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로 보였다. 십 대의 나는 소위 명품 브랜드를 지닌 사람을 그렇게 읽었다. 이십 대가 되어선 조건 없이 선망했고, 이후에는 까다롭게 사유했다. 나는 궁금했다. 명품은 언제부터 명품이었는지. 물건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담긴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어떤 메시지에는 마음이 동했고, 또 저런 메시지에는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명품이 꼭 '좋은 품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훌륭한 품질의 물건이 꼭 '명품'이라 불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도 말없이 알려주었다. 어떤 사람은 명품 브랜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스럽게 소화했다. 또 어떤 사람은 명품을 입어도 하나도 폼 나지 않았다(지구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동시에 친구가 예쁜 명품 가방을 사면 같이 호들갑을 떨며 환호하는 기술도 배웠다. 곁에 누군가 명품으로 치장해도 기죽지 않을 줄도 알게 되었다. 이 작은 깨우침은, 내가 스스로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던 덕분이겠지. 그래서 나는 늘 내 자신에게 고맙다. 지금 나는 소비와 멋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이리저리 둥글리며 입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나의 특별한 소비는 주얼리이다. 한 마디로 보석. 작지만 강한 힘을 가진 물건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매일 지닐 수 있다. 무엇보다 닳는 속도가 느리다는 물성도. 어느 특별한 날에 메달을 걸어주듯 목걸이를 나에게 선물했다. 프리랜서라 수입이 들쭉날쭉할 땐 작은 반지를 두 달에 한 번씩 나의 손가락에 껴주며, 혹여나 초라한 기분이 들지 않게 도왔다. 정신으로만 승리하느라 너무 고단하지 않도록. 적절한 소비는 확실히 나를 응원하기 좋은 방식이다. 최근에는 서른이 된 올해를 기념하며 옐로 골드 목걸이를 샀다. 이십 대엔 골드가 어울리지 않다는, 나만의 이상한 고집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나만 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나는 꼭 럭셔리 제품을 가져야 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다만 그전에 기품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고, 그에 어울리는 말투와 패션을 갖추고 싶다. 그래도 원하는 목걸이를 사지 못 했을 땐 너무 오래 상심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