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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May 12. 2022

남는 건 사진 뿐?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인생네컷

엄마 (68년생)

/자백한다. 뚱뚱하게 나온 사진은 없다. 뚱뚱한 내가 있을 뿐.


요즘 그게 유행이란다. 4컷 짜리 즉석 사진. 사실 처음 등장은 아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지하철 역에는 즉석 사진 부스가 있지 않았던가. 영화 <멜리에>에선 즉석사진 부스 밑에 버려진 사진 조각들을 모으는 남자 얘기도 나오고 말이다.. 근데  딸아이가 인생네컷이란  인기라고 얘기해주는  처음 들을  ‘~ 그런  있어?’ 했다. 사진을 찍자고 부스로 데려갔을  잠깐 쫄기도 했다. 거기 붙어있는 젊은이들 사진을 보니  저렇게 못할  같아서.


처음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경험이 필름 카메라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렌즈 앞에서 몸이 굳는다. 일 년에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몇 번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어떤 표정이 괜찮은지 오리무중이고, 손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하나아~ 두울~’할 때까지 계속 허우적댄다.

겨우 네 가지 표정 짓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겨우’라니! 표정을 네 가지 짓는 건 ‘무려’라는 부사가 어울린다고! 거기에 심지어 ‘인생’ 네 컷?


처음 글을 읽은 게 모니터가 아니라 종이책이었던 사람들은 인생이란 말을 들으면 ‘등이 휠 거 같은 삶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같이 떠오른다. 그 단어 속에는 ‘묵직한 일회용’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어서 아무 데나 붙이면 안 되고 드높은 신전에 모셔둬야 할 것만 같다. 한데 놀랍게도 재미로 찍는 즉석 사진에 인생이 붙다니. 이 묘한 충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인생’은 너무 무겁고 ‘네 컷’은 너무 많다.

예전부터 익숙한 것도 젊음의 문화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거 같다.  


안돼, 안돼, 이렇게 머리가 복잡해선 안된다.

머리가 복잡하면 몸이 굳고, 몸이 굳으면 사진이 재미없게 나온다.

예전에 <도전! 슈퍼모델>이란 프로그램에서 타이라 뱅크스 맨날 외치지 않던가. 쓸데없는 생각이 많으면 사진 망친다고. 타이라의 충고대로 머리는 가볍게 하고 몸은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 풉-!

칠순의 작가가 MZ세대 말투를 속성으로 배워서 쓴 드라마 장면을 본 느낌이랄까.






딸 (97년생)

/나도 인생네컷 같은 사업 아이템 간절


모두 다른 네 가지 표정, 네 가지 포즈 취하기

모델이 얼마나 대단한 직업인지는 인생네컷 부스에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빠르고 정확하고 다양하고 예쁘게 찍기. 표정이나 포즈가 중복되면 애매하므로 피할 것. 보정은 불가능. 한번 망치면 두 번째 기회가 오지만 두 번째 망치면 세 번째는 없다. 머리 정돈하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브이, 하트, 턱받침, 입술 내밀기. 신속하고 확실해야 한다. 자신이 없다면 익살을 콘셉트로 가거나 귀여움 +5000의 효과를 주는 머리띠, 탈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가 4개가 되자 사람들은 네 컷짜리 실물 사진에 눈을 돌린다. 수정도 꾸미기도 안 되는 사진 두줄을 얻으려고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 이 인생네컷의 매력이다.

앞서 쓴 것처럼 매 순간을 치밀하게 계산해 찍었음에도 인생네컷은 그 속의 나를 자연스러운 나, 나다운 나라고 보게 하는 마법을 발휘한다. 후가공을 못한다는 절반의 제한이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증명사진보단 자유롭고 스마트폰보단 날것인 모습이 청춘의 단편처럼 보인다.  


실물사진이라는 형태 역시 중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빠르게 기화된다. 연사를 남발하고 공을 들여 찍었어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드물다. 음식 사진, 스크린숏, 좋아하는 연예인 등등과 뒤죽박죽 섞인 데다 양도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성능 이동식 카메라는 매 순간을 찍는 게 가능케 해줬지만 그 덕에 다시 꺼내볼 일도 드물어졌다.

인생네컷은 손에 잡히는 사진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편으론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서랍에 처박기엔 마음에 걸려 보이는 곳에 두게 되고, 그게 쌓여 벽에 덕지덕지 붙으면 추억들이 한데 모인다. 그걸 보고 있으면 중독처럼 더 자주 찍게 된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인생네컷을 찍는다고 우정이 커지거나 추억의 무게가 달라지진 않는다. 혹은 혼자 찍고 붙여놓는다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 분할이라는 형태가 그때의 시간과 흐름까지 담아주는 거 같아서 4000원에 내 인생의 어느 순간을 손안에 넣는 쏠쏠한 감각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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