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했었다.
2019년 1월,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후부터 불안감은 나의 고질병이었다. 여러 유형의 불안감이 공존했고 동시다발적으로 발현되었다. 처음엔 울타리도 고정급여도 심지어 일감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후에 먹고 살만 해지니 능력치에 대한 불안감이 수면 위로 올랐다.
마음이 자주 넘어질수록 '그냥 포기하듯' 다시 회사에 입사해 능력치를 키우는 것이 마지막 정답 같았다. 그렇게 속이 시끄러운 나를 진정시켜주었던 것은 유럽 그리고 돈이었다.
21살 이모를 따라 파리 여행을 간 나는,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환상에 사로잡혔다. 이 장면은 줄곧 나의 마음속 로망으로 자리 잡았고 자유롭게 여행하고 유럽 노천카페에 앉아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답답한 일상에 활기를 주는 환각제였다.
이제 프리랜서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돈만 좀 더 더 모으면 드디어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렇게 명분이 생긴 나는 ‘돈타령'을 하며 2019년을 보냈다. ‘유럽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보기’라는 허울 좋은 목표를 잠시라도 잊을 때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와 같은 의구심이 정신을 침범했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더욱더 로망에 힘을 주었다. 퍽퍽해진 마음은 제쳐두기 바빴고 유럽에 가는 순간 마음 곳간은 거짓말처럼 넉넉해지리라 믿었다.
작년 겨울, 부다페스트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2달 동안 지낼 집도 구했고 다행히 가계 사정도 안정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일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상상만 했던 그림을 이룬 나의 모습에 솔직히 약간의 대견스러움도 느꼈더랬다.
예상대로 불안함은 조금 나아졌고 나름 행복했다. 하지만 정의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쫓기듯 살기 싫어 프리랜서를 선택해놓고 또 쫓기듯 부다페스트에 와있다. 이제는 정말 수시로 떠오르는 의구심을 하나하나 펼쳐,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온 것이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로망이란 환각제는 없어.
원점으로 돌아가 받아들이자. 거금을 들여 유럽에 왔지만 수년간 품어온 로망 크기에 현재 행복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축척된 나의 열등감의 결과라는 것을. 늘 현재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원하는 수준의 일은 아직 능력 밖의 일이라 한 낱 욕망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자. 그리고 방법을 강구해내자.
“아직 여기밖에 못 왔으면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해. 굳이 높은 곳을 보며 연료를 태울 필요도 없고 그냥 여기서부터 하자”
요즘 난 겉으로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하다. 마음이 편하면 활기가 돋고 좋은 에너지가 생긴다. 이 에너지는 내 하루 곳곳에 스며들어 다양한 시각으로 나타난다.
그래 애초부터 문제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겠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나를, 아니 나를 진실로 마주하지 못했던 시간을 귀엽게 용서하고 묵혀둔 열등감을 조금 놓아준 결과다.
종교는 없지만 요즘 나는 자주 기도를 드린다. 모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면 고해성사를 하기도 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구하기 위해 지혜로움과 용기를 구원하기도 한다. 일상의 루틴을 가질 수 있는 일감에 감사하며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 가족들의 따사로운 마음이 온전하게 다가온다.
오늘을 충만하게 잘 살고, 내 일을 귀하게 여기며 아직 여기 ‘고작 여기서부터’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