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점차 복지관에 혼자 다니시는 게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집으로 곧장 올 수 있는 길을 산책 겸 돌고 돌다 집에 들어오셨다. 집에 올 때마다 손에 꺾여 있는 나뭇가지나 꽃가지들, 이전 노인정에서 관리하던 작은 텃밭에서 채소들을 따오셨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취미 삼아 화단을 가꾸셨는데, 그 시절 생각이 어렴풋이 나시나 보다.
나 : 할머니 꽃 또 꺾어오면 어떡해!
할머니 : 예뻐서 꺾어왔어. 성모님 옆에 두려고.
나 : 예쁘다고 꺾으면 어떡해요. 생명 다 죽이면 성모님이 싫어하지.
할머니 : 성모님이 왜 싫어하니? 이렇게 꺾어오면 성모님 좋아하시지. 이거 봐. 좋아하시잖아.
나 : 식물은 꺾으면 죽는데 좋아하긴 뭘 좋아해요. 싫어하지.
삼촌들이 내가 할머니 집에 살기 이전 할머니를 보살 필 때, 할머니께서 꽃을 꺾어 담아둔 물이 썩어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싫어했다. 그래서 꽃을 꺾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화를 사두셨는데, 조화에 내려앉아 있는 뿌연 먼지들을 보면 소용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삼촌네 집에 할머니가 놀러 가셔서 키우던 화분을 다 꺾길래 삼촌께서 '왜 자꾸 키우는 화분을 못살게 구느냐'라고 하면, "지랄하지 마. 솎아내기 한 거야"라며 호탕 치셨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꺾은 꽃을 성모상 앞에 나두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삼촌 집에서 솎아내었던 화분은 일주일 만에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밖에서 꽃을 꺾어 오는 날이면 너무나 걱정되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복지관에서 돌아오실 무렵부터 비가 왔다. 할머니가 복지관에 다니시고 나서 처음으로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이 없는 할머니를 위해 봉고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
나 : 할머니. 잘 다녀왔어요? 오늘은 복지관에서 뭐 했어요?
할머니 : 윷놀이.
매일 뭐했냐고 물어보면 윷놀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했다. 슬금슬금 화단 쪽으로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혹시나 또 꽃을 꺾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 : 할머니. 꽃 꺾으면 안 돼!
할머니 : 내가 꽃을 왜 꺾니?
나 : 할머니 매일 꺾어오잖아요.
할머니 : 내가 언제 꺾었다고 그래?
화단 근처 자전거 정류소에 부착된 ‘cctv 촬영 중’ 표지판을 보자, 잔꾀가 돌았다.
나 : 할머니. 여기 봐. 카메라 모양 보이죠? 이거 다 사진 찍고 있다는 뜻인데. 꽃 꺾으면 사진 찍혀요. 그러면 엘리베이터에 ***호 할머니 꽃 꺾는다고 사진 붙어요.
할머니 : 아 사진 찍는다고?
나 : 그럼요. 우리가 관리비에 화단 관리비도 포함되어 있어서 꽃 꺾으면 물려내라고 돈 더 청구되는 거예요.
할머니 : 에잇!
할머니가 갑자기 ‘에잇!’하며 나무 쪽으로 폴짝 뛰며 꺾는 시늉을 보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던 찰나,
할머니 : 이렇게 시늉하는 것도 안 되는 거냐?
나 : 아니요. 시늉은 되는데. 꺾으면 안 되는 거예요.
할머니 : 에잇!
공동 현관문에 도착할 때까지 깡총 뛰면서 꺾는 시늉을 반복했다. 봄이 되어 새순이 돋아 파릇파릇해진 꽃을 못 꺾는다는 게 아쉽나 보다. 그렇게 주말이 오고 다시 평일이 시작되고를 반복했다. 꽃을 꺾으면 관리비가 왕창 청구된다는 말을 자주 하니 할머니는 꽃을 꺾어 오는 날이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 날 다시 꽃을 꺾어올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 꽃을 안 꺾어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