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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Oct 27. 2019

잘 밤에 끓이는 누룽지 1

    며칠 전 할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 가고 나서 청소를 할 때였다. 집에 없던 하루살이들이 보이 길래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나?’하고 생각했다. 하루살이가 날아다니는 쪽을 자세히 보니 텔레비전 옆에 녹아 있는 사탕이 보였다. 먹다가 뱉은 사탕이었다. 당장 다 먹기 싫어 뱉은 것인지 아님 아껴 먹으려 뱉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먹던 사탕이 놓여 있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먹다가 만 과자나 사탕들이 침대 위, 베개 밑, 텔레비전 뒤 등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날씨가 더워져 혹여 벌레가 꼬이지 않을까 곳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찾아내었다. 사탕이 녹거나 먹다 만 과자 부스러기 때문에 끈적이는 방을 꼼꼼히 닦느라 애를 썼다.  


    그렇게 청소를 마친 뒤 외출을 했다. 저녁을 먹고 집에 9시쯤 들어왔는데 언제 꺼내 놓은지도 모르는 냉동밥이 싱크대 옆에 꺼내져 있었다. 매번 이렇게 꺼내져 있는 냉동밥을 볼 때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일을 만들어!’하는 생각을 했다. 싱크대 옆에 두면 차라리 빨리 발견하여 괜찮지만 자기 방 화장대나 베란다 구석에 두면 며칠이나 지나고 발견할 때도 많았다. 잔소리를 하면 충격을 받아 당분간이라도 냉동밥을 꺼내지 놓지 않으니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 할머니! 왜 밥 꺼내놨어요! 내가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할머니 : 배고파서 꺼내놨어. 나 저녁 안 먹고 지금껏 굶고 있었잖아. 왜 늦게 와!

    나 : 저녁을 안 먹긴 왜 안 먹어요. 먹었으면서.

    할머니 : 아니야. 안 먹었어.

    나 : 복지관에서 매일 연락 오는데 뭘 안 먹어요. 먹었으면서. 왜 거짓말해요!

    할머니 : 복지관에서는 저녁을 일찍 먹잖아. 3시에 먹어.

    나 : 3시는 무슨. 5시에 먹는데!



    집에 도착한 시간은 9시니까 5시쯤 저녁을 드셨더라면 시장하실 시간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할머니는 복지관에서 저녁을 드시고 오면 8시 반이나 9시쯤 일찍 잠자리에 드셨기에 간식만 간단히 드리면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늦게 와서 밥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보였다.   

  

    나 : 그래도 밥 꺼내 놓으면 날씨가 더우니깐 음식이 상하지.

    할머니 : 상하긴 뭘 상해. 너 오면 빨리 냄비에 밥 끓여 달라고 꺼내 놓은 거지. 밥 줘!

    나 : 지금 잘 시간인데 무슨 밥을 먹어요.

    할머니 : 배고프면 낮이나 밤이나 밥을 먹는 거지. 빨리 밥 끓이라고.

    나 : 안돼요. 지금 너무 늦었어요. 지금 먹으면 또 밤새 소화 안 돼서 잠 못 자잖아요.

    할머니 : 하나도 안 늦었어. 네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새벽 12시가 되어서 배고프다고 하면 밥 끓여주고 그랬었어.

    

    할아버지가 절대 그럴 일이 없었다. 저녁 8시만 되어도 일찍 주무시던 분이다.   

   

    나 : 안돼요. 잘 밤에 무슨.

    할머니 : 냄비에 밥을 끓여서 부드럽게 해서 먹으면 소화 되잖아! 빨리 밥 달라고.


    고집을 꺾지 못할 듯싶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늦은 밤 밥을 차려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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