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델라 Aug 10. 2019

"나도 노인 유치원 가는 거냐?"

치매 어르신의 주간보호센터 첫날 1

    상담 직후 바로 서류 처리를 한 덕에 주말이 지나자마자 할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닐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니던 아파트 내 노인정과는 달리 시간에 맞춰 차량을 타고 가서 오후 프로그램을 하고 다시 차량으로  집에 모셔다 드리는 일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9시 30분 정도에 집 앞에서 차를 타고 저녁 6시 30분이 되어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 복지관에서 점심과 저녁, 간식까지 든든히 먹고 집에 오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는 할머니를 씻기고 쉬시라 하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외숙모께서는 나 혼자 아침에 할머니를 깨워 준비하는 게 걱정이라 하셨고 처음엔 어려울 것이라며 첫날 아침 일찍 집에 들르셨다.      


    외숙모께서는 오전 8시 반쯤 도착하셨고 도착하시자마자 할머니를 깨워 씻기고 준비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신 게 처음이라 그런지 “오늘 성지순례 가냐?”며 연신 물으셨다. 준비를 일찍 끝낸 후 아침 간식을 드리며 할머니께 복지관에 대한 설명을 하느라 애썼다.   



    할머니 : 오늘 성지순례 가니?

    나 : 오늘은 노인정 안 가고 복지관에 가요. 할머니 이제 더 크고 좋은 데 다니시는 거예요.

    할머니 : 지금 노인정은 왜? 별로야?

    나 : 지금 보다 더 크고 좋은 곳에 다니려고 어제 외숙모랑 왔다 갔다 했던 거 기억나시죠?

    할머니 : 그런데 이렇게 일찍부터 복지관에 가?

    나 : 네. 지금 갔다가 낮에 놀고 집에 오는 거예요.

    할머니 : 아 그럼 유치원 같은 거네. 애덜(애들)은 유치원 가고 나도 노인들 모여 있는 유치원 가고?     


    할머니가 복지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할머니를 과소평가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대화가 오가고 있을 무렵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다.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 주간센터입니다. 보호자님 어르신 모시고 나오세요.     



    나와 외숙모는 할머니를 봉고차 앞까지 데려다 드렸다. 웃음을 지으시며 손을 흔드는 할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가족 단체 채팅방에 보냈다. 가족들은 할머니의 복지관 첫 날을 기뻐했다. 낮잠을 자지 않고 여러 가지 인지능력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하는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낮 시간 동안 활동량이 늘어나니 새벽에 깨우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가족 모두 주간보호센터에 거는 희망이 컸다.   

  

    나는 오랜만에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 뜨거운 커피를 타서 마시며 여유롭게 이력서를 썼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낮잠도 깊이 자고 책도 보았다. 할머니와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 소리에 시끄러워 할 수 없던 일들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날도 ‘살만하겠구나’ 하며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오후 6시 30분이 되자 다시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 주간보호센터입니다. 할머니 곧 도착하십니다. 보호자님 내려오셔요.     


    집 앞에서 봉고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주간보호센터의 첫날. 할머니가 오늘 하루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

이전 12화 24살, 나는 할머니의 보호자가 되었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