤한 유혹과의 전쟁. 종전선언은 없다.


추석 연휴가 끝나갈 무렵 체중계에 올라간 남편. ‘어?’ 한다. 그가 체중계에서 하는 ‘어?’ 소리는 뻔하다. 몸무게가 줄었다는 거. 나와 정반대다. 내가 ‘어?’ 할 때는 쪘을 때다.  

남편은 왜 ‘어?’ 했냐고? 남편이 칼로리 푸둥푸둥 추석 음식을 먹지 않았냐고?  천만에. 남편은 지난 추석 연휴 내내 자~알 먹었다. 밥 숟가락 놓기 무섭게 송편도 먹고 약과도 먹고 샤인머스킷도 날름날름 따먹었다. 근데도 빠졌다. 왜?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남편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금세 체중이 줄어든다. 근손실이 오나보다. 먹는다고 지방이 늘진 않는다. 무게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남편은 세상 보람 없는 피조물이다. 실컷 먹여놔 봐야 조금만 방심하면 훅 빠져 버리니. 반면 나는 보람이 차고 넘치는 존재다. 먹는 대로 결과를 보여주니 몸무게의 신은 얼마나 날 이뻐할지. 상상만 해도 온 몸으로 거부하고 싶은 사랑이다.


살찌는 음식을 좋아한다. 고기와 해산물 중에는 언제나 나의 픽은 해산물이지만, 문제는 탄수화물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탄수화물 사랑.

어릴 때,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제일 이상한 건 ‘어우 난 이거 달아서 싫다’는 말이었다. 아니, 달아서 맛있는 건데 달아서 싫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이야? 어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안다. 나도 달아서 싫은 음식이 생겼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달콤함도 있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케이크, 도넛 등등.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우리나라에 상륙하기 전, 남동생이 외국에서 사들고 온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를 처음 먹었을 때가 생생하다. 머리 위에 작은 요정들이 둥둥 떠다니며 나팔을 불어주는 줄 알았다. 냉동실에 넣어뒀던 걸 꺼내 줬기에 한 입 베어 물때마다 하얀 설탕 코팅이 툭툭 갈라져 떨어지는데, 순결한 쾌락을 형상화한다면 바로 이 모습이겠지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길고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 1호점이 신촌에 생긴 거다. 그게 2004년의 일이니까 지금까지 18년간 이어진 치열한 전쟁. 난 여전히 크리스피 크림 앞을 지날 때마다 갈등한다. 한 박스 사?


몇 년 전 이런저런 일을 계기로 생전 안 하던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3년에 걸쳐 10kg을 뺐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라지만 사실 무척 천천히 빠진 거다. 한창 운동에 재미가 붙을 때에는 운동할 생각에 아침에 눈 뜨는 게 신날 정도였지만  체중은 한 달에 1kg 빠지는 게 다였다. 식단을 안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보다는 조심하기는 했다. 기름진 음식이나 고기는 안 좋아했으니 괴롭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탄수화물. 과자나 빵을 아예 끊을 수는 없으니 열량을 상대평가를 해서 먹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오레오나 포테이토칩을 골라 들고 싶지만, 고래밥을 집어 드는 식이다. 그램  열량을 따지진 않는다.  봉지에  칼로리인지만 본다. 어차피 과자는  봉지를 비워야 멈출  있으니까. 배스킨라빈스에 가면 엄마는 외계인을 먹고 싶지만 바닐라로 타협을 본다. 열량으로 따지면 레인보우 샤베트를 골라야 할거 같지만 우유맛이 듬뿍 나지 않는 아이스크림은 질색이다. 빵집에선 충격을 받았다. 크림이 잔뜩 들어간 빵보다 소보루빵의 열량이  높다니.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빵인데 이럴 수가. 역시 찌는 체질은 다르구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열량 높은  최애로 는다.


상대평가를 통해 간식을 고르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깨알보다 작은 글씨의 영양 표를 읽어야 하고,  물건  물건 들여다보고 비교해야 한다. 기막힌 , 앞에서 봤던 과자의 열량이 어땠는지 기억이    번씩 다시 봐야 한다는 . 결국 즐거운 간식 쇼핑은 피곤해진다.  자신이 한심해진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하나.

그랬건만

과자 봉지를 뜯고, 아이스크림을 핥는 순간 행복해진다. 탄수화물은 사랑이란 걸 실감한다.

그 깊고 깊은 사랑이 혀를 통해 뇌에 전기 신호로 전달되고 나면 문득 깨닫는다. 삶은 가혹하다.


맛있는 걸 잔뜩 만들어놓고는 먹지 말거나 쪼끔만 먹으라고 엄격하게 꾸짖다니. 단테의 신곡이 21세기에 쓰인다면 연옥 어디쯤 파티셰나 셰프들이 자리할지 모른다. 한 끼의 행복과 더불어 한 줌의 체지방을 주는 죄로 말이다. 아니다, 요리사가 무슨 잘못인가. 그들은 하나씩 만들어놨는데 두 개씩 집어먹은 내가 잘못이지.

설탕은 산업혁명의 부산물이라고 한다.  값으로 높은 열량을 먹여 오래오래 노동하게 만들었으니. 달콤함의 이면에는 자본과 제국주의가 결합한 탐욕의 역사가 깃들어있다는  배웠는데도, 단맛에 훌렁 넘어가는 이놈의 노예근성.

아흑, 만국의 다이어터여 단걸 끊어라.



딸 (97년생)

/ 혈당쇼크 짱!


좋아하되 함몰되지 마라

올해 초 읽었던 김영민 교수님의 칼럼 제목이다. 중학교 때부터 늘 누군가를 열렬하게 덕질하며 살았던 나에겐 뼈로 읽히는 글이었다. 교수님은 인생의 욕망을 디저트에 비유한다. 마음에 중심이 없으면 이성을 잃고 디저트에 달려들어 정신없이 먹다가 위장이 불쾌할 지경이 되어서야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맛있다고 해서 디저트에 얼굴을 처박고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달다구리 앞에서 정신줄 잡기. 그게 쉽나?


 <마틸다> 속 악독한 교장선생은 남학생이 자신의 케이크를 몰래 훔쳐먹자 전교생 앞에서 초콜릿 케이크 한판을 강제로 다 먹게 하는 처벌을 내린다. 초콜릿 크림을 얼굴에 치덕치덕 묻히고 맨손으로 꾸덕한 빵을 퍼먹는 소년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거북하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초콜릿 케이크 얘기를 한다. 그 케이크는 무슨 맛일까? 먹어보고 싶다. 마틸다 초콜릿 케이크를 포탈에 검색하면 자동완성에는 ‘파는 곳’이 뜨고 유튜브에는 레시피 영상들이 즐비하다.


디저트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먹기는 어렵다. 단맛은 지독한 구석이 있다. 오죽하면 입이 떨어질 듯 달다 라는 표현이 있겠는가. 대게 이런 경험은 일회성으로 만족되지만 디저트는 뒤돌면 아쉽고 심심하면 생각나는 끈적함이 있다.


많이 먹을 수 없으니 작게 만들어야 하고, 달콤함을 밀도 높게 쌓아 올려야 하니 손이 많이 간다. 쾌락과 괴로움 사이의 한 끗 차이를 잡아내기 위해선 어긋남이 없어야 하고 섬세한 장인의 솜씨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맛있는 디저트는 비싸다.


밥 한 끼와 비등한 가격. 하나를 다 먹으면 살찔 것도 알고 성인병의 리스크가 생길 것도 안다. 절제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현타와 진한 후회가 몰려 올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훗날의 걱정을 다 뒤로하는 건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쾌락적이다. 욕망의 집약체를 한입에 삼켰을 때의 만족감은 이로 말할 수 없이 짜릿하고 강렬하다. 우울할 때, 졸릴 때, 기쁜 일이 있을 때면 디저트를 먹는 것도 그만큼 정신에 확실한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적당히 좋아하는 건 어렵다. 먹는 거 하나에도 이렇게 고뇌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게 서럽기도 하다. 팬케이크, 와플, 크로플, 마카롱, 젤라토, 크림 롤, 몽블랑, 빨미까레, 밀푀유, 까눌레, 에끌레어, 갈레트. 발음도 하기 어려운 디저트들이 SNS를 타고 등장한다. 디저트는 발전하는데 인간의 몸은 그대로 라는건 비극적이다. 신께서 디저트를 발전시킬 능력은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당의 양은 늘려주지 않으시다니. 우리 인생이 거대한 <마시멜로 이야기> 처럼 느껴진다. 나는 개중에 홀랑 마시멜로를 집어먹는 어린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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