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카공
*카공이란? 카페에서 공부 혹은 노트북을 하는 행위
/카페에서 뭘 하기엔 집중력이 부족한 스타일.
Q. 프랑스 파리에는 ‘혁명의 대학’으로 불리던 역사적인 장소가 있다. 그곳은 어디일까?
A. 카페 르 프로코프.
프랑스혁명 당시 많은 사상가와 논객들이 그곳에 모여 혁명을 논하고 사상 투쟁을 벌였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르 프로코프가 소르본 대학 근처에 처음 문을 연 게 1686년이라고 하니 우리 역사로 따지면 숙종 12년. 그때부터 파리의 카페는, 때론 사교의 장으로, 때론 혁명을 논하는 장으로, 또 어떨 땐 철학과 예술이 탄생하는 장소로 쓰였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글을 쓰거나 철학자 예술인들과 어울리던 카페 드 플로르는 파리 여행 코스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역시 프랑스, 역시 파리야!'라는 마음이 든다면 얘기를 이렇게 바꿔보자.
사르트르는 카페 드 플로르에 아침 9시에 와서 낮 12시까지 글을 쓰고,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2시에 돌아와 친구들과 4시까지 토론을 벌이고, 4시부터 8시까지는 다시 글을 썼다고 한다. 당시 카페 사장의 말을 빌면, 에스프레소 달랑 한 잔 시켜놓고 말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카공 빌런 아닐까.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끔 올라오는 최강 민폐족 말이다.
카공에 대한 기사를 뒤져보면 대개 결론이 비슷하다. 공부할 땐 하더라도 매너를 지키자는 얘기. 오랫동안 한결같은 결론을 낼 정도로 답이 뻔한데도 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카공에 대한 기사가 나올까? 어쩌면 카공의 진짜 문제는 단지 매너나 에티켓의 문제를 넘어선 지점이 있는 게 아닐까?
그저 공부나 일하는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카공족 뒤에는 숨겨진 면들이 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나 비염 환자가 훌쩍대는 소리가 용납 안 되는 도서관이나 독서실 문화가 있고, 그런 문화 뒤에는 작은 문제에도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숨 막히는 경쟁 시스템이 있고, 민폐는 자칫 혐오의 감정을 건드린다는 공포도 깔려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그 공포에 더 민감하다.
한편 카페 입장에선 어떤가. 카페는 엄연히 영업장소인 곳인데도 도서관 역할을 떠맡으니 속이 끓지만, 자칫 얘기를 잘 못 꺼냈다간 리뷰 테러를 당하거나 손님이 끊기는 일이 발생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카페 역시 혐오 감정 앞에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카공을 둘러싼 분분한 의견은 노키즈존 논쟁과 비슷한 맥락에 있는 거 같다. 내 입장은 절실하고 힘겹지만, 상대방은 뻔뻔하고 냉혹하다고 본다. 그래서 서로 날을 세우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날이 휘둘러지고 나면, 더 사나운 날이 튀어 올라온다. 뉴스를 보면 챙챙 대며 부딪히는 소리가 세상에 가득한 거 같다. 근데 이 삐쭉삐쭉한 날이 훌러덩 무뎌지는 순간이 있으니, 하나는 프랑스 파리 카페의 역사처럼 ‘남의 얘기’ 일 때. 또 하나는 대단한 성공 사례가 있을 때. 봉준호 감독 얘기가 그중 하나다.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나 후 쏟아진 비하인드 스토리 중엔 어느 카페 얘기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시나리오를 쓴 곳이 서래 마을에 있는 어느 카페였다는 거. 지금도 붙어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그곳에 가면 바로 이 자리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시나리오를 집필하던 좌석이라는 안내문까지 붙어있었다. 카페 사장님의 자부심과 응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람들 역시 멋진 작품이 탄생한 곳이라는 생각에 성지 순례하듯 그곳에 가서 인증숏을 남기고 SNS에 글을 올린다. 알만한 분이 왜 남의 영업장에서 그랬냐는 태클은 보지 못했다.
성공은, 혐오를 호감으로 바꾸는 마법을 부리는 걸까?
나는 영화 기생충에 열광하고 봉준호 감독의 성과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만, 그의 멋진 성공이 혐오를 지우는 결정적 마법이 되길 바라진 않는다. 혐오를 지우는 과정은, 뛰어난 몇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민과 논의 그리고 열린 마음에 의해 사라지는 게 아닐지. 그러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고 해결은 더디겠지만, 단숨에 지워질 문제라면 애초에 혐오가 안됐을 수도 있다. 혐오의 껄끄러움이 지워진다고 해도, 그 과정의 흔적마저 말끔히 없애기 위해 안절부절못할 필요도 없을 거 같다. 사르트르의 카페 에피소드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의 뒷얘기라는 재미를 주지만 골치 아픈 손님을 맞아야 했던 카페 사장의 푸념도 남기지 않았던가.
세상에는,
한방에 로켓펀치를 날려 KO로 해결되는 일보다는, 서로 무딘 펀치를 주고받아 얼굴이 퉁퉁 부은채 12라운드까지 뛰며 천천히 해결되는 일이 훨씬 많다. 그래도 KO가 속 시원하지 않냐고? 에이~ 영화 록키1의 감동은 얼굴이 형편없이 망가진 패배자 록키가 연인의 이름을 부를 때 불멸로 남는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목격했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시원한 KO승을 거둬서가 아니다.
/카페 기프티콘 상시 환영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장인이 아니다.
대학교의 메리트 중 하나는 도서관이다. 방대한 책과 자료들. 넓고 쾌적한 열람실. 고시생이든 취준생이든 졸업을 유예하고 도서관에 눌러앉아 공부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리마다 구비되어 있는 콘센트와 조명, 깨끗한 책상과 삐걱거리지 않는 의자. 집중하기에 최적의 조건.
그러나 누군가에겐 집중력을 잃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하얗고 고요한 열람실의 공기를 들이 마실 때면 최면 가스가 콧속으로 침투하는 상상을 한다. 칸막이는 사생활을 보호해주다 못해 나의 수면도 보호해줄 것처럼 든든하다. 잠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털고 뺨 좀 때리자니 도서관 혼자 쓰냐는 포스트잇이 날아올 거 같다. 치트키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자니 (*3화 <얼어 죽진 않아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참고) 얼음이 덜그럭 덜그럭 요란스럽다. 초콜릿을 먹자니 비닐이 바스락 거린다.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아도 사지가 꽁꽁 묶였다. 분명 열람실은 넓고 쾌적한데, 숨이 막히고 짓눌리는 기분이다.
열람실에서 탈출해 내방 책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결 자유로우니 집중이 잘될.. 리가 없다. 거슬리는 게 많아도 너무 많다. 문자 그대로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침대는 지나치게 크고 유혹적이다. 방문 너머 냉장고에 뭐가 있었는지 자꾸만 머릿속으로 가늠한다. 잘 아는 곳이라 상상이 쉬우니 방 밖에 오가는 가족과 고양이들의 발걸음 소리에 귀가 쫑긋거린다. 쓸고 닦아야 할 먼지가 눈에 띄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필자는 오늘 브런치 쓰기 전에도 약 10분간 책상 먼지를 닦았다.) 보이는 거 많고 들리는 거 많으니 방안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어떤 날에는 그게 마음 속 땅굴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장인(非匠人)이 따지고 가려서 선택한 곳. <카페> 적당한 소음과 와이파이와 음료가 있는 곳.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와작와작 씹어먹어도, 키보드 자판을 키스킨 없이 두드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원두 갈리는 소리, 스팀 치는 소리, 옆 테이블 말소리가 내 소음을 묻어준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그중에서도 산만한 사람은 산만한 곳으로 보내야 하나보다. 카페를 오가는 사람들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공공장소에 있다는 생각을 일깨워줘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끔 도와준다. 아무도 나를 안 보는 걸 알면서도 누가 나를 감시하는 기분이 든달까. (이런 것도 판옵티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카공을 할 땐 사람들 사이로 묻힐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선호하게 된다. 분위기 좋은 개인 카페는 산뜻하지만 사장님과 사뭇 가까워 어쩐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2시간에 한번 음료니 간식이나 사 먹어도 찝찝한 마음. 그렇지만 내가 알바생 입장이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카공족을 신경도 안 쓰긴 했다. 매일매일 와서 나란히 문제집 펴놓고 연애하는 고등학생 커플 볼 때만 너네 그렇게 해서 언제.. (이하 생략) 하는 잔소리만 속으로 삼켰지.
카공의 재밌는 점은 카페의 소음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건 또 아니라는 거다. 조용한 거 싫고 익숙한 소음은 거슬려서 스타벅스에 왔는데 자연스럽게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어쩌면 이런 거 저런 거 보다도 돈 쓰고 ‘군중 속의 나'를 느끼고 싶었던 게 본심 일지도 모른다. (철저히 제 이야기이며 카공족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 홀로 노트북에 몰입한 나.. 제법 만족스러워.
과한 콘셉트이든 자의식 과잉이든 중요한 건 여기라도 있다는 점이다. 시작이 절반이듯 카페에 온 게 절반인 사람도 있다. 돈 안 쓰는 곳에서 집중력 발휘하기, 내 자신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러니 카공족을 너무 밉게만 보지는 마시길. 디저트도 열심히 사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