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복지관 생활이 2주쯤 이어지자 복지관에 가는 것을 당연한 일과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싶어 할머니 혼자 복지관에 가는 연습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약 4~5년 정도 살았고 이전에 다니던 노인정에도 혼자 다녔기에 아파트 지리는 잘 알고 계신다고 온 가족이 판단했다. 내가 취업 준비를 한다고 쉬고 있기 때문에 할머니를 봉고차까지 데려다 드리고 끝나면 시간 맞춰 데리러 가고 했지만, 어느 순간 취업을 한다면 갑자기 혼자 생활하는 것에 있어 혼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지관에 오고 가는 것만큼은 나의 손길을 벗어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혼자 가라고 하면 거부 반응이 올 것 같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봉고차가 서는 곳으로 가는 것까지 혼자 하도록 했고 뒤에서 지켜봤다. 행동을 할 때마다 맞는지 아닌지 내 눈치를 살피셨다. 정답을 절대로 알려주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수가 기억이 안 난다고 1분 남짓 가만히 서 계신 적도 있다. 아는 눈치인데 내가 있으니 나에게 모조리 의지하려고 하는 듯 한 느낌이었다.
할머니 : 네가 하면 되잖아!
나 : 할머니가 다니는 복지관인데 할머니가 더 잘 아시겠죠.
할머니 : 네가 더 잘 알지.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나 : 아니에요. 잘할 수 있어요. 한번 해봐요.
그렇게 일주일 정도 연습을 하다 보니, 할머니는 내가 해주면 해줄수록 더욱 스스로 안 하려 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일주일 후부터는 '오전에만 같이 나가고 오후에는 혼자 집에 찾아오시라'라고 했다.
할머니 : 네가 나오면 되는데 왜 그래?
나 : 나 오늘 학교 가서 마중 못 나가니까 혼자 집에 찾아오세요.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필요한 연습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단계를 높여 2주 간 혼자서 스스로 하는 연습을 하였다. 이제 온전히 할머니 스스로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한 달하고 보름 정도를 함께 연습했으니 모른다고는 안 하겠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기에 지리적 위치 정도는 조각조각 기억하셔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 : 할머니 우리 아침마다 차 타러 어디로 나갔죠?
할머니 : 마트 앞. 여기 쓰여 있잖아. 마트 앞에 나가라고.
나 : 오늘은 혼자 갈 수 있겠죠?
할머니 : 아니. 나 어디로 가야 되는지 몰라.
나 : 방금 할머니가 마트라고 했잖아요. 왜 거짓말해요.
할머니 : 몰라! 같이 가자! 같이 가면 되잖아. 같이 가!
나 : 안돼요. 오늘은 혼자 가요.
할머니 : 같이 가자!
그렇게 실랑이가 끝이 보이지 않자, 차 떠나면 오늘 못 가는 거고 그러면 오늘 등록비를 날리는 것이라며 스리슬쩍 돈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는 화를 내며 “저 게을러 빠져서. 같이 가자니깐!”하며 냅다 소리치고 문을 쾅하고 닫았다. 그렇게 좋은 감정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복지관 봉고차를 타러 가셨다. 할머니는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시는 듯, 아닌 듯 행동했다. 혼자 사고하려 하실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기억력 감퇴에 이바지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할머니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은 하도록 해야 했다. 매일 아침 실랑이를 벌였고, 할머니가 윽박을 지를 때도 있었다. 일일이 다 받아주면 아침부터 체력과 감정 소모가 어마어마해 어느 순간부터는 적당히 대답하고 적당히 무시했다. 할머니도 내가 이제 모든 것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고는 메모지의 ‘9시 15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마트 앞 봉고를 타러 나가셨다. 점차 복지관에 혼자 다니시는 것을 익숙해하는 것이 보였다. 안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