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용기 내어 하나씩 이루어가는 노력을 하였다. 비록 아직까지는 내가 느끼는 성공들은 없는 거 같지만 이루고 나면 후회가 없는 나만의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밀려오고 있다.
빡빡 깎은 머리에 학교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순진하고 말 잘 듣는 학생으로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하였다. 진정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그리지 못하고 국영수와 암기과목만을 달달 외우며 그토록 사람들이 원하는 명문 대학만을 가기를 상상해 왔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진실로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몰랐다. 심지어 대학을 가고 졸업해서 취직을 하고 나서도 말이다.
첫 직장을 잡고 10년 정도 되었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 처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사업을 시작하고 경영 악화로 정리한 다음,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 나 자신의 영혼은 점점 더 메마른 것을 느꼈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 사회"에서 나온 내용을 빌리자면, 현재 우리가 사는 삶은 노동 사회, 성과 사회로서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적으로 노동을 만들어 낸다. 과잉 활동으로 인한 노동과 생산의 히스테리는 바로 극단적으로 허무해진 삶과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인간은 북한의 김정은도 아니고 사장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자신을 착취한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들을 반영한다.
21세기 사회는 규율 사회에서 성과 사회로 변모했다. 근대의 규율 사회는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부정성이 강조되고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광인이나 범죄자를 양산했다. 반면 현대의 성과 사회는 긍정성을 강조하며 우리에게 "아이 캔 두"라는 긍정 속에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 프로젝트가 금지, 명령, 법률을 대신하고 있다. 규율 단계를 졸업하여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성과 주체라는 능력 수준으로 연속된 관계로 진행되고 있다.
블랙마켓에서 구입한 소주가 냉장고에 중심이 되어 꽉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도 혼술로 소주 반주에 김하고 계란 프라이를 반찬으로 늦은 저녁에 허기를 채운다. 핸드폰에서 와이파이로 연결하여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시 세상을 잊는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 넓은 집에 인터넷 미설치로 와이파이 역시 연결이 되지 않아 세상과 단절이 되어 있었다. 아직 면허증이 나오기 전이고, 차가 없어서 가보지 않은 수용소처럼 난 사막의 한가운데 빌딩에 갇혀 있었다. 가슴이 미쳐 터져 버릴 거 같아, 옆 빌딩 동료와 함께 근처 쇼핑센터에 가서 같이 커피 마시며 그 안을 거닐었다.
그리곤 침대에 미끄러져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잠을 청한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바퀴 벌레가 온 방을 뒤엎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풀 수가 없어 모든 짐들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며칠 동안을 같이 껴안고 잤다. 방역 회사를 불렀을 때도 인도사람 2명이 시커먼 맨발로 들어와서 가방에 있는 흰색 반죽을 긴 막대기에 묻혀서 창틀이나 하수구 구멍에 묻히고 그들은 고양이 발자국 같은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다.
새벽 3시에 오늘도 아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내 마음속 깊게 들어와 내 영혼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 밤잠을 설치게 하였다. 내 방은 4층으로 바로 옆에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있어 소리가 컸다. 지금은 적응이 됐지만 아직도 기분이 찜찜하고 묘하다. 아잔이란 이슬람교에서 신도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말한다.
날마다 5시간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맹세하노라..."의 메시지로 소리 높이 직접 사람이 부른다.
새벽 4시에 맞춘 알람 소리가 들리며 일어난다. 벌써 햇빛이 강렬해지고 더워서 일어나는데 기분이 상쾌하다. 중동은 낮에 무척 덥기 때문에 오전 8시부터 일찍 일을 시작하여 오후 5시에 일을 마친다. 내가 사는 샤르자는 두바이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침 일찍 서둘러 집에서 나와야 한다. 전에 말했듯이, 학기 중에는 초중고등 통학을 위한 스쿨버스로 인해 더욱 교통이 막힌다.
새벽 5시에 나왔는데 벌써부터 햇볕이 강렬하여 선글라스를 넥타이처럼 꼈다. 중동은 선글라스가 없으면 장님이다. 차량들도 하나씩 도로에 모여들어 붐비기 시작한다. 올림픽대로가 싫어 멀리 두바이에 왔지만 여기서도 도로 위에서 모래가 춤추는 올림픽 대로를 만난다. 한국에서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 주일 설교를 핸드폰에서 다운로드해 들으면서 회사로 향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물류 회사로 직원들의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인도, 파키스탄인들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으나 지금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오후에 외근이 있어서 직원들과 같이 쇼핑센터에 가서 같이 먹는다. 아랍이나 인도 음식은 아직 도전을 하지 못한 채 맥도널드에서만 햄버거만 먹다 질려 요즘은 맥도널드의 샐러드만 먹는다. 한국에서 제일 싫어했던 음식이 햄버거였다. 더구나 맥도널드가 제일 맛이 없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샐러드 메뉴를 한국에서 팔면 특히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에게 좋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선 맥도널드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밖에 먹지 않는다.
평범하게 생각 없이 편한 길만 바라보며 대학교를 진학하여 군대도 공익근무 요원으로 편하게 다녔다. 직장 생활도 운 좋게 지방에서 잘 다녔다. 이쁜 여자와 연애하여 결혼하여 다행히 그녀를 더 닮은 나보다 잘 생긴 아들도 낳았다. 이상하게도 행복할 거 같았는데 마음엔 공허함과 허전함이 쌓여 왔다. 직장 9년째, 와이프한테 얘기하고 나를 찾으러 홀로 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전에 읽었던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책 끝머리의 내용이 이렇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모든 이에게 행복하게만 보였던 이모의 삶이 그녀 자신에게는 "무덤 속 같은 평온"으로 불행해서 자살했을 거라고...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결정체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가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진 건 아닐까?
나 역시 이 무덤 같은 고요함과 평온함에 지쳐 뭔가 새로운 것, 파랑새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모험인 줄 알았지만 뜨거운 불로 다가가는 모순덩어리였던 것이다.
결국 10년 동안 다닌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업이 잘 되어 돈도 월급쟁이로서는 만져 보지 못하는 돈도 벌고 눈치 안 보고 자유로운 시간이 좋았다. 일 년도 채 안 되어 직원을 채용하고 사무실도 몇 개 더 오픈하였다. 월급쟁이로 오래 있어서인지 내가 사장이라는 정체성이 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1년이 지나고 나서 내게 들어왔던 돈은 결국 거래처, 국가로 다시 돌아가는 자금의 채널이라는 깨달았다. 그것도 모르고 내 돈인 줄 알고 계획성 없이 돈을 사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믿었던 직원이 나 몰래 사업자를 동생 이름으로 내어준 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돈의 노예가 되어 이런 삶을 즐기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클레임도 발생하여 경영도 악화가 되고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마음이 커서 더 이상 사업을 하기 힘들어졌다. 강한 마음이나 복심이 필요한 사업은 나에게 맞지 않다고 빨리 결정을 하였다. 모든 사업을 일사천리로 정리하고 다시 직장생활로 돌아갔다.