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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Aug 24. 2019

할머니가 나를 새벽에 깨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는 밤새 푹 주무신 것 같았다.  이사 오고 처음으로 웃으며 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셨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할머니 챙기기에 바빴고 할머니는 또다시 어디 가시는지 모르셨다. 복지관은 까맣게 잊으시고, 어제와 같이 성지순례를 가신다고 생각하셨다. 어제는 복지관에 대해 설명했지만 오늘은 복지관에 대해 설명하면 어제 화내신 일이 조각으로 떠올라 가지 않으려 하실까 봐 그냥 성지순례 가는 게 맞다 했다. 요실금으로 언제 실수를 하실지 몰라 종이가방에 여분의 바지와 속옷을 챙겨 보냈다. 봉고차를 타자 표정이 안 좋아지시는 할머니를 보며 마음이 안되었지만 이래저래 할머니가 새벽에 깨우시지 않는 방법은 복지관에 가서 낮 활동 시간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계속해서 ‘어딜 가냐’ 묻는 할머니를 위해 나는 달력 뒤에 복지관에 관한 문구를 적어 집안 곳곳 붙였다.


    ‘주간보호센터. 성당 복지관. 9시 15분까지. 마트 앞으로.’


    그렇게 할머니의 동선을 생각해서 할머니 방의 시계, 냉장고, 현관문에 써 붙였다. 복지관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맛있는 밥과 간식도 양 것 먹을 수 있으니 점차 적응되시는지 첫날처럼 화내는 일이 없었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보냈느냐고 물으면 “윷놀이”하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 이후 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나는 새벽에 깨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기쁜 마음도 잠시 주말이 왔다. 주말에는 복지관에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마음껏 낮잠을 잘 수 있었다. 밤새 잤는데 또 낮잠을 주무실까 의심했지만 밤잠은 밤잠이고 낮잠은 낮잠이었나 보다. 토요일, 단 하루 만에 다시 밤낮이 뒤바뀌셨고 결국 똑같이 새벽에 깨우셨다. 일요일도 마찬 가지였다. 하루 종일 할머니를 감시하여 낮잠을 잘 때마다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할 일이 있었고 깨우면 그때뿐 낮잠을 막을 길은 없었다. 가족들과 상의 끝에 병원에 방문하여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였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면 나른해져 잠을 깊이 잘 수 있다 하셨다. 그렇게 주말이 다시 다가왔고 자기 직전 약을 드렸다. 새끼손톱의 6분의 1 크기인 작은 약이었다.


    할머니 : 이렇게 조그마한 약도 약이 되냐? 너무 작아서 목구멍에 넘어가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약은 효과가 있었다. 할머니는 다시 새벽에 깨우시지 않았다. 잠을 깊이 주무시면 컨디션이 좋으셔서 그런지 복지관에서도 기분 좋게 활동을 하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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