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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Sep 29. 2019

치매 할머니의 옷 갈아입히기

    할머니가 복지관 생활이 적응되어가자 나도 나의 생활이 안정되어 갔다. 하지만 일상생활 측면 중 할머니의 옷을 갈아입히는 부분은 계속해서 어려움을 느꼈다. 어느 날 소파에 할머니가 털썩 앉았을 때 나는 할머니한테서 소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참을 수 없는 지독한 냄새였다. 독한 치매 약을 드시기에 물을 많이 섭취해야 했는데, 물 마시는 것을 잊어버려 농축된 요가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 옷을 갈아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복지관 가기 전 옷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 : 할머니 옷 갈아입읍시다.

    할머니 : 왜 이거 옷 좋아. 이거면 충분해.

    나 : 옷 너무 안 갈아입으면 안 돼요. 그거 며칠 전부터 계속 입고 있었어요.

    할머니 : 이만하면 돼. 왜 옷을 갈아입어.


    이렇게 옥신각신 하다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이걸로 갈아입으시라.’ 하며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 침대에 걸쳐 놓았다. 옥신각신하여 예민해진 할머니를 위해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도 계속 그 냄새나는 옷만을 고집하는 할머니를 보며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나 : 할머니 옷 자꾸 안 갈아입으면 냄새나요. 그러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할머니 : 너만 싫어하지.

    나 : 아니에요. 복지관에서 그렇게 냄새나면 할머니 옆에 앉는 거 다 싫어하지. 오래 입었으니까 갈아입으시라고요. 빨래하게요.

    할머니 : 싫어. 이만하면 됐다고.

 

    새 바지를 던지려는 것을 막은 채 실랑이를 벌였다. 서로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다툼도 점점 과격해졌다. 그러다 할머니가 손을 잘 못 휘둘러 내 팔 긁게 되었다. 붉게 부풀어 오르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를 위한 마음이 분노로 돌아왔다.     


    나 : 할머니. 이렇게 고집 피우면 누가 좋아하겠어. 가족들도 다 싫어하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할머니 : 가족들 누가 싫어해. 너만 싫어하지.

    나 : 그렇게 할머니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그러면 누가 할머니랑 살고 싶겠어요.

    할머니 : 나 자식들 많아. 네가 나가. 너 나가면 여기 올 사람 많아.

     나 : 올 사람은 무슨. 다 힘들어서 나갔는데. 아무도 없어. 나 지금 당장 나갈 거니깐 할머니 혼자 한번 살아봐요.

    할머니 : 나가!


    할머니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싸운 후 곧장 겉옷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은 마땅히 없었고 10분 정도 후 할머니는 봉고차를 타러 가셔야 하기 때문에 한 층 아래 층계에 서서 할머니가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집으로 올라왔다. 집 앞에 서서 '할머니가 화가 나서 복지관에 안 갔으면 어쩌나' 싶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보니 신발이 없었다. 무엇인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침의 실랑이를 곱씹으니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래서 1시간이나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무얼 하고 있나 싶어 정신을 차리고 밥을 먹었다. 눈물이 났다. 나는 제정신이 아닌 할머니와 이렇게 크게 싸워서 득이 될게 하나도 없는 걸 가장 잘 알았다. 손등으로 턱 끝에 매달린 눈물을 쓱 닦았다. 따가웠다. 통증이 오는 부분을 살펴보니 팔에 피가 맺혀 있었다. 설거지를 하며 부엌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괜히 눈에 밟혔다. 할머니와 큰소리를 내며 싸운 것이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고 십자가가 더욱 크게 보였다. 잡념을 지우려 청소기를 돌렸다. 우선 할머니 방에 들어가 보니 입으라고 꺼내 놓은 옷은 입지 않고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바지를 잘 개켜 정리하던 중 방 곳곳에 있던 십자가와 성모상이 날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죄책감이었다.    


    할머니와 싸운 후 3일 동안 우울했다. 가족을 미워하게 되면 마음이 이렇게나 안 좋아지는구나 싶었다. 처음에 할머니 집으로 이사하기로 결정된 날, 가족들의 지친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에 할머니가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라도 할머니와 사는걸  잘 적응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질문에 대꾸를 안 하시는 모습이나 오늘과 같이 엉뚱한 고집을 피우실 때는 정말 힘들었다. 반면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툼이 있던 그날도 복지관에서 즐거우셨는지 기분 좋게 들어오셨고 나더러 간식을 달라 했다. 마음을 비워야 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계속 살려면 '마음을 비우고 내가 바라는 마음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후 할머니의 옷을 갈아 입힐 때는 정신을 쏙 뺄 만큼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행동했다. 정신없이 옷을 들고 설쳐되며 "빨래가 모여서 지금 당장 빨래해야 해요"하며 옷을 갈아입자고 수백 번 이야기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빨리 빨래하라'며 옷을 벗어던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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