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서울시내
/전철이나 버스 한 번 타고 시내에 갈 수 있는 건 소중한 행복이라 믿는 구식 인간.
나는 내 기억이 잘 못 된 줄 알았다.
‘서울 시내’란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돌고래쇼라니 말이다. 돌고래쇼가 열리던 건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 아냐? 그것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근데 그걸 서울 시내에서 봤다고? 말도 안 돼. 머릿속이 뭔가 잘못됐지.
근데, 두둥~!
아니었다.
이 글을 쓰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혹시 몰라서 검색한 결과 내 기억이 맞다는 걸 확인했다. 검색어를 넣어서는 찾을 수 없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뒤진 결과였다.
1973년 5월 24일 조선일보 [돌고래쇼, 신세계 백화점서]라는 기사.
그해 5월 17일부터 6월 10일 사이 신세계 백화점 주차장 특설장에서, 서독(!)에서 파견된 돌고래쇼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서 돌고래쇼를! 그것도 딱 25일밖에 열리지 않았던 이벤트를 내가 봤다고! (돌고래쇼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어린 시절 기억이라 선명하게 남았을 뿐. 동물쇼는 반대한다.)
덕분에 지금도 ‘서울 시내’란 말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그림은 햇살 속에 빛나던 돌고래의 물기 머금은 피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명동에서 ‘경양식 레스토랑’을 운영하셨다. 마지막엔 결국 손해를 보고 가게를 접으셨지만 한때는 당시의 셀럽들도 찾아오던 제법 잘 나가는 핫플레이스였던 거 같다. 그 덕에 우리 남매들은 툭하면 서울 시내로 놀러 갔었고, 그 결과 내가 간직한 ‘서울 시내’의 이미지는 경복궁이나 정동길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 같은 게 아니다.
오고 가는 버스나 택시에서 풍겨오던 휘발유와 담배 찌든 내, (당시엔 운전기사부터 승객까지 모두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웠으니),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재밌어하던 코스모스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명동 골목에서 풍겨오던 하수도 악취와 음식 냄새, 도깨비시장이라 불리던 남대문 수입상가 진열대에 빽빽이 들어찬 온갖 수입 생활용품들, 거기서 엄마가 사주던 포도맛 혹은 체리맛 막대사탕 ‘투시팝’ 등등이다. (츄파춥스 상륙은 더 뒤의 일인 거 같다.)
한마디로 나의 ‘서울 시내’는 고즈넉한 전통이나 역사적 유적이 아니다.
자고 나면 많은 게 바뀌던 시대에 자란 아이가 열광하던 대중문화의 잡다한 흔적이다.
곁눈질로 훔쳐본 바쁘디 바쁜 어른들의 세계이고, 애들 앞에서 나 거기 가봤다고 뻐기고 싶어 하던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서울 시내’에 나갈 때는 살짝 두근거린다. 뭔가 근사한 걸 볼 거 같고 멋진 물건을 만날 거 같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강남이나 외국 갬성 터진다는 분당 어느 거리에 갈 때는 느낄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신선한 설렘이다.
바라는 건
서울 시내가 너무 젊어지진 않길. 근데 또 한편으론 낡아갈지언정 너무 늙어가진 않길.
젊은 인플로언서들이 너무 공격적으로 진격해오진 않길. 하지만 오래된 걸 불편하게 방치하는 무심한 어른들만 가득하진 않았으면 싶기도 하고.
서울 시내로 향하는 5호선 전철을 탈 때면 마음이 살짝 복잡해지곤 한다.
/ 도전! 나도 힙스터!
중학교 삼 학년. 학교에서 서강대학교 캠퍼스 투어를 갔었다. 서강대 정도면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캠퍼스 구경이 끝나고 친구들과 신촌을 누볐다. 미소야에서 돈가스에 곁들여나 먹던 우동을 무려 '우동소바전문점'에서 먹었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패밀리 사이즈도 먹었다. 일산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친구들도 나도 여전히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유명 맛집을 간 것도, 그곳에만 있는 특별한 걸 먹은 것도 아니지만 서울의 힘이란 대단했다. 그전까지 서울에 안 가본 건 아니다. 태어난 건 서울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서울 사신다. 부모님 손 잡고 홍대도 가봤었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서울 시내에서 논다는 건, 이전까지의 경험과는 다른 별세계 일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오늘.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땐 언제나 시내이다. 거기서 노는 게 설레고 신나서 그런 건 아니다. 가깝고, 교통 괜찮고, 식당 카페 많은 데 가려면 거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신촌도 이태원도 변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쓸고 간 자리는 텅텅 빈 유령도시가 되었다.
시내의 특별함은 이제 보기 힘들다. 그곳에서만 보고 살 수 있던 것들은 온라인 시장으로 옮겨갔다. 모두가 들뜨고 신난 길거리 분위기나 KFC 1호점 같은 랜드마크도 없다. 심지어 KFC 1호점은 올해 영업 종료했다. 새로 생기는 맛집들은 자릿세 때문에 중심부를 기피하게 되었다. 근래 갔던 술집 중 제일 좋았던 곳은 영등포 시장 근처였고 가보고 싶어 지도에 찍어둔 뇨끼 집은 연신내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내의 가치가 시내를 분산시켰다.
시내는 도시의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근데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높아지니 정말 '문화유산'만 남았다. 그래서인가. 여전히 가장 '서울'스럽고 풍경이 다른 곳을 꼽으라면 광화문 일대가 떠오른다. 클래식이 클래식인 데는 이유가 있나 보다.
흠. 쓰고 보니 건방진 서울 거주민의 글 같다. 서울은 여전히 별세계가 맞다. 다만 상징과 의미가 변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바쁜 도심과 젊음이 모이는 곳을 상징했다면 이젠 인프라 격차가 더 큰 화두가 되었다.
사대문 안에 있는 궁들은 만 24세까지가 무료입장이라고 한다. 나가면 다 돈인 서울에서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시내가 6개월뿐이 안 남았다. 더 더워지기 전에 실컷 즐기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