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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Sep 01. 2019

복지관에서 우리 할머니가 실수했다는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 지 일주일째. 갑작스레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나 : (집에 오고 싶다고 조른 건 아니겠지?)


    괜한 의심부터 했다.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 안녕하세요. 주간보호센터입니다. 어르신께서 바지에 실수를 하셔서요. 여기에 있는 실버 팬티와 여분 바지 입혀 보내드리겠습니다.

    나 : 실수를 하셨다고요?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 네. 다름이 아니라 소변을 실수하셔서요. 괜찮습니다. 젖은 팬티와 바지는 여기에 여분으로 놓고 사용해도 될까요?

    나 : 네. 그럼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 아닙니다. 여기선 흔한 일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한 번도 없던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오후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를 마중 나갔다. 봉고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내 손을 잡으며 집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연신 ‘가자’하시내 손을 놓지 않았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는 상황을 자세히 전하셨고 '실버 팬티는 어르신용 기저귀 팬티이니 씻으실 때 꼭 갈아입히라' 하셨다.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린 후 할머니를 보았다. 무언가 잘못했다는 인식 때문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꼭 잡은 내 손을 바라보고 계셨고 손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 할머니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할머니는 단 한마디 말이 없었다. 기분을 풀어줄 겸 화재 전환을 했다.


    나 : 할머니 나 집에 있으니까 좋죠?

    할머니 : 아 그럼. 좋고, 말고. 당연한 걸 물어?

    나 : 진짜요? 얼마큼 좋아요?

    할머니 : 좋지 그럼. 나 혼자 있으면 뭐해. 나는 너 의지하고, 너는 나 의지하고. 맞지?

    나 : 맞아요.

    할머니 : 나는 너 의지하고, 너는 나 의지하고.


    할머니는 처음으로 나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 할머니를 위로하려 농담 삼아 말을 건넸는데 진심 어린 말에 감동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통풍이 안 되는 기저귀를 갈아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 할머니. 지금 입고 있는 팬티 갈아입어야 돼요. 여기 팬티 중에 하나 골라 봐요.

    할머니 : 왜? 왜 갈아입어? 지금 입고 있는 것도 괜찮아.

    나 : 그 팬티 할머니 것 아니에요. 그거 복지 관거야. 그거 내가 내일 선생님한테 드려야 하니깐 지금 벗어서 줘요. 미리 챙겨 놓게.


    요실금으로 축축해진 팬티가 부끄러웠는지 돌돌 말아 화장실 귀퉁이에 두셨다. 할머니가 직접 빨아서 준다는 것을 말리고, 할머니께서 한눈 판 사이 검정 비닐봉지 안에 기저귀를 넣고 꽉 묶었다. 검정 비닐봉지가 보이면 쓸모 있는 물건을 죄다 버린다며 풀고 보는 할머니의 습관을 생각하며 일반쓰레기 봉지 깊숙이 봉지를 파묻었다. 할머니가 오늘의 실수만큼은 생각나지 않았으면 했다. 괜한 수치심에 휩싸여 손녀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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