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맛집 줄서기
/ 언젠가 먹고 말 거야! 체스터의 근성이 부러움.
[대신 줄 서드려요. 3만 원]
나만 몰랐나? 이번 여름에 본 기사에 따르면, 잘 나가는 휴가지에선 맛집 줄서기를 대신해주는 알바가 있다고 한다. 주로 당근마켓 같은 데 그런 광고가 올라온다는데 가격은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 그 정도면 배보다 배꼽이 큰 거 아닌가 했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다. 휴가 때나 오는 먼 곳이라는 점, 한여름 땡볕 아래 한두 시간씩 기다리는 고역을 대신해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3만 원에서 5만 원쯤이야.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나는 아니다.
돈 문제가 아니다. 맛집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수다 좋아하고, 술도 즐기고, 물건 살 때는 취향을 꽤나 따지지만 맛집에는 무덤덤한 편이다.
몸의 실루엣이 순정 만화 스타일이냐고? 천만에. 어느 방향에서 봐도 명랑만화다. 먹는 거에 초연한 여리여리 몸매가 아니라 명랑만화 캐릭터처럼 동글동글 해서 맛집 어드벤처를 꽤 즐길 거 같지만, 나의 혀는 게으르다. 한 끼 때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기본이다. 그렇다고 라면 한 개를 다 못 먹는 소식좌는 아니고, 맛있는 걸 먹어도 감격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꼭 저기서 먹고 말겠어!’하는 투쟁적 의지가 약하다.
왜?
난 겁쟁이기 때문에.
겁 많은 사람은 안다. 그게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걸.
나는 겁이 많아서 운전도 하지 않고, 짜릿한 놀이기구도 못 타고, 루프탑 수영장에 갈 땐 물 무게에 건물이 주저앉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찜질방에 갈 땐 혹시 화재가 나서 벌거벗은 채로 가스에 질식돼 쓰러지면 어쩌나 불안을 느낀다. 아예 안 갈 정도의 겁쟁이는 아니지만, 갈 때마다 단 한 번도 안 빼놓고 그런 상상을 한다. 남편과 둘이서 여행을 갈 땐 우리 부부가 사고를 당해 딸 혼자 남겨지면 어쩌나 걱정하고, 딸까지 셋이서 여행 갈 땐 우리가 다 같이 사고를 당하면 고양이들끼리 어쩌나 걱정한다. 걱정을 물 샐 틈 없이 한다. (그렇게 겁 많고 걱정이 많은데, 이 몸매 이 체중을 유지하다니 나도 참-)
겁은 단지 물리적 공포를 향해 있는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에 대한 공포도 크다. 예를 들면 주식. 나는 주식을 하지 않는다. 작년에 증시가 정말 좋아서, 주식 안 하는 사람은 문명인 축에도 못 들 거 같던 때에도 안 했다. 주식을 시작했을 때 내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루 오르면 ‘내일은 떨어지면 어쩌지?’ 하루 떨어지면 ‘내일은 더 떨어지면 어쩌지?’ 이런 걱정 하느라 매일 전전긍긍할 거 같아서다. 그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주식은 꿈도 안 꾼다. 같은 이유로 게임도 안 한다. 시작하자마자 죽을까 봐.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섭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다시 맛집 얘기로 돌아오면, 내가 맛집 줄 서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겁이 많아서다.
뭐에 대한 겁? 길게 기다려서 들어갔는데 맛없으면 어쩌나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줄을 서느라 투자한 시간, 기다리느라 다른 걸 하지 못한 손실, 이게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을 때 드는 자책감 등등을 생각하면 웨이팅 리스트에 내 이름을 적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 참 어이없다. 이 나이 먹도록 난, 스스로 선택한 일에 따라오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안돼 있다는 얘기니 말이다.
선택의 대가가 항상 좋을 순 없다. 어떤 대가는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달콤하게 다가오고, 어떨 땐 실패란 이름으로 쓰디쓰게 다가온다. 맛있으면 맛있으니까 행복해하면 되고, 맛없으면 그 나름대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나의 쫄보 근성은 간장종지처럼 쪼그라붙는다. 쓰디쓴 대가를 치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챌린지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거다. 그까짓 거 그냥 밥 한 끼 일 뿐인데 뭐 그렇게 겁을 집어먹는지.
자 그러면 이젠 맛집 앞에 붙여놓은 웨이팅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릴 거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혀는 게으르다.
맛있는 걸 먹어도 시큰둥하다는 의미에서 게으른 게 아니라,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다는 의미에서 게으르다. (앗! 마침내 화두가 풀렸다! 그렇게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데도, 이 몸매 이 체중을 유지하는 이유) 그러니 굳이 몇 시간씩 검색하고 몇 시간씩 기다릴 이유가 별로 없다.
다만 실패라는 이름의 대가를 치를 마음 가짐. 그건 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더 나이 먹으면 겁이 더 많아질 테니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단련해야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건 ‘출발 드림팀’만의 얘기라며 코웃음 치던 나. 그놈의 코를 콱 비틀어준 사람이 있었어야 했는데.
/ 고생 끝에 낙이 온다!
59초에서 00초로 넘어가는 1초.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버튼을 누른다.
대티켓팅 시대. 콘서트 티켓팅이 시초였지만 이제는 복(숭아)켓팅 김(치)켓팅 약(과)켓팅 빵켓팅 등등 음식 티켓팅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국 팔도의 산해진미와 지방 어드매에 위치한 고집 있는 장인들의 손맛을 맛보기 위해 젊은이들이 촌각을 다툰다. 비단 ‘배달’ 되는 음식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프라인 맛집도 브레이크 타임 끝나는 시간 맞춰서 다섯 시 땡 치면 어플로 줄을 선다.
오늘의 목표는 가로수길에 위치한 유명 오꼬노미야키집. 한 달 전부터 가자고 벼르던 곳이다. 예약은 불가능하고 어플로 원격 줄서기는 가능하단다. 친구와 인근 카페에 앉아 심기일전하며 어플을 켜고 로그인을 한다.
16시 59분
5.. 4.. 3.. 2.. 1..
땡!
원격 줄서기를 누르고 재빠르게 인원을 선택한다. 완료만 누르면 되는 그때, 갑자기 결제수단 등록을 하란다. 줄서기를 하려면 어플에 결제수단까지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제가 식당에서 밥 먹고 도망갈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렇지만 하라면 해야지. 문자 인증하고 카드 번호 찍고 ARS 인증까지 하니 시간은 5시 12분. 완료 버튼을 누르자 대기 번호 14번이 뜬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정확히 1시간 27분 후에 테이블 앞에 착석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한 시간 반 기다릴 시간이면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혀를 찰 거다. 그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으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라고 ‘단순히 유명해서’ 하염없이 기다린 건 아니라고 항변해본다.
기준은 명확하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야 할 것.’ 예를 들어 피자는 이제 어딜 가도 맛집이 많다. 냉동 삼겹살은 집 근처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한편 가로수길 식당은 오꼬노미야키만큼이나 함께 파는 술 ‘츄하이’도 유명한데, 이 술에는 소주, 탄산수, 과즙, 그리고 제철과일을 숭덩숭덩 썰어 넣어준다. 한 모금 넘기면 짜릿한 탄산감과 상큼한 과일이 기름진 입 안을 씻어 낸다. 서울에서 츄하이를 만들어 파는 건 (내가 알기론) 여기밖에 없다. 80분을 기다렸던 한식당에서는 삼삼하지만 식감 좋은 묵은지회말이를 먹었고 2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중식당에서는 매콤하지만 바삭한 돼지고기튀김을 먹었다.
이 음식들을 안 먹어 본다고 인생이 아쉬워지는 건 아니다. 큰 영향이나 타격은 없을 거다. 오히려 맛보지 않았다면 ‘또 가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 테니 행복의 총량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몇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여 가게 되는 건 심심한 내 인생에 한 입에 삼켜 즐길 수 있는 기쁨으로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극히 부자였다면 신라호텔 파인 다이닝에 들어가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세요를 외쳤겠지만 그러기엔 잔고가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놀러 나왔는데 김밥천국을 갈 수는 없는 노릇. 새로운 맛집을 뚫어 보기엔 외식값이 한 두 푼 오른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리스크는 피하고 싶다. 그래서 안전한 투자를 하는 거다. '시간' 투자.
더구나 요즘엔 번호만 걸어두면 되니 그 사이에 카페에서 수다 떨고 옷 구경하고 너무 허기지면 주전부리도 입에 하나 물 수 있다. 수시로 핸드폰을 노려보긴 하지만 친구랑 있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이다. 기다림을 최대한 덜 기다림 같이 보낼 수 있으니 해볼 만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식당들도 있다. 이 경우 1. 주변 다른 식당들도 다 웨이팅이 있거나 2. 다시는 이 동네에 올 일 없을 거 같을 때만 기다린다. 결국 기다림의 원칙은 희소성의 원리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만큼 기다려서 먹으면 맛이 없을 수 없지 않으냐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yes 다. 기다려서 맛있는 거 맞다. 그렇지만 그 맛은 그저 허송세월이 아닌 나름의 추억, 소소한 콘텐츠가 있고 마침내 착석했을 때의 희열도 있어 대체 불가능한 맛이 된다. 다소 정신승리 같긴 해도 고개 저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기억은 미화되고 가장 오래 회자됨을 모두 동의하지 않는가.
다만, 이 모든 건 맛있는 식당이 전제임을 잊지 말자. 20대의 이야기라는 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