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작 Dec 01. 2020

저마다의 자리

인터뷰 스믈둘

2016. 12. 1


“마음에도 각자의 자리가 있는 거 같아요.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리, 아이들 자리..”


스물둘님은 마흔 중반의 주부입니다. 결혼 전에는 방송국에서 일을 하셨데요. 취재하고 글 쓰는 작가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도서관에 '그림책 읽는 모임'이 있어 왔다고 해요. 나중에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드는 게 꿈이래요. 그림을 잘 그리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몰랐는데 조금 그리는 것 같다며 수줍게 대답하셨어요. 본인 입에서 조금 그리는 것, 같다는 건 제법 그린다는 의미겠죠?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이 쑥갓 꽃을 그린 거래요.

신기하죠. 쑥갓도 분명 식물이니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을 텐데, 스물둘님이 말하기 전까지 전 쑥갓 꽃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저에게 쑥갓은 그저 먹는 채소일 뿐이었죠. 인터뷰의 묘미는 이런 점에 있습니다. 제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세계로 저를 인도하죠. 하여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한 세계를 만난다는 한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쑥갓 꽃을 찾아보았죠. 수술이 한가운데에 모여 진한 노랑을 띄다가 밖으로 퍼지면서 흰색으로 바뀌는 작고 귀여운 꽃이었습니다. 언뜻 동그랗게 잘 만든 달걀프라이 같기도 하고 봄날의 태양 같기도 해요.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걸 발견하는 분이라면 좋은 그림책 작가가 될 것 같았습니다.


스물둘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는 3이래요. 일단 익숙해서 좋데요. 익숙하다는 말이 의아해 어떻게 익숙하냐고 물었더니, 셋째로 태어났데요. 그제야 이해가 갔어요. 세상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의 자신의 위치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가족에서의 위치로 숫자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저는 둘째로 태어났지만 숫자 2가 좋다고 말하진 않거든요. 고로 스물둘님은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삼각형이 떠올라 안정적이고, 또 활동적이라고 했습니다. 활동적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어요. 아마도 스물둘님이 활동적이겠죠? 이렇듯 객관적인 숫자 3이지만 이를 인식하는 방식은 저 마다 다릅니다. 대부분 자신의 상황을 이입하죠. 하여 우리는 그 사람이 쓰는 단어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인터뷰는 늘 흥미롭습니다.

좋아하는 색깔을 딱히 없데요. 괜찮습니다. 그것 역시 인터뷰이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냉면이래요. 가끔 나만을 위한 요리로 잘해 먹는다고 해요. 요리를 잘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리를 좋아한데요. 특히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고 해요. 말씀은 겸손하게 하지만 분명 잘하는 분이 맞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아할 수가 없거든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데 스물둘님이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젠 대접할 수 없게 되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뗍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요리를 가장 좋아하던 아버지께서 최근에 돌아가셨데요. 쿵. 저도 모르게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아버지께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 하지 못 했다고, 그런데 더 가슴 아픈 건 더 이상 전할 수 없다며 말을 잇지 못하셨어요.

아마도 오랜 시간 아버님을 그리워하셨을 겁니다. 가족들에게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를 꺼내는 건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 생각해 참고, 견디고, 애써 외면했는데. 갑자기 터진 거죠. 처음 만난 사람에겐 마음의 짐을 지운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조금은 가볍게 자신의 진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실제로 그것만으로도 치유가 되긴 하죠. 그래도 걱정이 되어 인터뷰를 그만할까요?라고 여쭈었더니. 괜찮다고 계속하자고 하셨습니다.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이건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스물둘님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좋아하는 동물은 없데요. 그런데 아이들이 강아지를 좋아해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식물은 백일홍이랑 배롱나무래요. 특히 마당에 있는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해요. 집안 곳곳에 물건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르고 갑작스럽게 떠난 어머니도 떠오른다며, "그런 걸 보면 마음에도 각자의 자리가 있는 거 같아요.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리, 아이들 자리..” 이 부분이 전 스물둘님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안을 정리 정돈하듯 마음에 각각의 자리를 정해 정리했다가, 그리울 때마다 다시 꺼내 보는 거겠죠. 그래서 스물둘님에게는 아버님이 잊히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애써 눈물을 누르며 나지막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던 스물둘님의 모습이 생생하네요. 더 이상의 인터뷰는 생략하겠습니다


스물둘님의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시나요? 세번째로 태어난 아이, 아버지가 좋아해서 요리를 해드리고, 아이들이 좋아해서 강아지를 키우고. 스물둘님의 중심엔 언제나 가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이 떠올랐고, 저마다의 자리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니, 오래된 한옥이 떠올랐어요.



이전 02화 너의 이름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