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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Nov 29. 2020

너의 이름은

인터뷰 스물하나

2016년 12월 1일


“아파트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녀석이에요.
보라색 꽃이 펴요. 씨도 보라색이고. 그 녀석의 이름을 아세요?”


스물하나님은 마흔 중반의 독서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에게서 책 읽는 법을 가르친다고 해요. 말이 책 읽는 법이지 실은 인성교육을 한다고 하네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이라는 걸 깨닫고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인성교육을 한데요. 요즘 시대에 맞지 않은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훈장 선생님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솔직히 인성보다는 공부 잘하는 게 최고이고, 인성보다는 돈이 최고이고, 인성보다는 인맥이 최고라는 요즘 사회에서 스물하나님의 교육이 빛을 발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물하나님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시민 교육의 바탕이 인성교육이며, 인성교육을 잘하기 위해서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되면 성숙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고요.

짝짝짝!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학벌에 흔들리고, 돈에 눈이 멀수록 이렇게 외골수로 고집스럽게 자신의 뜻을 따르는 분을 우리는 응원해주어야 합니다. 그분들이 미래의 희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도 고민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의 반응이 좋을 때 기분 좋고, 그렇지 않을 땐 고민하게 된데요. 하여 아이들의 반응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신다고 해요. 아이들 반응을 고민하시는 걸 보니 훈장 선생님처럼 고리타분할 것 같지는 않아 염려를 내려놓았습니다. 아마도 인성교육과 재미교육 둘 사이를 고민하며 수업을 준비하시는 성실한 선생님 같았습니다. 이런 반듯한 선생님은 어떤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스물하나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는 3이래요.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없는데,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안정감이 든데요. 신기하죠. 숫자 3을 좋아하는 분들 대다수가 안정감을 느껴서 좋다고 답하셔요. 왜 우리는 숫자 3을 보고 안정감을 느끼는 걸까요? 아직 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막연히 삼각형이 주는 안정적인 균형감 때문인가, 추측할 뿐입니다. 어쨌건 스물하나님은 안정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좋아하는 색은 황토색이래요. 영어로 Yellow oker라고 알려주셨어요. 격조 있는 색이라 좋고,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색이며, 어떤 색이랑도 잘 어우러지고,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이라 좋데요. 무엇보다 황토색을 보면 고향이 떠오른답니다. 경기도 시흥이 고향인데 어렸을 땐 주변이 모두 논, 밭, 과수원이었데요. 그렇게 황토색을 보고 커서 황토색이 좋다고 합니다. 스물하나님의 성향이 조금 느껴지시나요? 안정감, 따듯함, 자연, 고향 등의 키워드를 기억하세요.

좋아하는 음식은 한식이래요. 한식 중에서도 백반이 좋데요. 제일 맛있어서 좋데요. 하긴 백반만 한 밥상도 없죠. 열 가지가 넘는 제철 반찬에 갓 지은 흰쌀밥과 주방장님 기분에 따라 나오는 국까지. 중국집에 자장면이 있다면 한식당엔 백반이 있죠. 그리고 백반을 먹으면 그 집 음식 맛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본이 되는 밥상이에요. 뭔가 기본을 중시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좋아하는 동물을 물었더니, 동물은 다 좋아한데요. 강아지도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고. 강아지는 잘 따르고, 날 반기고, 따듯해져서 좋데요. 고양이는 지금 기르고 있는데, 날 반기지 않고, 잘 따르지 않아도 좋데요. 흐. 재미있는 분이시죠? 대부분 강아지의 복종 기질을 좋아하면 독립적인 고양이는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물하나님은 잘 따라도 좋고, 잘 따르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걸 보면. 각 동물들의 특성을 잘 알고, 그 특성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분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분이라면 아이들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의 모습을 사랑해주실 분 같았어요.

좋아하는 식물을 물었더니 오히려 저에게 물었어요. “아파트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녀석이에요. 보라색 꽃이 펴요. 씨도 보라색이고. 그 녀석의 이름을 아세요?”라고. 흠.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죠. 맥문동이래요. 맥문동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었어요. 저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초록창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잡초처럼 보이는 풀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아파트 화단이 이미지로 떴죠.

흔히 보았던 잡초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이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도 이름이 있다는 게. 아니 제가 단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너무 흔해서. 너무 이쁘지 않아서. 너무 뻔해서. 이름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죠. 그 순간 제 민낯이 밝혀지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니까 전 이쁜 것만 좋아하고, 흔하지 않는 걸 좋아하고, 뻔하지 않는 걸 좋아하는 속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죠.

제 반응을 이해라도 하듯 스물하나님이 위로하듯 말씀하셨어요. 많은 분들이 이름을 모른다고. 자신도 잘 몰랐는데. 어느 날 일을 끝내고 집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데 집 앞 화단에 보라색 꽃이 피었더래요. 분명 어제만 해도 꽃이 피지 않았는데. 너무나 이쁜 꽃이 피어서 이름을 알아보니 맥문동이었데요. 스물하나님 역시 너무 흔한 잡초라 관심도 없었는데요. 그런데 그 잡초가 너무나 예쁜 보라색 꽃을 피우고,  또 보라색 씨도 남기는 걸 보면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요.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관심 갖아 주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맥문동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았데요. 그래서 그날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두근두근.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맥문동에게서 삶의 철학을 찾다니. 스물하나님의 진짜 모습을 찾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하실 분. 지금까지 하신 키워드는 결국 자신이 되고 싶고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여 이 분의 미래가 더 궁금했습니다.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친구도 많이 사귀고, 보람 있는 일도 많이 하며 지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스물하나님 이름으로 그림책을 하나 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스물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유난히 작고 말랐던 스물하나님의 모습이 기억나네요. 그러나 시민교육, 인성교육, 그리고 맥문동 이야기를 하실 때 작은 몸에서 뿜어서 나오는 큰 아우라는 잊지 못하겠어요. 아마도 영혼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스물하나님에게는 너무 큰 영혼을 육체가 감당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선한 에너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어요. 많은 키워드가 있었지만 저를 감동시킨 건 맥문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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