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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Sep 22. 2022

나는 있고 엄마는 없는 자격증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운전

딸 (97년생)

/최고의 드라이빙송 'NCT 127 - 질주' 추천합니다


어렸을 때는 주말이면 엄마 아빠와 나들이를 자주 갔다. 서울 시내, 경기도 교외의 산책로, 멀리 가는 날이면 안면도나 강릉. 그때는 일산에 살아서 어딜 가도 강변북로 타고 30분은 달리는 게 기본이었다. 아빠는 운전을 하고 엄마는 퀸이나 비틀즈의 CD를 틀고, 나는 뒷좌석에 벌러덩 누워 구형 아반떼의 천장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평화로워 보이는 보통의 나들이. 뒷자리에서 홀로 쿨쿨 자는 딸.

여기엔 두어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어디서든 곯아떨어지는 무던한 신경. 둘째,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아무리 무던하다 한들 끼어들다 비틀거리고 과속방지턱에 붕 뜨는 차면 잠들 수 없다. 차체 천장의 풍경이 최면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안정적인 운전실력이 필수다. 아빠가 운전 숙련자인 건 수년간의 뒷자리 생활에서 알고 있었지만 그 가치를 깨달은 건 2019년 3월 모일 기능시험 연습 1일 차 때였다.


면허 취득 4년 차. 실제 운전 3년 차.라고 하지만 1년 차라고 하는 게 맞다. 자차가 없고 아빠가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만 가끔 몰아 운전 한 날을 다 합쳐도 6개월이 안된다.

삼 년이라 쓰고 일 년이라 읽는 시간 동안 무엇이 성장했냐면, 이제는 차선에 합류할 때 끄트머리까지 버티다 들어가지 않는다. 주차할 때 들락날락하는 횟수가 10번에서 5번으로 줄었다. 고속도로에서 나 홀로 경운기 속도로 가지도 않고 정체 구간에서 틈을 노려 끼어들기도 할 줄 안다. (시속 40킬로 이상 한정) 


이 놀라운 성과와 자신감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건 바로 ‘초보운전’ 네 글자와 옆자리 숙련자 동승이다. 바짝 긴장해 전면만 노려보다 룸미러로 뒷 창문에 붙어 팔랑거리는 초보운전 종이 쪼가리를 볼 때면 마음이 든든하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면 어떡하냐고? 그럴 리가. 네 글자 덕에 내 뒤는 홍해 바다 마냥 양쪽으로 갈라진다. 

초보운전 a.k.a 모세

든든한 옆좌석 역시 중요하다. 전면, 네비, 사이드미러, 룸미러, 계기판 눈 돌아가게 바쁜 내가 행여 놓치는 것이 있을까 운전을 지도해주는 아빠는 유사 성인군자다. 훗날 홀로 운전할 때도 아빠를 닮은 행운 인형을 데리고 다닐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초보운전 종이와 아빠는 자전거 보조바퀴 같은 존재다. 언제까지 네발자전거만 탈 수 없는 걸 알지만 가능한 떼고 싶지 않다. 이건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라서 삐끗하고 넘어졌다간 무릎 상처로 끝나지는 않는다. 떼야하는데, 혼자서 다녀야 하는데, 한 번 익으면 잘 다닐 텐데. 가정과 예측은 많고 실행은 못 하는 이유다. 


충동적으로 바다 다녀오기, 드라이브 스루로 커피 사기, 차박 하면서 별 보기, 페라리 핸들에 주먹 꽝꽝 치면서 흐느껴 울기 등등. ‘운전’하면 누구나 로망 하나씩은 있다지만 나는 면허가 없던 때에도 있던 때에도 없었다. 면허가 없었을 땐 기사님 계신 승용차 타고 다니는 게 로망이었고 면허를 딴 후에는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였다.


중급 끼어들기까지 마스터한 지금, 처음으로 로망을 하나 세워본다. 혼자 운전하기. 숙련자 없이, 인간 네비 없이 교외 한 바퀴 돌고 오기. 바짝 긴장해 음악도 못 틀고 풍경 하나 눈에 안 들어올 거다. 양평 라이브 카페가 목표였는데 울면서 강릉까지 가 만석닭강정을 사 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만석닭강정은 맛있으니깐, 분명 집에 올 땐 웃을 수 있을 거다.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잘못 든 길도, 집에 갈 방법은 있다는 마음으로 나서야지. 

그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 내년 가을?


사실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다. 면허 딴지 2년 정도 됐을 때 마찬가지로 초보운전인 친구와 무작정 제주도에 렌트 여행을 떠났다. 바닷가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출발하려는데 차가 자꾸만 띨롱띨롱 소리를 냈다. 원인은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고 주차장을 벗어나려고 하던 그때, 창 밖 젊은이들 네 명이 간절히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했다. 한 손에는 핫도그를 들고 나머지 손으로 일제히 허공을 내리치 듯 주먹을 휘둘렀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푼 것이었다. 그제야 허둥지둥 풀자 젊은이들이 웃으면서 엄지를 척 내보였다.


친절한 한국인들과 초보운전 네 글자 (이건 절대 못 뗀다)와 함께라면 못 갈 곳이 없지! 다른 사람은 한 명도 없는 나만의 움직이는 공간. 누구에겐 일상일지도 모를 로망을 꿈꾸며 오늘은 버스를 탄다. 





엄마 (68년생)

/버스 타고 창밖 보기 좋은 날씨라 설렘!


키 큰 나무들과 사람 허리쯤 올라오는 양치식물들이 뒤엉켜 빽빽한 정글 지대 어디쯤. 숲의 한쪽에서 달려오는 남과 여. 요란한 전투라도 치른 걸까. 옷은 엉망이고 검댕이가 묻은 얼굴은 땀으로 번들댄다. 헉헉대는 숨결. 다급한 표정. 남자가 흘낏 돌아보니 저 뒤에서 총을 든 한 무리가 두 사람을 쫒고 있다. 
“더 빨리! 놈들이 나타났어!” 
앞서 뛰어가던 여자는 한층 속도를 높이지만 표정은 절망의 농도가 짙어진다. 그때 여자의 시야에 들어온 바로 그것. 
“차! 저 앞에 차가 있어!” 
여자가 외치자 남자가 말한다.
“내 말 잘 들어. 넌 지금부터 이를 악물고 저 차로 달려가.” 
“너는?” 
“난 저쪽으로 방향을 틀어 놈들을 유인할 테니까. 넌 차에 시동 걸고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곧장 차를 몰고 오는 거야. 알았지?”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면 다음은 뻔하다. 두 사람은 각자 흩어져 자기 몫을 해내는 장면이 이어지겠지. 하지만 그 장면의 여자가 나라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신호를 받으면 차를 몰고 오라는 말에 이렇게 대답할 테니까. “이걸 어쩌냐, 나 운전 못하는데….”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운전 못해서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장면. 액션씬에서 카체이싱을 빼놓을 수 없고 긴장감 넘치는 영화에서 차로 탈출하는 장면이 많으니 말이다. 


난 운전을 못한다. 면허도 없다.

면허 따 보려고 했는데 실패한 게 아니라 운전할 생각을 해본 적이 아예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운전을 못한다기보다는 안 한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못한다고 하면 의지는 있었으나 할 수 없다는 얘기 같은데, 안 한다고 하면 선택의 영역인 거 같다. 운전을 할 것이냐 말겠이냐에서 나는 기꺼이 ‘말겠다’는 선택지를 뽑아 들고 여태 살아온 거다. 


내가 무면허 뚜벅이라는 걸 밝히면 사람들은 비슷한 걸 되묻는다. “왜?” 

가끔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운전 안 하는 게 “왜?”라는 질문을 받을 일일까. 왜 얼굴이 그렇게 생겼냐는 질문은 안 하지 않나. 성형수술이 아니라면 얼굴 생긴 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영역이지만 운전은 다르다는 건 안다. 한데 말장난을 좀 섞어서 얘기하자면, 나는 운전에 관심이 없는 걸로 생겨먹었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왜 운전 안 하냐는 틀에 박힌 질문을 받다 보니, 나 역시 틀에 박힌 대답을 하나 만들어냈다. 

‘겁이 많아서 그래.’ 

실제로 겁이 많기도 하고, 듣는 사람이 쉽게 수긍할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또다시 비슷한 말을 이어간다. ‘원래 겁 많은 사람이 운전을 더 잘한단다’ ‘겁쟁이는 사고를 안내는 법이다’ 등등. 그러다 대체로 이런 말로 마무리되곤 한다. ‘아휴~ 운전 안 하면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 

글쎄?

똑같은 질문받는 거 빼곤 불편한 거 딱히 없는데. 우리나라 대중교통 잘돼 있고 우연히 기분 좋게 한 잔 할 때면 차 때문에 고민할 거 없이 속 편한데. 차 몰고 다니면 무조건 편한가? 주차 때문에 골치 아플 때 많고, 기름값이며 세금에 보험료까지 돈 빠져나갈 때마다 투덜대던걸.


사소한 일이지만, 이 하찮은 일을 통해 느끼는 게 있다. 크건 작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 특히 우리 사회처럼 메이저의 물결이 강력할 땐 마이너한 선택이라는 이유로 거센 파고를 버텨내야 할 때도 있다.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이 조금 다르면 그걸 설명해야 할 때가 있고, 비건이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깨작대면 회사에 불만 있냐는 핀잔을 듣고, 뒤통수가 안 이쁜데도 머리를 짧게 밀면 사회에 불만 있냐는 쑥덕임을 듣는다. (어라라? 어느새 DJ DOC 노래가 되네?)

작은 일에 이 정도인데 정치적 의견이나 성 정체성이 마이너일 땐 어떨는지. 부당하게 던져지는 ‘왜?’라는 질문이나 ‘걱정’을 가장한 ‘폭력적 설득’에 맞서기 위해, 어느 가슴 뜨거운 이들은 책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고, 어느 용감한 이들은 모임을 만들거나 피켓을 들기도 하나보다. 


그런 의미에서, 침소봉대하며 얘기하자면 내가 운전면허가 없다는 사실이, 나는 마음에 든다. 너무너무 하찮은 일이지만 덕분에 남들과 다른 선택, 다양한 선택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생겼으니까. 

심지어 오늘은 세계 차 없는 날이다. 1년 중 9월 22일 하루만이라도 차 없이 지내면서 대기오염이나 소음, 교통체증을 줄여보자는 의미로 2001년부터 정해진 날이란다. 아~ 난 원래 1년 365일 차 없는 날을 실천하고 있는데, 그거 하나 못해서 날까지 정하고 말이야. 

운전 안 해봐요, 얼마나 편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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