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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Jul 21. 2022

미용실 잔혹사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미용실

딸 (97년생)

/ 매직해야하는데..


이 작품은 눈물의 드라마부터 참혹한 비극과 스릴러,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 성장과 모험 등이 담긴 복합장르물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장르도 배경도 다르지만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 지향점이 현재의 모습을 결정한다.


<장항동의 비극>


락커를 꿈꾸던 질풍노도의 중학생이 있다. (지난 브런치 글 참조) 그녀는 계란판으로 방음벽을 만든 단칸방에서 기타를 연습하고 평일엔 편의점 알바 중 틈틈이 작곡을 하며 주말엔 퀴퀴한 홍대 지하 공연장에서 부조리한 세상을 노래하는 것이 꿈..이지만 화목한 가족의 품에서 따수운 밥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그 밥이 얼마나 따숩던지 엄마가 머리 자르러 가자고 하면 한 숟갈 입안에 넣으며 순순히 알겠다고 했다.

일산 장항동 마XX아 원장님은 스타일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짧고 통통 튀는 앞머리가 사시사철 언제나 같은 길이를 유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원장님의 자신감은 세련된 스타일링 감각과 다년간 잘 다져진 테크닉을 기반으로 하긴 했다. 문제는 그 확고함이 누구를 상대로도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장님에게는 질풍노도의 중학생도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가진 손님일 뿐이었다.

사각사각.

원장님의 가위가 중학생의 앞머리와 애원과 자존심을 함께 잘라냈다. 막아볼 새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났다.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도 거울 속 내 눈썹이 또렷하게 보였다. 눈썹 위 1센티 높이에 가지런히 자리한 머리카락들. 감출 수 없는 순둥이 얼굴이 밍숭맹숭 드러났다. 우울한 청춘이나 고독한 락커는 될 수 없는 모양새였다. (원래도 될 수 없었다)

내 안의 락커는 그렇게 참혹히 살해당했다. 그것도 돈 내고.


<목동사거리 진실매장사건>


역병은 한 남자로부터 시작됐다. 이름은 지드래곤. 그는 어려서부터 많은 역병들을 일으켰다. 화려한 로고의 MCM 백팩, 개구진 페도라, 납작한 반스 신발 등. 본인과 같은 감각과 자신감이 있지 않는 한 사람을 궁상맞아 보이게 하는 악명 높은 질병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대규모 집단감염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바로 2009년 하트브레이커 활동 중 일으킨 ‘백금발병'이었다. 본 질병은 이전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쇼크가 전국구 단위로 향후 몇 년 동안 끼친 것은 처음이었다.

그중 한 케이스로 양천구에 살던 모 소녀는 발병 해로부터 4년 후인 2013년에도 금발을 꿈꾸었다. 지드래곤이 심은 백금발에 대한 환상이 불도장처럼 마음에 찍혀 남은 것이다. 하여 그녀는 고1 여름방학 난생처음 탈색을 결심한다. 부모님을 등에 업고 집 근처 미용실에 방문한 그녀는 자신 있게 금발을 외쳤다. 두피가 따끔 눈물이 찔끔 났지만 인내했다. 마침내 탈색 약을 모두 씻어내고 거울 앞에 앉은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과 지드래곤의 괴리를. 한 번의 탈색으로는 백금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좌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근본적인 깨달음을 줬다. 자신이 백금발을 한다한들 지드래곤 같은 간z1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지만 본인의 고집으로 여기까지 와놓고는 후회를 내보일 수는 없는 법. 더구나 돈을 지불할 부모님은 예상은 했지만 언짢다는 눈빛을 하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실을 묻기로 했다. 본인은 양아치 옐로우 머리를 얻게 됐다는 사실과 탈색을 50번 해도 지드래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것이 목동 사거리 진실매장사건의 전모이다.


<영등포 협상꾼>


장항동에서 눈물 흘리던 소녀는 스물다섯에 들어서야 자신을 제대로 마주한다.

난 감성 훈녀 스타일은 안되는구나. 승부는 귀여움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미용실에서 외쳤다. 앞머리는 최대한 짧게 잘라주세요. 시스루뱅이 판을 치는 세상에 처피뱅도 아닌 유치원생 앞머리를 요구하자 원장님은 조금 당황스러워 보이셨다.

잘 어울리실 거 같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원장님 역시 많은 비극과 후회를 목도한 탓에 함부로 잘랐다간 곤란해질까 걱정인 눈치였다.


사각사각

더 잘라주세요

사각사각

더 잘라주세요

... 더요?


앞머리를 놓고 두 사람은 한 끗 차이 협상을 했다. 조용한 가위소리에 긴장감이 팽팽했다.

분명 내 앞머리인데 원장님이 수비였고 내가 공격이었다.

아예 눈썹 위로 잘라드릴까요?

나의 철옹성 같은 의지에 원장님도 승부수를 던졌다.


사각사각사각


마침내 눈썹 위까지 자른 원장님은 사뭇 긴장하셨다.

진심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같은 머리인데 열다섯엔 싫다고 울었고 스물다섯엔 좋다고 방방 뛰었다. 왜일까.

아직 스물다섯이지만 동안에 대한 의지가 샘솟은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이건 실패로부터의 경험과 교훈 덕에 생긴 감사함이다.

여기서 실패란 <장항동의 비극> 이 아니다. 바로


<목동 자가미용의 비극>이다.


약은 약사에게.

머리는 디자이너에게!




엄마 (68년생)

/ 김수현도 원래 굉장한 곱슬이라고? 반갑다 친...아니 젊은이.


"하고 싶은 걸 말씀하세요, 타협은 제가 할게요.”


세상에.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여준 영상을 보다가 심쿵할 줄이야.

구독자 127만의 헤어디자이너 기우쌤이 올리는  ‘망한머리대회’라는 영상 중에 나온 말 때문이다. 영상 속 의뢰인이 ‘이 머리만 벗어나게 해주세요’ 라는 태도로 말하자 기우쌤이 그 말을 한 거다. 고객님은 편하게 하고 싶은 걸 말씀하라고. 타협은 내가 해서 망한 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크~ 감동의 불벼락을 맞은 건 나만은 아닌 거 같다. 영상에 붙은 댓글을 보니 나와 같은 전율을 느꼈다는 고백이 줄줄 이어졌으니 말이다.  


나로 말할  같으면, 미용실에 가서 하고 싶은  말해본 적이 별로 없다. ? 나는 숱이 굉장히 보기 드문 곱슬머리라서.


어느 정도 곱슬이냐 하면,  파마한  아니라 원래  머리라고 하면 다들 놀란다. 히피펌을  거처럼 구불거린다.  나이가 되면 머리숱이 줄거나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지거나 얇아져서 고민이라는데  머리는 여전히 ‘웰컴투정글이다.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 나오는 메리다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나는 그녀처럼 윤기 넘치고 부드러운 느낌은 전혀 아니다. 숱과 컬만 비슷하다는 뜻이다.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예전에 내가 미용실에 가서 의자에 앉으면 헤어디자이너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하곤 했다. 어떤 분은 당황했고 어떤 분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거의 똑같은 말을 하곤 했다. “스트레이트 파마하시려고요?”

한때 우리나라 미용실에서 곱슬머리는 척결 대상이었던 거 같다. 곱슬머리라고 하면 십중팔구 펴자고 했고, 스트레이트 파마를 안 해도 서비스로  “매직기로 펴드릴까요?”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 말은 100퍼센트 호의로 한 말이다. 나처럼 숱 많은 곱슬머리를 매직기로 펴려면 어깨 뭉침 보장일 테니. 좋은 뜻임을 알지만 나는 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과감하게 거부한다. 난 내 곱슬머리를 좋아하니까.

물론 용감한 거부 뒤엔 슬픈 배경 설화가 있다. 스트레이트 파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찰랑거리는 머리에 대한 야심을 품고 미용실에 간 적 있다. 아침에 들어가서 깜깜할 때까지 하루를 꼬박 바쳤으나, 머릿결은 다 상하고 컬은 깨져서 부스스 부풀어오른데다  파마약 부작용으로 다음날부터 손톱만 한 크기로 뚝뚝 떨어져 나오는 두피 각질에 기겁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달라졌다. 약도 좋아지고 기술도 발전했지만 난 여전히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지 않는다.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용실에서 내가 원하는 걸 말해본 적이 없다. 괜히 말했다가 헤어디자이너가 곤란한 표정을 짓거나 기가 막혀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하여 난, 타협한 걸 말한다. 이런 스타일은 안될 테니 저런 스타일로. 이걸 말하면 눈치 보일 테니 저걸로. 아흑~기우쌤을 만났다면 타협은 그분께 맡겼을 텐데!


남들과 다르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곱슬머리는 정말 사소한 ‘다름’이지만,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은 별 뜻 없이 지나치는 걸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헤어 디자이너의 눈치를 봤고, 미용실 간판에서 ‘악성 곱슬머리 전문’이란 말을 보면 주눅이 들었다. ‘악성’이란 말에 담긴 묘한 뉘앙스 때문이다. 곱슬머리는 나의 선택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지만, ‘악성’이라 하니 내가 뭔가 잘못한 기분이었다. 붐비는 버스를 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딴사람한테 내 머리카락이 닿아서 불쾌하면 어쩌지? 어디 사람 없는데 없나?

찰랑대는 머릿결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곱슬머리로 살다 보면 이 정도 경험치가 생기는데, 다른 건 어떨까.


학생이 남들 다 다니는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왜?” 소리를 듣게 되고

나이가 차서 결혼을 안 하면, 은근한 쑥덕임이 감지되고  

남들과 다른 취향일 땐, 억울한 평판이나 이유 없는 싸늘함에 시달려야 하고

대세와 다른 의견을 낼 때는 어금니 꽉 깨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곱슬머리는 한번 더 소중하다.

겁이 많아 남들과 다른 선택 앞에서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 내가, 곱슬머리라는 사소한 다름마저 없었다면, 울긋불긋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고 느끼고 좌절하고 버텨내는 이야기들을 그냥 놓치지 않았을까.

생명다양성 재단을 이끄는 최재천 교수는 말한다.

“다르면 다를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특별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낯선 미용실에 갈 때면 습관처럼 다짐한다. 내 곱슬머리를 좋아한다고 꼭 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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