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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Aug 25. 2022

적립이나 할인카드 있으세요?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할인과 적립

엄마 (68년생)

/비번이라도 똑바로 기억했으면


1. 남편 생일이었던가? 아니면  생일? 아무튼  케이크를 사기 위해 빵집 계산대 앞에 서있었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  앞에 사람이 줄줄줄  뒤에도 사람이 줄줄줄. 그때 깨달았어야 한다. 순서를 기다리는 바로  시간이 앞으로 다가올 사태를 준비하는 더없는 찬스였다는 .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진열대에 놓인 화려한 케이크들에 정신을 뺏겼던 나는 일격을 당했다.

“고객님, 적립이나 할인카드 있으세요?”

아뿔싸. 왜 그걸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가. 난 허겁지겁 할인되는 게 뭐뭐 있냐고 더듬댔고, 통신사 할인이 된다는 얘기에 폰에 있는 멤버십 앱을 열었지만, 자동 로그아웃 돼있는 앱의 비번이 기억나지 않아 두세 번의 시도 끝에, 결국 통신사 멤버십 할인을 포기하고 만다. 내 뒤에 서있던 사람들의 ‘얼른 계산하고 나오시죠’ 눈빛 공격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아- 아낄 수 있었는데!  


2. 며칠 전 영화 <놉>을 보러 혼자 갔을 때였다. 이번엔 미리 할인 여부를 챙겼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내가 가진 신용카드로 현장 결제했을 때 할인폭이 가장 컸다. 오케이, 좋았어! 나름 야무진 소비자 다움을 장착하고 극장에 도착했을 때가 영화 시작 2분 전. 마음이 급하다. 재빨리 스캔하니 매표소에는 직원이 딱 한 명. 그나마 나이 드신 어른을 상대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렇다면 기계가 빠르겠지? 난 21세기형 진화한 중년답게 티켓 판매 기계 앞에서 거침없이 버튼을 누른다. 영화 고르고, 시간 고르고, 인원수 고르고, 좌석 고르고, 결제방법 고르고, 티켓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영화 시작 1분 전. 가만, 내가 신용카드 할인은 제대로 챙긴 건가? 할인 버튼을 눌렀어야 하는 거 아냐? 어쩌지, 미리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티켓이 나오는 시간 동안 초조 불안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기계는 세상에서 제일 느리게 티켓을 내줬고, 그걸 뽑자마자 부리나케, 결국, 매표소 직원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제가 이걸 샀는데요 할인이 됐는지 궁금해서요!”

그날 난, 무사히 할인이 됐다는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기계가 보여주는 간단명료한 안내문 앞에선 문해력이 턱없이 떨어진다.  무시무시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오프닝 스릴러를 경험한 나의 소감. 아-아끼기 더럽게 힘드네!  


3. 극장 가는 걸 그렇게 즐겼건만, 내 폰에는 극장 앱이 깔려있지도 멤버십이 가입돼있지도 않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된 딸은 경악했다.

“여태 포인트 다 모았으면 엄마는 VVIP였을텐데!”

참나 무슨 똥배짱인지. 진작 가입했다면 요즘처럼 극장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할인도 받고 공짜 티켓도 쏠쏠히 챙겼을 텐데. 근데 딸아, 더 경악할 일은 뭔지 아니? 최근에 CGV에서 문자가 왔더라. 멤버십 가입해놓고 쓰지 않은지 너무 오래돼서 휴면계정이 됐다고. 그래, 엄마는 이미 가입돼있던 거야. 근데 그 많은 영화를 보면서 포인트 적립을 하나도 안 하다니. 아-난 천벌 받을 거야!  


4. 지금 쓰고 있는 신용카드를 만들 때에 직원이 말했다.

“결혼은 하셨고 자녀분도 있으시죠? 그럼 마트 가서 시장 보고, 애 학원 보낼 때 유리한 카드를 쓰셔야죠, 자 이거요!”

그렇지만 난 그 후로 오랫동안 마트보다는 생협 매장을 자주 찾았고, 아이 학원비는 현금으로 송금하곤 했다. 즉 내가 쓰는 신용카드의 혜택을 알뜰히 누리지 못한 거다. 그러다 얼마 전 알게 된 건데,  내가 쓰는 카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단다. 혜택이 많아서 카드사가 손해 봐서 그런 건가? 난 그걸 별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내가 챙기지 못한 게 과연 카드 혜택뿐일까?

쥐도 새도 모르게 살그머니 왔다가 스르르 사라지는 생일 쿠폰들 (얘들아, 너네는 왜 스파이처럼 움직이니?) 가입하면 혜택이 많다는데, 가입하려면 써넣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관두고 마는 수많은 멤버십들 (노안이 일찍 온 나는 작은 글씨 앞에서 히스테릭해진다) 막상 포인트를 쓰려고 하니 도무지 비번이 생각 안 날 때 (이상하다 내가 기억하는 비번은 분명히 4자리인데 왜 6자리 비번을 대라는 건지). 

이런 것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푼돈에는 연연하는데 할인과 적립에는 초연한 나의 모순. 어이없다.  

 

5. 내가 알뜰 소비자가 되지 못하는 건 숫자와 치밀한 계산에 취약한 나의 태생적 한계도 있지만, 21세기의 적립과 할인은 나이 든 이에게 가혹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에 약하면 소외되기 쉽고, 자신의 소비패턴을 숙지하지 못하면 불리하기 쉽고, 결정적으로 노안 때문에 글자 읽는 게 피곤해지면 모든 게 꽝이다.

덕분에 사는 게 더 피곤해졌다. 예전에 아이가 어릴 땐, 내가 챙겨 먹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라서 속이라도 편했는데, 애가 자라나서 소비할 때 혜택을 꼼꼼히 따지고 짚어주니 속 쓰릴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이 모든 불합리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건, 한 가지 의문 때문이다.

“물건 파는 기업에서, 내 돈 아껴주려고 그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혜택을 개발하는 걸까? 과연?”

이 강렬한 의문 때문에 나는 20세기적 전략으로 방어에 나선다. 그냥 덜 쓰면서 더 아끼자. 정말이지 내가 봐도 진부하다. 무디다. 그래서 21세기식 소비는 버겁다.  




딸 (97년생)

/쿠바버 먹고 싶다


흑석동 소재 모 대학교. 의과대학 건물 2층에서 도서관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에는 카페가 있었다. 입학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사 먹는다는 음료 ‘쿠키 바닐라 버블티’ 줄여서 쿠바버는 학교의 명물이자 자랑이었다. 쿠바버는 오레오 바닐라 아이스크림, 얼음을 갈아 만든 스무디 음료로 버블이 쫀득보단 서걱서걱에 가까운 게 특징이었다. 혈당 수치가 폭발할듯한 단맛과 머리가 찌르르한 차가움은 잠 깨우기에 최적이어서 학생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 쿠바버를 마셨다. 지갑에 학생증 없는 학생들은 많아도 스트라다 쿠폰 없는 학생은 드물었다.


음료 15잔 마시면 2500원 할인. 글자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준 15잔을 마셔도 10%가 안 되는 금액이니 대단한 혜택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참새 방앗간처럼 하루 한 번은 꼭 가는 곳이니 안 챙길 수는 없는 노릇. 차곡차곡 두 자릿수 채웠을 때쯤 지갑을 잃어버렸던 날엔 카드보다도 재발급 안 되는 카페 쿠폰이 먼저 생각나 가슴이 허했다.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했는지 요즘 카페는 손주 도장 찍지 않고 번호로 적립을 해준다. 11자리만 누르면 스탬프 하나 생성. 편리하고 안전하게 뚝딱. 다 아는데, 분명 다 아는데도 카페 직원이 “적립해드릴까요?" 하면 “아니요 없어요"라고 대답하고 “하나 만들어드릴까요?” 하면 “괜찮아요"가 먼저 나온다. 별거 아닌데도 어쩐지 귀찮고 뒷사람 눈치도 보이는 탓이다. 그 대화를 같은 곳에서 네 번쯤 하면 그제야 왜 진작 안 했지 후회하면서 쓱 하니 번호를 읊는다.


할인 적립의 메커니즘은 껄타령으로 시작한다. 아 그때 가입할 껄, 지난번에 카드 할인받을 껄, 통신사 포인트 쓸 껄. 남들 다 받고 있는 혜택 나만 못 받았을까 봐 발 동동 구르며 개인정보를 내놓는다. 분명 머리로는 이 가입과 혜택의 본질이 특정 결제 수단으로의 유인 혹은 매장 단골 유치임을 안다. 대표적 예시로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연회비 46800원을 내면 네이버 페이 결제 시 포인트가 더 큰 비율로 붙는 게 특징이다. 이 멤버십에 가입함으로써 우리 집은 대부분의 온라인 쇼핑을 네이버 스토어팜에서 한다. 매 결제마다 미가입자와 비교해서 얼마큼의 보너스 포인트를 받는 것인지 보여주고 매월 회비와 비교해 얼마큼의 이득을 봤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더 잦은 쇼핑을 조장한다. 그럼에도 이걸 놓쳤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엔 기업에 의한 ‘호구'가 아닌 혜택을 미처 몰랐던 스스로에 의한 ‘호구'가 된 기분이 든다.


쿠폰도 비슷하다. 2만 원 이상 구매 시 8% 할인! 5만 원 이상 구매 시 3천 원 할인! 살 것만 담아 3만 원 쓰는 게 더 경제적인걸 알아도 꾸역꾸역 채워 4만 7천 원을 쓴다. 뻔한 유도 뻔한 낚시 인걸 알아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심리. 적당히가 아니라 과소비를 했음에도 더 풍족하고 알뜰하게 샀다는 착각. 남에게 지거나 호구 잡히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자꾸만 휘둘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순이다. 아마 <스타트렉>의 스팍이 옆에 있었다면 한소리 했을 거다. 


고로 다 귀찮고 짜증 나는 데다 기업의 술수에 불과하니 유혹을 뿌리치고 100% 지불하면서 적당히 사는 게 나을까? 그러기엔 극장 한 번에 14000원은 너무 큰 금액으로 와닿는다. 거기에 나처럼 재테크도 안 하는 사람은 이 적립과 할인을 소소한 재테크로 여겨 쏠쏠한 뿌듯함을 얻는다. 놓칠 수 없다. 어리석은 걸 알아도 어리석기를 자처하고 만족감을 얻겠다는 알 수 없는 심리. 그야말로 혜택탈트 붕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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