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나는 할머니더러 '낮잠을 자면 밤잠 못 주무신다'며 자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낮잠을 주무셨다. 깨우면 “좀 자면 어떠냐?”며 도리어 화를 내셨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낮 시간 동안 장구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꽃꽂이, 체조 등 갖갖은 신체활동을 하다 보니 주말엔 피로가 몰려오나 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낮잠을 주무신 날은 저녁에 신경안정제를 먹여 재웠다. 그러면 일요일 낮잠은 자연스레 줄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깨어있는 시간이 늘수록 꼭 엉뚱한 행동을 하셨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이 할머니 방 화장대에 위 책 사이에 있을 때도 있었고, 창틀에 가까이 가보면 요구르트 서너 병이 숨겨져 있었다. '왜 그러셨냐'라고 물으면 '같이 먹고 싶었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음식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주말 아침마다 할머니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언제 꺼내 놓았는지 모를 음식들을 찾았다. 어느 날 너무 많은 음식들이 꺼내져 있어 발끈 화를 냈다.
나 : 할머니 이렇게 음식 다 꺼내 놓으면 다 상하지.
할머니 : 내가 뭘 어쨌다고 아침부터 지랄이야.
나 : 지랄이 아니라. 냉장고에서 음식들 꺼내 놓으면 날씨가 더워서 다상한다고요.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해.
할머니 : 힘들긴 개뿔이 힘들다. 그냥 다시 넣어 놓으면 될 것을.
나 : 아침마다 이렇게 음식 찾아다니면서 시간 다 쓰니깐 하는 소리지.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면 아침 더 빨리 먹을 수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반찬 찾으러 다녀요. 할머니랑 나랑 둘이 사니깐 할머니가 나 도와줘야지. 나 혼자 다 하는데!
밥을 먹으며 다시 얘기했다.
나 : 할머니랑 나랑 둘 밖에 없으니깐 할머니가 나 도와줘요.
할머니 : 왜 그래? 돕긴 뭘 도와?
나 : 할머니가 자꾸 음식을아무 데나 꺼내 놓으니까 내가 아침에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음식 꺼내 놓지 마요. 알겠죠?
할머니 : 알았어.
몇 번이고 물어 겨우 대답을 받은 나는 허탈감을 느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잊어버릴 것을 굳이 큰 소리 내서 ‘알았다.’는 말을 왜 받아 내었을까.
치매에 걸린 할머니랑 싸우면, 할머니는 왜 싸웠는지 기억 하시진 못하더라도 감정이 기분으로 남는다. 기분이 좋지 않으시면 할머니가 나에게 감정을 푸시는 걸 알면서도 나는 꼭 할머니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할머니가 무엇인가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을 받고 싶은 것인지 아님 그렇게라도 대답을 들어야지만 대화를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