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내가 7살 무렵 우리나라는 IMF로 경제 고난의 시기를 맡고 있었다. 건축회사에서 근무하시던 아빠는 고작 33살 나이에 명예퇴직 선고를 받으셨고 그때부터 아빠는 한숨을 자주 쉬셨다. 바로 내 앞에서 쉬지는 않으셨지만 안방에서 혹은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한숨은 유난히 깊고 길었다. 7살이었던 나는 IMF가 뭔지는 몰라도 우리 집 가계에 위기가 왔단 것만큼은 머리로 피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도 동네 돈가스 집으로 아르바이트를 나가기 시작하셨기에 아빠와 나는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었다.
아빠의 한숨 소리가 유난히 깊은 날이면 나는 더욱이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아빠의 힘든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겁이 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위로를 배우지 못한 7살짜리 아이는 어른의 한숨이 자신을 무력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한숨소리가 그친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눈치를 살피며 거실로 나와 아빠 옆에 앉아 TV를 보곤 했다. 아빠 특유의 한숨 소리는 그 시기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고착되었다.
32살이 된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숨을 크게 쉬며 긴 호흡을 한다. 나에게 긴 한숨은 순간적인 집중력을 필요로 하거나 긴장감을 늦출 때 등 심신을 단련하는 사소한 방법이다. 하루는 침대에 누워 크게 한숨을 푹 쉬었다. 내 한숨소리를 듣고는 아빠가 방으로 찾아와 '요즘 일은 어떤지, 별일은 없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딱히 별일 없이 뱉었던 한숨이었지만 아빠의 관심에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문득 IMF 시절 아빠의 한숨 소리가 떠올랐다. 그때 7살 난 아이가 '아빠 괜찮냐고, 한숨은 왜 쉬냐고' 물어봤더라면 덜 외로웠었을까 하는 물음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