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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Nov 27. 2020

다시 글초상화

인터뷰 영

다시 글초상화


2013년 글로 쓰는 초상화를 처음 기획할 때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요즘처럼 영상화된 시대에 누가 글을 읽냐. 영상이든 사진이든 임팩트 있는 한방이 있어야 한다,라고. 백 번 천 번 맞는 말입니다. 모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영상화된 시대 누구 하나는 글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글이 모든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감동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사람 아니 열 손가락 열개는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과 교감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4년을 고집스럽게 이어왔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019년 정독도서관에서 활동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휴직기에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거리로 나가고 싶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인터뷰이들을 통해 진짜 세상을 배우게 되었거든요. 그분들을 통해 화단에 잡초의 이름이 맥문동이라는 걸 알게 되고, 작약꽃으로 향수를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되고, 멀리 높이 날아 나그네들의 길잡이를 해준다는 앨버트로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손가락 셀 때만 사용하던 숫자를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주변을 관찰하는 법을 알게 되고, 그분들의 다양한 인생철학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그 멋진 것들을 잘 버무려 글을 쓸 기회를 주었으니 이보다 더 큰 학교가 없었죠. 제가 다시 글초상화를 꺼내 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기회에 기존의 글초상화를 정리하며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인터뷰이들을, 새로운 세상을 만날 준비를 하고자 합니다. 그럴 기회가 오겠죠? :)


작가의 글초상화

언젠가 똘똘하게 생긴 나이 어린 인터뷰이가 인터뷰가 끝나자 물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뭐가 좋으세요?"

"엉? 뭐가 좋다니?"

"작가님은 좋아하는 숫자가 뭐예요?"

똘망똘망 나이 어린 인터뷰이는 제가 인터뷰이에게 한 질문을 저에게 똑같이 했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정작 제 자신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더라고요. 수많은 인터뷰이에게 했지만 정작 저 자신에겐 단 한 번도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죠. 처음엔 그저 심심하고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아니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지? 궁금해졌어요. 하여 이번 화에선 저 자신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해봤습니다.   글초상화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써보는 게 어떨까요?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저는 마흔 중반의 여성입니다. 예전엔 글로 밥 벌어먹던 작가였는데, 지금은 밥집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달라진 점은 작가로 살 땐 원하는 거, 갖고 싶은 거를 상상 속에서 글로만 표현했는데. 이젠 원하는 거, 갖고 싶은 거를 실제로 하게 돼요. 그래서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작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1. 솔직히 좋아하는 숫자는 없습니다. 저에게 숫자는 그저 도구일 뿐이니까요. 없어도 상관없지만. 글초상화는 즉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숫자를 제 자신에게 물었더니 '만겁'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만겁'은 숫자가 아니에요. 불교에선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번 개벽할 때까지의 오랜 시간을 겁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겁을 만 번이나 했으니 만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을 뜻합니다. 글쎄요. 왜 만겁이 떠올랐을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떠올랐어요.  

2. 좋아하는 색깔은 무지개색이에요. 무지개색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지개를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요. 왠지 무지개다리를 건너 행복을 찾아 떠나야 할 것 같고, 그게 아니면 무지개 요정이 행운을 줄 것 같고. 그냥 무지개를 보면 제 마음이 두둥실 날아올라요. 빨주노초파남보 같이 있어도 좋지만 빨간색은 빨간색대로, 파란색은 파란색대로, 보라색은 보라색대로 좋긴 해요. 마치 색의 종합 선물 같아서 좋아해요.

3. 좋아하는 음식은 청국장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청국장만 먹고지낼 수 있어요. 먹으면 속이 뜨뜻해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청국장 특유의 꼬리꼬리한 냄새도 좋아해요. 청국장의 묘미는 그 꼬리꼬리한 냄새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먹고, 코로도 먹기 때문에 냄새나는 청국장이 좋아요. 물론 냄새 고약한 청국장은 집에서만 먹죠.  그리고 또 있어요. 고기!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못 살아요. 힘도 떨어져요. 정말 고기 없으면 못 살아요. 최애 고기는 삼겹살이지만 소고기도 좋아하고 닭고기, 오리고기도 좋아해요.

4. 좋아하는 동물은 나무늘보예요. 예전엔 연례행사처럼 매년 봄이 오면 나무늘보를 보러 동물원에 갔었습니다. 나무늘보를 보고 와야 그 해 일이 잘 되었어요. 나무늘보를 보고 있으면 편안해요. 간혹 움직임이 너무 없어 혹시 죽었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가가면 그 순간 녀석이 숨을 내쉬어요. 그럼 저도 숨을 내쉬죠. 그리고 또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그럼 또다시 녀석을 따라 숨을 쉬지 않습니다. 그 순간이 좋아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세상은 녀석과 녀석을 지켜보는 저만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해지죠. 그리고 다시 들이쉬고, 멈췄다 내쉬고. 녀석을 따라 호흡을 하다 보면 마치 깊은 명상에 빠진 것처럼 평온해집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오직 존재하는 법을 나무늘보를 통해 배우죠.

5. 좋아하는 식물은 벚나무예요. 벚나무만큼 사계절을 잘 알려주는 나무도 없더라고요. 봄이면 팝콘 같은 꽃을 피워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고, 꽃이 지면 잎을 피워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이 되면 붉은색으로 곱게 단장을 하며 겨울을 준비하더라고요. 그러니 벚나무 하나만 마당에 심어도 사계절을 알 수 있어요. 계절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한데. 매 순간 우리에게 '지금-여기'에 있음을 알려주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에요. 내가 '지금-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줄 일 수 있어요. 그 역할을 벚나무가 잘해주더라고요. 하여 내년엔 저도 벚나무를 하나 심으려고요.

6. 10년 후요? 10년 후엔 나무가 많은 숲으로 들어가 작은 책방을 하고 싶어요. 나무가 많은 곳에 가면 편안하고 행복해져요.


저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어렵다면 일단 키워드를 잡으세요. 저는 좀처럼 잡기 힘드네요. 제 이야기라 모든 게 다 소중하게 느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어요. ㅠ 일단 키워드를 잡으셨다면 이제 상상의 나래를 펴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키워드를 잡으셨나요? 저의 글초상화를 써준 분에겐 저도 답례로 글초상화를 써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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