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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Dec 03. 2020

생명을 살리는 지혜로운 잔다르크

인터뷰 스물넷

2016년 12월 1일


“걱정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포기도 빠르고 연연하지도 않죠.”


스물넷님은 오십 대 초반의 도서관 사서입니다. 아이 많은 집안의 다섯째로 태어나 아무도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았데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뚝 선 콧날, 날카로운 턱선을 본 사람이라면 일부러 주목하지 않아도 주목하게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스물넷님이 살아온 나날들은 하루하루가 주목하게 되네요.

도서관 일들이라는 게 책들을 관리하고 대여하는 전부인 줄 알았는데. 스물넷님이 해온 일이 도서관의 역사 같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도서관의 자료를 디지털로 바꾸는 작업에 적극 나서서 전산 DB를 다 바꾸고, 이제는 문화기획까지 하고 있다고. 더 이상 책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도서관도 빠르게 변하고 있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글로 쓰는 초상화'가 함께 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스물넷님. 그러나 압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맨 앞에 서서 새로운 일을 창출해 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기존의 일을 새 틀에 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교과서도 가이드도 없는 맨땅에서 헤딩하는 일이 얼마나 벅차고 스트레스인지 압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남다른 기쁨을 준다는 것도 압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드는 희열이 삶의 활력을 준다는 것도 알기에 스물넷님도 꾸준히 자신의 틀을 변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잔다르크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스물넷님의 모습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스물넷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는 3이라고 합니다. 3월생이기도 하고, 숫자 3을 쓸 때 동글동글 곡선을 그리는 게 좋다고 해요.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제가 까칠하고 예민할 것 같게 생겼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별로 "걱정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포기도 빠르고 연연하지도 않죠." 숫자 3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성격까지 이야기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린 숫자는 핑계이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그것이 글로 쓰는 초상화 프로젝트의 마술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색깔은 연핑크라고 해요. 인디언 핑크 같은 은은한 핑크요. 연보라도 좋아한데요. 의외였습니다. 남성적인 강한 이미지라 연핑크를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카니발이 떠올라서 좋데요. 새로운 일에 앞장서서 강하게 밀어붙이던 분 이면에는 여리여리하고 소녀소녀한 갬성이 숨어 있어서 의외였고, 그런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어서 인터뷰가 더 즐거워졌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월남쌈이래요. 다양한 것을 넣고 한 번에 먹는 것이 좋다고 해요. 성격도 식성을 닮는 걸까요? 여리여리하고 소녀소녀한 갬성의 마음과 잔다르크를 연상시키는 강한 추진력 등 다양한 것이 스물넷님에게 공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인데. 키워보지는 않았다고 해요. 그냥 떠오르는 단어였다고. 의외로 동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굉장히 말이 짧으셨어요. 관심이 없는 대상인 거죠. 반면 좋아하는 식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끝이 없었습니다. 식물이란 식물은 다 좋아하신데요. 집에서도 키우고 있고, 도서관에서도 키우고 있데요. 남들이 죽여 놓은 식물도 스물넷님 손에 오면 다 살아난다고 해요. 어디서 배운 건 아니래요. 그냥 관심을 주고 물을 주었을 뿐인데 식물이 살아난데요. 식물 중에 특히 황금죽을 좋아한데요. 달달해서 좋다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어느 정도는 그분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스물넷님은 끝까지 저의 예상에 빗나갔던 분이에요.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죠. 만약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면 저는 스물넷님을 평생 강한 사람이라고 오해했을 거예요. 그래서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스물넷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저는 스물넷님의 강한 인상에서 잔다르크를 떠올렸고, 그 와 반대되는 여리여리하고 소녀소녀한 갬성과 식물을 살려내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썼습니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믿고 따르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스물넷님이 그랬습니다. 두려움 없이 새로운 일을 척척 해나가는 강한 모습 뒤로 카스테라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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