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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Aug 18. 2019

복지관 다녀온 할머니의 첫마디, "너나 가!"

치매 어르신의 주간보호센터 첫날 2

    주간보호센터 첫날. 봉고차에서 할머니가 내리자 요양보호사 선생님 한분이 따라 내리시며 나에게 인사했다.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 보호자님, 오늘 할머니 너무 적응 잘하셨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어르신께서 노래 시간에 대표로 앞에 나오셔서 한 곡 끝까지 부르시기도 했고요. 즐거운 시간 보내셨을 거예요.

    나 : 그래요? 다행이네요. 당분간 적응하실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갔다. 할머니께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차량에 탑승하시기 전에 양손을 꼭 잡으시고 감사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런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네. 아이고. 고생 많으셨어.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감사해요.         



    할머니께서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다. 봉고차 문이 닫히고 출발하자마자 할머니께서는 나를 노려보더니 휙 돌아 집 방향으로 걸어가셨다.


    나 : 할머니 오늘 그렇게 재밌었어요?

    할머니 : 재밌긴 뭐가 재밌어. 복지관 집 근처 다니면 되지 왜 차 타고 멀리 가고 지랄이야.

    나 : 아까 선생님께서 할머니 앞에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했다던데, 재미없었어요?

    할머니 : 왜 이리 멀리 가고 지랄이야. 나 원래 가던 복지관이 더 좋아.

    나 : 거기가 왜 더 좋은데요?

    할머니 : 거기는 내가 원하면 가고, 원하면 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여기는 아니잖아.

    나 : 그래도 집 근처 노인정보다 더 재밌는 거 많이 하잖아요. 거기 가면 수다만 떨고 오는데 여기는 노래도 부르고 꽃꽂이도 하고...

    할머니 : 시끄러워. 괜히 멀리 갈 필요 없다고.     


    집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화를 내셨다. 지금까지 집에 일찍 돌아와 쉬고 낮잠 자고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오늘 간 복지관은 집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하니까 화가 나신 것 같았다.     



    나 : 할머니, 힘들 때 거기 선생님한테 말하면 쉴 수 있는 침대방 알려줄 거예요. 할머니 쉰다고 하면 뭐라고 할 사람 하나도 없어요.

    할머니 : 시끄러워. 나 거기 안가. 너나 가.     


    이미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신 할머니의 화를 막을 길이 없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과는 너무나 다른 할머니의 태도를 보고 당황했다. 할머니가 너무 싫어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못 다닌다는 걸 알지만, 하루 이틀간 것으로 적응과 부적응을 판가름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다녀봐야 아는 일이었다. 나는 할머니께 계속해서 주간보호센터의 좋은 점을 말씀드린다고 해서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방도가 필요했고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나 : 할머니 근데 이게 내일도 가야 해요. 어쩔 수 없어요.

    할머니 : 왜? 안 가면 그만이지.

    나 : 이 복지관이 좋다고 삼촌들이 이미 거기다가 돈을 내고 복지관 등록한 거라 안 가면 돈 날리는 거거든요.

    할머니 : 돈을 내? 뭔 돈지랄까지 하냐? 노인네 복지관 다니는 데다가 왜 돈지랄을 해?

    나 : 할머니 거기서 밥 먹고 간식도 먹으니까 돈 내야죠. 공짜로 밥 주는 데가 어디 있어요.

    할머니 : 돈지랄이다. 돈지랄. 너네 다 미쳤어. 내가 다녔던 노인정은 돈 안내도 밥 다 주는데 왜 허튼 데다 돈을 쓰고 지랄이야. 지랄은. 미쳤어 다들.

    나 : 할머니 예전에 다니던 노인정도 할머니가 모르겠지만 돈 다 냈어요. 밥 공짜로 주는 데가 요즘에 어디에 있어요. 똑같이 돈 주고 밥 먹는 데면 더 큰 복지관에 가는 게 맞죠.

    할머니 : 시끄러워. 나는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는 게 좋은데 여기는 사람을 못 가게 막잖아.

    나 : 그러면 한 달 비용 냈으니까 한 달만 다녀보고 진짜 아니다 싶으면 다시 노인정으로 가요.

    할머니 : 일주일.

    나 : 그래요. 일주일. 일주일 다녀보고 그때도 아니다 싶으면 할머니 다니던 노인정으로 다시 가세요.   

  

    대답도 안 하신 채 방문을 쾅 닫으셨다. 할머니께 일주일만 다녀보라고 설득했지만 할머니를 위해, 나를 위해 주간보호센터를 관둘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오늘 이렇게 실랑이가 있었기에 내일 시간 맞춰 주간보호센터네 안 나가신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리고 그 날  오랜만에 활동량이 많았던 날이라 그런지 할머니는 아침까지 푹 주무셨다. 새벽마다 깨우시던 할머니가 푹 주무시니 나도 푹 잤다. 평안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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