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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Sep 21. 2019

치매 할머니가 숨겨둔 '음식 찾기 게임'

    주말, 나는 할머니더러 '낮잠을 자면 밤잠 못 주무신다'며 자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낮잠을 주무셨다. 깨우면 “좀 자면 어떠냐?”며 도리어 화를 내셨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낮 시간 동안 장구 소리에 맞춰 노래 부르고 꽃꽂이, 체조 등 갖갖은 신체활동을 하다 보니 주말엔 피로가 몰려오나 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낮잠을 주무신 날은 저녁 신경안정제를 먹여 재웠다. 그러면 일요일 낮잠 자연스레 줄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깨어있는 시간이 늘수록 꼭 엉뚱한 행동을 하셨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이 할머니 방 화장대에 위 책 사이에 있을 때도 있었고, 창틀에 가까이 가보면 요구르트 서너 병이 숨겨져 있었다. '왜 그러셨냐'라고 물으면 '같이 먹고 싶었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음식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주말 아침마다 할머니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언제 꺼내 놓았는지 모를 음식들을 찾았다. 어느 날 너무 많은 음식들이 꺼내져 있어 발끈 화를 냈다.     


    나 : 할머니 이렇게 음식 다 꺼내 놓으면 다 상하지.

    할머니 : 내가 뭘 어쨌다고 아침부터 지랄이야.

    나 : 지랄이 아니라. 냉장고에서 음식들 꺼내 놓으면 날씨가 더워서 다 상한다고.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해.

    할머니 : 힘들긴 개뿔이 힘들다. 그냥 다시 넣어 놓으면 될 것을.

    나 : 아침마다 이렇게 음식 찾아다니면서 시간 다 쓰니깐 하는 소리지.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면 아침 더 빨리 먹을 수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반찬 찾으러 다녀요. 할머니랑 나랑 둘이 사니깐 할머니가 나 도와줘야지. 나 혼자 다 하는데!     



    밥을 먹으며 다시 얘기했다.     


    나 : 할머니랑 나랑 둘 밖에 없으니깐 할머니가 나 도와줘요.

    할머니 : 왜 그래? 돕긴 뭘 도와?

    나 : 할머니가 자꾸 음식을 아무 데나 꺼내 놓으니까 내가 아침에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음식 꺼내 놓지 마요. 알겠죠?

    할머니 : 알았어.     


    몇 번이고 물어 겨우 대답을 받은 나는 허탈감을 느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잊어버릴 것을 굳이 큰 소리 내서 ‘알았다.’는 말을 왜 받아 내었을까.


    치매에 걸린 할머니랑 싸우면, 할머니는 왜 싸웠는지 기억 하시진 못하더라도 감정이 기분으로 남는다. 기분이 좋지 않으시면 할머니가 나에게 감정을 푸시는 걸 알면서도 나는 꼭 할머니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할머니가 무엇인가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을 받고 싶은 것인지 아님 그렇게라도 대답을 들어야지만 대화를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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