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걸린 등 디스크가 회복이 되고 다시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방에서 잘 움직이지 못해 답답했었는데, 사정을 아신 둘째 삼촌께서 정말 감사하게 할머니를 맡아 주신다고 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하는 나를 보며 외출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날 붙잡고 '점심만 먹고 오냐'고 연신 물었다. 나는 조금 있으면 삼촌이 올 거라고 대답하며 신발을 신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옷이며 신발이며 더욱 신경 쓰였다. 두 개의 신발 중 한 짝씩 신어 보이며 할머니에게 보였다.
나 : 할머니 어느 게 더 잘 어울려요?
할머니 : 오른쪽이 더 멋지다.
나 : 할머니 나 오늘 예뻐요?
할머니 : 아 그럼. 네가 워낙 예쁘잖아. 오늘 아주 멋있어.
기분 좋게 배웅해 주셨다. 삼촌은 저녁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걸 아는 나는 실컷 놀다가도 8시 반만 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매번 이른 시간에 놀던 걸 중단하고 9시 반쯤 시간 맞춰 집에 들어갔다. 삼촌은 집에 갈 때마다 약은 드셨는지, 양치는 하셨는지 문자로 알려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엔 늘 "퇴근!"이라며 할머니 집에서 나가는 시간을 알려주셨다. 삼촌이 집에 계시다가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왜 이리 늦었냐며 늘 투정을 부리셨다.
할머니 : 이렇게 캄캄한데 나 혼자 있었잖아.
나 : 삼촌 좀 전에 가신 거 알아요.
할머니 : 아니야. 나 혼자 이렇게 오래도록 우두커니 있었어.
나 : 삼촌이랑 통화했어요. 할머니 혼자 있었던 시간 15분밖에 안돼요.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날, 다른 날과 같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불이 꺼져 있던 적이 있었다. 혼자 계실 때 어둠이 무서워 절대로 불을 끄고 지내지 못하는 할머니인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중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 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고 내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자마자 거실로 뛰어 나오시며 “왜 이렇게 늦게 와!”하셨다. 나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 잔머리를 굴리신 것 같았는데 자신의 방 불까지 끄기엔 두려우셨나 보다. 외출 후 스트레스가 풀려서 인지, 나는 “다음번엔 일찍 올게요.” 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