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Jan 31. 2022

저녁

오늘의 단어

나는 저녁 시간을 좋아한다. 24시간 중 그나마 죄책감 없이 길티 플레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회 필요 인력이 되기 위해 애쓴 나에게, 귀가 후 저녁 시간은 다이어트는 하루쯤 미뤄도 되는 관대함 또 떡볶이로 토닥여 줄 수 있는 배려심을 보일 자격이 있다. 뒤뚱거리며 부른 배를 침대에 뉘고 잠들기 전까지 오롯이 즐기는 나만의 은밀한 두 시간 남짓을 정말이지 좋아한다.


그날 하루가 좋았든 나빴든 혹은 한심하게 시간을 죽여 보냈든 괜찮다. 잘 보낸 하루의 저녁은 인심을 써 운동을 하거나 야식을 피하는 절제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유난히 힘들었던 날엔 따뜻한 샤워와 함께 빨아둔 새 침구에 나를 폭 안기면 그만이다. 그리곤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평온한 저녁을 보낸다. 혹 한심한 하루를 보낸 날에도 저녁 시간은 길티 플레저 타임이다. 대게 한심한 하루를 보냈다고 느끼는 날들은 시간을 죽여 보낸 게으른 날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종일 쉬었던 덕에 저녁엔 컨디션이 좋아진다. 좋은 컨디션으로 자기반성을 하고 '내일부턴 열심히 효율적으로 사는 인간이 되리라'며 다짐의 시간을 갖는다.


나에게 저녁 시간은 용서를 받을 수도 있고 칭찬을 받을 수도 또 배려를 받을 수도 있는 따뜻한 시간이다. 저녁 7시 33분, 내 무릎엔 반려견의 따뜻한 체온과 그릇에 담긴 순살 치킨을 포크로 푹 찔러 우걱우걱 씹으며 글을 쓰고 있다.


글 까지 한 편 썼다니, 아 오늘은 나에게 관용을 베풀어준 기분 좋은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